- 도망치지 못하는 자
4.
순식간에 서우는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깊은 기억 속 골방에 앉아 문간에 귀를 기울이는 서우가 보인다.
“ 남들하고 똑같은 밥 먹고, 옷 입고 자는데 왜 혼자만 저 난리야! 정신병자 같으니라고! ”
“ 당신 내가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그랬지! 한 번 만 더 그런식으로 말하기만 해봐! ”
“ 하면 어쩔건데, 좋다는거 다 먹이고, 치료란 치료는 다 해도 저 지경이잖아! 저거 어디가서 사람구실 하겠냐 고! ”
“ 애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당신이 그러고도 아빠라고 할 수 있어? 어? ”
약을 달이던 엄마와 아버지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떨고 있는 서우를 보지 못한다.
결국 참지 못해 울컥 뱉어진 울음소리에 아버지는 순간 약탕기를 집어 던졌다.
다시 시작된 부모의 싸움소리에 서우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골목으로 뛰쳐나왔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주저 앉아 버린 서우는 빗소리에 울음을 숨겼다....
자리에서 일어난 서우는 손바닥으로 머리와 얼굴을 감싸쥐었다.
가빠진 숨소리를 이기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생각하지마...
큰일이다 병세가 악화 된 걸까? 다른 병원엘 가봐야 하나’
다시 자리에 누워 뜬 눈으로 밤을 보낸 서우는 날이 밝자 서둘러 다른 지역의 대학 병원으로 발길을 서둘렀다.
<경기도 파주 새로 생긴 종합메디컬 클러스터 대형병원>
접수를 해두고 진료실 앞 복도에 길게 놓인 벤치에 앉아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간밤에 꾼 꿈을 생각해봤지만 생각 할수록 어이없는 서우였다.
서우 자신이 앉은 맞은편 너머로 보이는 시원스럽게 꾸며진 중정은 머릿속까지 시원하게 해 주는 느낌이었다.
인공 폭포수의 물줄기를 그대로 맞고 있는 초록의 잎사귀를 보며 마음을 가다듬는 사이 서우의 시야에 낯익은 잎사귀가 보였다.
‘저건!...’
순간 병원의 크고 긴 복도를 울리는 스피커 소리가 서우의 가슴팍을 같이 쿵쿵거리듯 때렸다.
“코드레드! 코드레드! 의료진 및 내방 환자분들은 즉시 대피 바랍니다. 입원 병동에 계신분들은 화재 방송 안내지시에 따라 침착하게 대응해주시기 바랍니다!”
순간 서우는 눈앞에 아우성을 치며 엉키듯 내달리는 사람들 틈에서 당황한 듯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흰 가운을 휘날리며 서우의 팔을 휘어잡은 이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에선 볼 수 없는 여유로움과 어떤 상황에서도 개념치 않는 자태.
“당신은...!”
서우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 한쪽 눈을 찡긋이는 백발의 여 의사... 흰 머리와는 이질적으로 또렷하고 맑은 눈.. 단박에 그녀를 알아봤다.
“ 왼쪽 출입구 보다 한 층 내려가서 편의점 옆 문으로 나가요, 그게 빠릅니다.”
“당신이 왜 여기에..”
“ 지금 그걸 따질 시간이 없을 텐데요. 달려요 어서!”
정신없이 그녀가 시키는데로 편의점을 지나 문 밖으로 나온 서우는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연신 병원으로 들어오는 사이로 유유히 빠져 나왔다.
집에 들어와 빨려들어가듯 침대에 대자로 누운 그는 정문을 나올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천장을 뚫어져라 보던 그는 생각했다.
‘ 왜 그 할머니 의사가 그 병원에 있었을까... 한의사 아니였나.. 오늘 간 병원이 한방도 같이 하는 병원이었나?... 그 오래된 한의원에서 받아 온 약을 먹고난 후로 두통도 없고 머리도 맑아진 거 같긴한데...’
서우는 점심을 먹기 위해 폰을 열었다 점심으로 먹을 마라떡볶이와 튀김 셋트를 시켰다 릴스에선 한창 파주 심학산근처 맛집을 찍어놓은 릴스들이 줄줄이 나왔다.
‘파주 다녀왔다고 그새 파주가 나오네, 이집은 오늘 다녀온 곳 근처네..’
밥을 먹을 자리를 마련하려 식탁을 치우던 서우는 시선을 멈췄다.
‘ GTX 운정중앙역에서 단 5분 거리 마을버스만 타면 바로 앞에 내려주는데요 올 겨울 바로 옆 이 커다란 부지엔 동서양방치료가 가능한 메디컬 클러스터가 들어선다고 하죠..’
‘......?..
이 릴스가 예전껀가? 오늘 클러스터 다녀왔는데...?’
방송이 올라간 시간을 체크한 서우는 ‘오늘 오전’ 이라는 글씨에 의아했다.
음식이 배달 되고, 먹으려 포장을 뜯는 순간 서우는 소름이 돋았다. 튀김봉지에서 배어나온 기름에 젖은 전단지에 적힌광고 ..
‘파주 올겨울에 오픈하는 메디컬클러스터 걸어서 5분! 전원마을 주택단지 선착순 분양! ’
티비를 켜서 어떤 채널을 돌려도 그 큰 종합병원에 불이 났다는 속보나 기사 한 줄이 없었다.
서우는 서둘러 청수원으로 향했다.
차갑고 습한 기슭을 오르는 발걸음이 본인도 모르는 새 익숙한 길을 가듯 내질러 달렸다.
기슭어귀를 헤매던 시간은 순식간으로 좁혀져 서우의 손은 어느새 청수원 대문의 손잡이를 밀고 있었다.
삐걱-
문이 열리는 순간 숨을 헐떡이는 서우와는 다르게 하얀유건을 머리에 두른 진 의원은 평온한 자태로 약재를 다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 온 서우와 눈이 마주치자 진 의원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다시 약재손질에 집중을 할 뿐 이었다.
“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이 필요할 거 같은데.”
“ 글쎄요, 설명이랄 게 없어서..”
“ 혹시 마술이나 요술 뭐 그런거에요? ”
“ 아뇨.”
“그럼, 제가 미친건가요? ”
“ 아뇨.”
“ 그럼 오늘 제가 간 그곳은 어디고, 꿈꾸면 가는 거긴 뭐냐구요.”
“ 모든 공간은 당신이 여는 겁니다.”
“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냔 말입니다!”
서우의 소리가 커지는 순간, 약재함 주변을 정리하던 효신이 둘 사이를 막았다
“ 몽연경에 거북한 기운이 올라왔나봐요, 청수원이 흔들리고 있어요! 의원님! ”
진의원은 서둘러 청매엽을 손바닥위에 올리고 입깁을 불었다.
후-
진의원이 입김을 불자마자 자욱한 안개가 서우를 감싸 홀연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