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물은 다 어디서 온 걸까?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각자 흘러들어 모인걸까?”
잠실대교의 조명을 받아 도토리묵처럼 일렁거리는 한강물을 보며 내가 물었다.
“아마도 그렇겠지? 경복궁 지을 때 필요한 목재를 강원에서 한강 지류로 운반했었대.”
그렇구나, 이 물은 자그마치 600년 전에도 이리 흘렀었구나. 그 무거운 나무를 흘려보낼만큼 절대적인 방향과 힘을 가진 물이구나. 흥미로운 사실과 이를 알려주는 그가 신기해서, 그리고 600년이 지난 지금 한강 한켠에 앉아 우리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해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순간 바람이 동쪽으로 세게 불어왔고 나를 바라보던 그의 뒷머리에 그대로 강타했다. 앞으로 쏟아진 머리를 애써 정리하려 그는 고개를 한강 쪽으로 휙 돌렸고, 그는 헝 크러진 머리를 겨우 정리할 수 있었다. 앞머리가 날리면서 드러난 이마와 강직한 콧대로 이어진 그의 옆 모습. 아련하게 한강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을 영원히 봐야하는 저주에 걸린다고 해도 기껍게 바라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를 대놓고 계속 쳐다보고 싶었지만 그가 민망해할 것을 우려하면서, 고개를 돌린 그를 따라 나도 한강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동풍 탓에 볼 수 있게 된 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강물 표면의 일렁임이 마치 다시 산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끝내는 이 물이 바다로 나아가 흩어지게 되는 것을 600년 넘도록 바람이 막을 수는 없었건만, 각기 다른 데에서 온 물들이 한데 모여 얼마가 될지 모를 잠시동안 부대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그와 나도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좀 더 바람을 맞으며 그 시간에 머무르기로 했었다.
그 일이 있고 나는 2년 만에 잠실대교를 찾았다. 한강 진입로 한켠, 그때 꽤 오랜 시간 동안 공사 중이던 곳은 근사한 조형물과 벤치가 설치되어 쉬기 좋은 공간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 옆 산책로를 따라 이어진 조그마한 운동장은 내가 자주 오던 곳임을 확인하는 단서가 되어주었다. 나는 좀 더 걸어 대교 앞 편의점에서 알로에가 조금 씹히는, 알로에맛 초록색 음료를 샀다. 한강에 올 때마다 사 먹던, 이제는 그 기억조차도 이곳 잠실대교 편의점에 와야만 겨우 떠올릴 수 있는 음료였다.
어떤 취향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그것만 고집하는 습관이 내게 있었다. 장소든, 노래든, 향기든, 음식이든, 사람이든 나는 한 시절을 그것으로만 채우는 것이 그것에의 몰입이 좋아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절을 낯설은 익숙함으로 추억하는 이 여유로운 순간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더 이상 그것이 벅찰 만큼 좋지 않게 되고, 타성에 젖은 습관이 될 때까지 고집하는 것은,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도록 미래의 나에게 힌트를 심어두는 작업이 었다. 내게 어떤 바람이 불었었는지, 그 바람 안에서 나는 얼마나 머물렀고 감사했는지. 끝내 바다로 떠밀려 왔지만, 다시 비를 뿌려 또 이곳에 오게 되었을 때 어떤 바람이 불어올지 기대 하는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