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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꿈이 May 30. 2023

엄마의 열일곱, 딸의 열일곱

- 딸의 중간고사 시험을 지나가며 -

늦은 시간까지 핸드폰을 하는 고등학생 딸을 보니 

불안한 감정을 일으키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저래서 어떻게 대학을 가겠다는거지?’ 

‘어휴.. 진짜 답답하다.. 세상이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고..’ 

‘지난 중간고사 때 망해으면서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어..’ 

‘아주 세상의 쓴맛을 봐야지 정신을 차릴려나?’ 


불안한 감정을 잠재우고자 기도하기도 했다가, 관심있는 분야에 대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한계에 다다랐는지 결국 아이에게 다가가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잠은 언제 잘 예정이니?”

이 한마디만 간단하게 던지고 돌아왔어야 했는데 나의 이성은 감정을 이기지 못했다. 

역시 나는 연약하다. 



“너 지난번 중간고사 점수 엄마가 모를 줄 알았니? 

너 이렇게 하다가는 네가 원하는 곳 못가! 정신좀 차려!!” 

말하고 나서 순간 아차! 싶었다.

 역시나 가는 말이 공격적이니 오늘말도 공격적이다. 


아이는 대뜸 “엄마가 뭔 상관이야! 엄마는 제발 나한테 좀 신경꺼!” 이렇게 응수하는 것이 아닌가.. 

안그래도 불안했던 내 마음에 돌이 던져지니 아이에게 모진말들을 불나방처럼 내뱉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대책없는 말들이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이런 말들을 아이에게 내뱉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부끄럽다. 결국 아이는 자기 분에 못이겨 발을 동동구르며 울음을 터트린다. 

결국 남편의 물리적인 제지로 서로 방으로 들어갔고 일단락 되었다. 


침대에 누워 늦게까지 분에 못이긴 나는 뒤척이다 늦게서야 잠이 들었고 아침이 되어서야 이성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엄청난 죄책감에 아이가 등교할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못했다. 

남편이 아이를 보듬어 학교를 보내고 나서야 문을 빼꼼히 열고 나왔다. 

남편과 아이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아이에 대한 미한함에 결국 펑펑 울고 말았다. 


“아이가 학교에서 적응하느라 애썼던 거 내가 충분히 알고 있는데, 

어제... 도대체 왜 그랬을까?"


아이의 미래를 이유로 성적을 걱정했지만 나의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딸에게 이기적이었고,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아이의 성적이 곧 나의 부풀려진 어깨뽕이었고 잘 만들어진 옷이었다. 

아이의 성적이 곧 나의 자랑거리였다. 


“저집 딸이 공부 잘한대” 유치하게도 이런 소문이 나에게 들렸으면 했던 것 같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딸아이는 내 고등학교 후배가 되었다. 

아이의 입학으로 25년만에 다시 방문한 학교는 거의 그대로였다. 3년동안 꽃다운 시절 보냈던 그 교정을 딸과 함께 거닐자니 감상에 젖었는지, 아이가 나처럼 이 교정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고등학교때 재밌었던 거 같아. 다시 오지 않을 3년이란 시간동안 후회없이 재밌게 보냈으면 좋겠어” 

이렇게 아주 멋드러지게 말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딱 2가지 정보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한가지는 고등학교 동창이 학교 선생님으로 있었던 것이고 

두 번째 정보는 입학생의 전교1등이 다른 동창의 딸이었다. 


희극이 비극으로 전환되는 순간은 아주 짧다.


나의 야수같은 본능이 일깨워져 이 아이를 공부시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동안 잠자고 있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열등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입학한지 100일이 지났고 중간고사 결과가 나왔다. 친구 동창의 아이는 여전히 전교 1등이었고, 내 아이의 성적은 엉망이었다. 이 사실은 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아.. 내 아이의 성적이 다른 친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아닌가?' '아.. 내 딸은 왜 나를 부끄럽게 하지? 엄마 체면 좀 살려주면 안되나?' 라는 이상한 생각들은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했다. 

 

나의 열등감은 고스란이 아이에게 전달되어 열등하게 느끼며 괴로와 했을 것이다. 나의 불안은 아이가 학대라고 생각할 만큼 통제했을 수도 있다. 나의 질투심은 아이에게 비수처럼 날아가 심장을 파고들었을수도 있다.  아이에게 불나방처럼 독설을 내뿜던 나의 모습은 마치 악마와 흡사했으리라.



엄마의 열일곱에 해결되지 못했던 상처가 너의 열일곱을 힘들게 하는구나..

엄마의 열일곱 상처는 엄마가 해결할테니, 아이야.. 너는 너의 열일곱을 충분히 즐겨라..

   


사실,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십수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인생은 참 길고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공부를 못했던 동창이 돌고돌아 과학선생님이 되어있기도 하고, 

손기술이 좋았던 친구는 속눈썹연장술을 배워 돈을 억수로 벌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공부를 그냥저냥 했던 동창은 성실한 태도로 석사 박사를 밟아 간호학과 교수가 되어있기도 하다. 

사람의 미래일은 한치앞을 모른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친구들의 이야기 듣는 것을 재미있어 했고 이로인해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결국 나는 듣는것이 직업이 되었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된 친구는 가르치는 것이 재미있었고, 늦게서야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사대에 편입하여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이러한 긍정적인 경험들로 가득찼던 것이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갈때 좋은 연료가 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우리 아이가 고등학교 시절 긍정적인 경험들로 가득찬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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