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전시가 끝난 후에

꿈을 현실로 만드는 시간

by 일요작가

2021년 가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가을이었다. 일교차는 컸지만, 맑고 청명한 날들이 이어졌다. 드디어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고, 삼청동의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나서 2년여간 이 날만을 기다려왔다. 그동안 브런치에 남긴 글들도 개인전을 향한 여정의 기록으로, ‘첫 번째 개인전을 하는 날’의 소회를 한가득 적으며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막상 개인전을 마치고 보니, 화가로서 한 챕터를 완성한 줄 알았는데 이제 겨우 첫 장을 넘겼을 뿐이었다.


첫 개인전에서 받은 뜻밖의 선물은 전시장을 채운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제가 생각보다 진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라고 소식을 전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지인들에게 그림을 그리며 달라진 나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들 회사를 그만둔 거나며, 언제 이렇게 준비했냐고 놀라워했다. 전시장은 내가 선택한 뜻밖의 길을 축하하고 애정을 나누는 공간이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삶의 의미나 존재의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해야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쓸데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의미를 찾아서 무엇을 할 것이며, 우리는 그저 존재하기에 존재하는 것일 뿐 아닌가.


전시장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문득 나란 존재가 궁금해졌다.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뭐라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와 두 손 흔들며 반겨주는 걸까. 찾아와 준 이들의 안부를 물으려 했는데, 오히려 내 안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전시 철수는 보통 정오 이전에 마무리되어 오전 반차만 내도 충분했지만, 과감하게 연차를 냈다. 사무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오랫동안 바라온 꿈이었고, 꿈에서 막 깨어난 몽롱한 기분을 음미하고 싶었다.


갤러리를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전시장을 둘러봤다. 북적이던 공간이 텅 비어 있는 걸 보니 기분이 묘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뭐 그런 공허함은 아니었다.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얼른 집에 가서 방명록을 읽고 싶었다. 천천히 방명록울 읽으며 여운을 즐기고, 근사한 저녁을 먹거나 원 없이 잠들어도 좋겠다 싶었다. 전시 준비로 긴장했던 나날을 지나,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


이 날을 위해 <You made my day>라는 글귀가 적힌 빨간 표지의 방명록을 직접 만들었다. 학창 시절, 수련회에서 캠프파이어를 마친 뒤 친구들과 롤링 페이퍼를 주고받던 감성을 좋아했다. 요즘 갤러리에서는 방명록을 거의 두지 않지만, 촌스러워 보일지라도 나만의 감성을 담고 싶었다.


방명록을 펼치자 첫 장부터 판다들이 반겨주었다. 어린아이가 그린 귀여운 판다부터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정교한 판다까지.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일상이 곧 예술임을 깨달았다. 이미 우리 모두가 아티스트라는 것도. 마치 내 말이 맞다고 끄덕이듯, 빨간 방명록 속 페이지마다 저마다의 솜씨를 뽐낸 그림들이 채워져 있었다.


신기하게도 모든 메시지에는 판다와 함께 나를 향한 응원이 빠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직장을 다니면서 뭔가를 해낸 내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짠한 마음인 걸까?


퇴근 후에 고군분투하며 준비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저녁 먹는 시간도 아까워 곧장 화실로 향하고, 잠들기 전에는 작가 노트를 쓰고 포토샵 작업을 했다. 연차를 내고 갤러리 인터뷰를 다닌 일들은 이제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되었고, 때로는 새로운 영감이 되어 돌아왔다. 틈틈이 참여한 단체전과 아트페어에서는 소중한 인연을 만났고, 그들도 나를 응원한다고 했다. 응원한다니, 나를... 누군가에게 응원을 받는 삶이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방명록을 덮고 겉옷을 사부작 챙겨 입었다. 그리고 화실로 향했다. 화실에 들어서니 학생들이 나를 보고 놀랐다. “왜 쉬지 않고 나왔어요?”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겨우 들릴 듯 말했다. '아... 작업하던 게 있어서요.'

목소리는 시원찮았지만, 프로답게 대답을 한 것 같아 내심 뿌듯했다. 그래, 나는 한 번의 개인전을 위해 그림을 그린 게 아니었다. 단지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행복했을 뿐이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늘 그렇듯 화실 문 닫는 시간까지 작업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전시장에서 온 짐들이 현관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내일 출근을 해야 하니 일단은 못 본 척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나는 ‘팀장'으로 돌아왔다. 보고서를 검토하고 회의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퇴근 시간, 자연스럽게 화실로 향했다. 어제 못 다 그린 판다를 완성 해야 했다.


밤 10시, 집에 돌아오니 현관 입구를 캔버스들이 여전히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게 다 들어가려나, 조심스레 하나씩 집업실로 옮겼다. (방 하나를 '집업실'이라 부르며 작업 공간으로 쓰고 있다.) 포장까지 되어 한층 두툼해진 캔버스들이 방 한쪽을 온전히 차지했다. 겹겹이 세워진 작품들도 답답해하는 듯했다. “열작해서 얼른 갤러리로 보내줄게.” 그렇게 작품들을 달랬다.


화가가 되기로 하고 바로 개인전을 하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퇴근 후 시간은 빛처럼 빠르게 흘렀고, 나는 느리고 느렸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때로는 시간을 만들어 내어 매일 조금씩 그렸다. 느렸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 모여 마침내 화가로서 첫선을 보였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미 알고 있다. 한 번의 전시가 인생을 바꿔놓지는 않는다는 걸. 개인전 한 번, 아니 서너 번을 더 한다 해서 갑자기 유명해져서 명성 높은 갤러리에 초대를 받고, 드디어 전업화가가 되는 해피엔딩은 일어나지 않을 테다. (지난해, 다섯 번째 개인전을 했지만 난 오늘도 출근했다.)


인생은 달라지지 않아도, 나는 조금씩 달라져 갔다. 개인전을 준비하며 얻은 것들이 참 많다. 공모전의 기쁨과 슬픔, 아트페어의 시간들, 작품에 빨간딱지가 붙는 순간까지. 화가가 되어 처음 맞이하는 모든 순간이 특별했고, 그 순간들이 쌓여 나는 점점 단단해져 갔다. 그저 개인전은 화가의 일 중 하나일 뿐이다.


어쨌든 ‘최소 개인전 1회 이상’이라는 경력 한 줄이 채워졌다. 이제 더 다양한 공모전에 도전할 수 있다. 두 번째 개인전은 갤러리에서 초대받는다면 정말 좋을 텐데. 아직 정해진 계획은 없지만, 기회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그러니 퇴근과 출근 사이에 부지런히 신작을 준비해야 한다.

전시를 마친 작가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

이제 진짜 시작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