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첫 개인전
작가님, 하고 불리면서 생긴 목표가 있다. 바로 개인전이다. 화가가 되었으면 개인전을 해야 한다. 공모전이나 경력을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작가답고 싶어서 첫 번째 개인전이 간절했다.
화가라는 호칭이 낯설게 느껴질 때마다 그렇게 불릴 자격이 있을까 하고 나 자신에게 되물었다. 자격지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최소 개인전 1회'라는 의식을 빨리 치르고 싶었다. 일단 개인전을 하면, 설령 변덕으로 작품 활동을 멈추더라도 한때 화가였다는 추억팔이를 할 수 있을 테고, 시작한 이상 삼세번은 해보겠다는 동기부여가 되리라 기대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시간도 실력도 부족한데, 조급한 마음만 앞섰다. 전시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작품 수가 필요했고, 마감까지 얼마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지 계산해야 했다. 예상치 못하게 판매라도 되면 서둘러 새 캔버스에 젯소칠을 해야 한다. 이런 셈을 해 가며 준비하던 중, 든든한 지원군이 나타났다. 다름 아닌 본업이었다. 홍보팀에서 일하며 쌓은 경험이 여기서 빛을 발했다. 하루라도 빨리 벗어버리고 싶은 사원증 속의 내가, 처음으로 회사가 아닌 나를 위해 일했다.
작업이 거의 마무리될 때쯤 본격적으로 전시회 준비에 나섰다. 하나의 이벤트였다. 이럴 때 우리 홍보팀이 있으면 딱인데, 직장에서 내가 맡고 있는 팀을 그대로 데려 오고 싶었다. 디자이너, 영상 PD, 홍보 기사를 써줄 대리님까지-일을 맡기면 다들 척척 해낼 텐데. 어쩔 수 없다. 팀원들에게 업무를 분담했듯, 이번엔 나 자신을 써먹어야 한다. 이래 봬도 어설프지만 디자인까지 가능한 경력직 아닌가.
초대전이라면 갤러리에서 지원해 주지만, 대관 전시는 모든 준비를 작가가 직접 해야 했다. 기획부터 제작, 노출까지 신경 써야 했다. 월급만 받는 줄 알았던 직장 생활이 이런 데서 도움이 될 줄이야.
가장 먼저 전시 콘셉트를 정해야 한다. 다행히 전시는 작품 자체가 콘셉트였기에, 작가노트를 바탕으로 수월히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홍보를 하려면 작품 촬영은 필수다. 보통 미술 전문 사진가를 섭외해 촬영하는데, 비용을 고려하면 한 번에 몰아서 찍는 것이 유리했다. 현수막이나 엽서에 들어갈 대표작은 제작 기간을 감안해 늦어도 전시 2주 전까지 보정을 마쳐야 했다. 촬영일이 곧 작품 마감일이었다. 물감 마르는 시간을 계산해 가며 서둘러 전시작을 마무리했다.
촬영한 사진으로 기본적인 홍보물(현수막, 포스터, 엽서)을 제작하고, SNS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미리 리사이징해 두었다. 홍보 담당자로서도, 화가로서도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개인전을 하면 꼭 해보고 싶은 기획이 있었다. 미술관처럼 그림만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작가 노트 속 문장을 배치하고 싶었다. 작품과 함께 보고 읽으며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우연히 들른 관람객들도 작가가 어떤 마음을 담았는지, 왜 판다를 그렸는지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아무래도 직접 나서서 설명하는 건 수줍을 테니, 전시 공간이 대신해 작가의 생각을 다정하게 전해주길 바랐다.
첫 번째 개인전이라 지인들로 가득할지도 모르지만, 그동안의 작품 활동을 통해 내 그림을 알게 된 사람들도 있을 거라는 살짝 기대를 했다.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홍보하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내 것을 알리는 일은 부끄러웠다. 우물쭈물하는 나를 보고 친구가 나섰다. 프로답게 얼른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블로그에도 올리라고 했다. 기사는 다행히 아는 기자님이 나서서 챙겨주셨다. SNS에는 인플루언서가 올려주는 게 최고의 효과인데, 내겐 친구들이 어느 누구보다도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였다. 살짝 압박을 넣어 인스타그램에 얼른 올리라고 했다. 뒷광고비는 닭 한 마리 칼국수면 충분했다.
대망의 개인전을 10일 정도 앞두고, 공식적으로 인스타그램에 초대글을 올렸다. 마지막까지 직장에서 배운 기술을 발휘했다. 짧은 글이지만 몇 번을 고쳐 썼는지 모른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진짜 화가로서의 시간을 맞이할 차례다. 그림의 시작은 다름 아닌 간절한 퇴사였다. 퇴근 후 마음 편히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건 월급 덕분이었고, 첫 개인전을 해낼 수 있었던 건 직장에서 쌓은 경험이었다. 그동안 사원증에 갇혀 산 줄만 알았는데, 모든 것이 쓸모 있었다. 어쩌면 직장인으로서 살아온 모든 경험이 모여, 화가로서의 삶도 나답게 채워가는 중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