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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 있다는 건

달리기의 시작

by 일요작가

매일 아침 달리는 작가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라, 나의 그림 선생님 이야기다. 그는 집을 그리는 서양화가이자 내게 그림을 가르쳐 준 화실 원장님이다.


선생님이 아침마다 달리는 이유는 하루키와 같다. 오직 작업을 위해서다. 온종일 앉아서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운동은 필수다. 누구든 움직이지 않는다면 금세 몸이 망가진다. 가장 먼저 배가 나오고 엉덩이가 커진다. 과체중의 문제를 떠나 목, 어깨, 허리, 손목까지 무리가 오게 된다. 오래도록 일을 하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일본의 소설가도, 석촌동의 화가도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한다.


선생님의 달리기는 꽤 오래됐다. 10년 전 화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매일 아침 러닝머신을 뛴다고 했다. 그러다 이사를 하며 러닝머신을 버리고, 집 근처 산을 달리기 시작하셨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틈만 나면 달리기를 예찬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신축 아파트에 살게 되어 신이 나신 건지, 애청하는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잠시라도 자연 속에 있다 와서 좋은 건지 그렇게 아침에 달린 일을 자랑하셨다. 100호 크기의 전시작을 완성한 이야기보다 10km를 달렸다는 기록을 자랑하는 날이 많았다.


확실히 그는 건강한 작가의 면모를 가졌다. 몇 시간 동안 붓을 잡고 캔버스로 시선이 향해 있어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전날 술을 마셔도 늘 하던 대로 작업을 이어갔다. 선생님 특유의 밝은 에너지와 건강한 루틴은, 흔히 예술가 하면 떠오르는 술과 담배, 그리고 밤낮이 바뀐 생활 같은 편견을 깨뜨렸다.


나도 꾸준히 체력 관리를 하는 편이긴 하다. 목과 어깨가 자주 결려 도수치료를 받다가, 스트레칭이 답이라는 말에 요가를 시작했다. 근력을 키우려 개인 PT를 받아 봤고, 체력을 위해 테니스도 배웠다. 하지만 달리기는 예외였다. 걷는 건 좋아했지만, 학창 시절 체육 시험 이후로는 제대로 뛰어본 적이 없었다.


여느 날처럼 퇴근하고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석촌호수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날은 왠지 모르게 발걸음을 점점 더 재촉했다. 탁, 탁. 땅을 살짝 차며 내딛는 걸음이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애매한 속도가 됐다. 마침, 달리는 무리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무심코 그들을 따라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숨이 차올랐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거친 호흡이었지만 마시고 내뱉는 숨소리에 발걸음이 맞춰져 갔다. 겨우 반 바퀴를 돌고 땀을 쏟아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개운했다. 선생님을 따라 하는 일은 언제나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줬다.


그날 이후, 호숫가를 걸을 때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조금씩 재촉하게 됐다. 처음엔 몇 걸음 정도였지만, 점점 달리는 시간이 길어졌고, 어느 순간 주말 아침이면 러닝화 끈을 단단히 묶고 집을 나서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를 따라 한 첫 번째 일은 매일 그리기였다. 작업할 때가 가장 즐겁다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좋아하던 일이라도 매일 쉬지 않고 하면 지치거나 질릴 법도 한데, 그는 언제나 기운이 넘치고 밝았다. 나도 그림을 그리면 매일 행복할 수 있을까?


답을 찾기 위해 매일 그려 봤더니 어느새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처음 가는 길이라 길을 헤맬 법도 한데, 다행히 내겐 지도가 있었다.


인생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안전한 지도를 손에 쥐는 것과 같다. 선생님은 화가로서 직접 경험한 시행착오와 노력의 흔적으로 길을 닦아 놓으셨다. 돌아가는 길에서는 지름길을 알려주셨고,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을 때는 방향을 바꿔 나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무엇보다도, 화가로서의 여정이 즐겁고 계속 나아갈 가치가 있다는 걸 몸소 보여 주셨다. 화실 수업을 하면서도 작품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매일 연구하고 고민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화실 1열에서 그의 성공기를 지켜보는 영광을 누렸다.


이제 나도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야 할 나이임에도, '쌤, 쌤!' 하고 작품은 물론 인생 고민을 상의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선생님은 지도 그 이상이다. 작품을 포장하는 요령, 갤러리와 소통하는 센스, 진도가 꼬이면 푸는 기술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처세술과 (당신은 해 본 적 없는) 직장생활 노하우를 알려주곤 한다. 무엇보다 삶을 바라보는 방식까지도.


나는 불편하면 피하고 마는 회피형 인간이다. 관계든 일이든, 불편해지면 선을 긋고 도망치기 바빴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꼭 그렇게 극단적으로 피할 필요가 있냐고 했다. 모든 걸 단칼에 결정하기보다, 때로는 그 자리에서, 정 힘들다면 한 걸음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일러 주셨다. 서울 생활에 지쳐 스페인으로 떠나려 했을 때도, 나를 잡은 건 그의 한 마디였다. "그럼 이제 그림은?"


그렇게 나는 화가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 그런 이유로 서울에 남았다고 하면 그는 그냥 한 말이었을 뿐이라며 부담스러워한다. 하지만 나는 ‘그냥’이 결코 그냥이 아님을 안다. 어떤 말은 스쳐 지나가지만, 누군가에겐 깊이 스며든다. 나는 좋은 사람이 주는 기운을 믿는다.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이 강산이 변할 만큼 길었는데도, 스승의 날을 제대로 챙긴 적이 없었다. 그는 우리가 스승의 날이나 생신을 챙기는 걸 극구 사양하셨지만, 한 번쯤은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스승의 날이라고 선물을 사 본 게 얼마 만인가! 초등학생 이후로 처음인 듯하다. 성인이 되어 스승의 날을 챙길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울긋불긋한 카네이션 꽃송이들을 지나 회색과 빨간색 조합이 예쁜 러닝화를 골랐다. 덕분에 저도 달리기를 시작했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월급쟁이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런 걸 샀냐"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바로 신어 보셨다. 다행히 발에 꼭 맞았다. 색깔은 어떠냐는 물음에 러닝화는 블랙이라며, 다음에 참고하라고 했다.


'선생님이 오래 달리셨으면 좋겠다'며, '제가 그 뒤를 따라 달리겠다'라고 손글씨로 쓴 카드도 전했다. 그걸 보신 선생님은 "뒤따라오지 말고, 앞질러 가"라고 하셨다. 나이가 많든 적든, 또 누가 먼저 시작했든 늦었든 상관없는 화가라는 직업이 참 매력적이지 않냐며. 그러니 이제 나만의 레이스를 즐겨 보라고 하셨다.


말 잘 듣는 제자는, 스승이 내 준 새로운 숙제를 해보려고 한다. 내 속도로, 나만의 길을 달리기. 함께 달려도, 결국엔 달리는 건 혼자다. 그러나 결코 혼자가 아님을 안다. 멀리서 나의 길을 지켜보는 스승이 있기에 나는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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