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유미
개인전은 어느새 내게 중요한 연례행사가 됐다. 처음에는 ‘화가라면 전시를 해야 한다’라는 사명감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가수가 정기적으로 앨범을 발표하듯 매년 한 번 나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이고 있다.
가능하면 신작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 퇴근과 출근 사이 모든 시간을 쏟아 나만의 ‘새 앨범’을 준비했다. 보통 준비는 전시일 한 달 전, 늦어도 보름 전이면 마무리되었다. 그때부터 시작 전까지는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개인전이 끝나면 마음껏 쉬리라 다짐했지만, 막상 휴식의 순간이 와도 또다시 이젤 앞에 앉았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곧 나의 휴식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사람을 찾고, 약속을 만들어 휴식했다. 어디든 불러주는 곳이라면 달려갔다. 외로움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으려 하루를 가득 채웠다. 그러다 이젤 앞에서 처음으로 혼자 보내는 시간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나와 데이트하듯 산책하고, 책을 읽고, 색을 칠했다. 그러나 화가가 되어 전시를 준비할 때면, 그림은 휴식이 아닌 일이 되었다.
초대전을 두 차례, 6개월 간격으로 마친 즈음이었다. 2년 동안 거의 회사와 화실만 오가며 지냈다. 전시를 마친 뒤에도 습관처럼 붓을 들었지만, 무엇도 그릴 수 없었다. 번아웃인가 싶었지만, 작업을 향한 에너지와 열정은 여전히 넘쳤다. 문제는 ‘무엇’을 그릴지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머릿속은 텅 비었고, 캔버스는 아무 말도 걸어오지 않았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해야 하는데, 영감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내 안의 감정과 장면, 이야기를 쏟아내기만 했지 제대로 채울 여유는 없었다. 창작의 소재를 찾으려면 내 삶을 관찰해야 한다. 하지만 회사와 화실, 두 공간을 오가기 바빠 하루 30분조차 나를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렇게 작업이 멈춘 날, 나는 쉬는 법을 잊은 사람 같았다. 모자란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이래도 되나 싶어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거의 10년을 퇴근 후 화실에서 남은 하루를 보냈던 터라 가만히 누워 있자니 저녁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책을 집어 들어도 집중이 안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자니 불안했다. 낯선 공백이 방 안 가득 차 있었다.
창작자는 자기 삶에서 감성적인 소재를 많이 채집할 수 있어야 오래 창작할 수 있다고 했다. 나 역시 그림 외에 내면을 채울 채집활동이 필요했다. 물론 그림 그리기는 내면을 돌보는 나만의 방식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목적 있는 휴식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무엇으로 나를 채우고, 어디에서 영감을 찾아야 할까.
답을 찾기 위해, 의식적으로 쉬어보기로 했다. 처음엔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아이디어를 떠올리려 애썼지만, 결국 침대에 누워 생각하다 잠들고 말았다. 넷플릭스에 쌓아둔 시리즈를 몰아보기도 했고, 어떤 날은 석촌호수를 천천히 걸었다. 그동안 퇴근 후 작업으로만 채웠던 일상을, 한때 특기였던 빈둥거림으로 메워 나갔다.
바쁘게 관찰하던 시선을 거두고 하루를 관망하며 사색했다. 길고양이가 기지개를 켜고 있는 주택가에는 담장 너머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 아래 녹슨 자전거 한 대가 기대어 있었다. 거리에서 다투는 연인을 보며 사랑을 느꼈고, 빛이 들지 않는 방 침대 위에 우스꽝스럽게 놓인 이불을 보며 아침의 소동을 떠올렸다. 장면 하나하나가 내 안에 작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사람을 찾았다. 미루던 모임에도 나가고, 오래된 친구들과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예전엔 혼자 있는 불안을 달래려 아무 약속이나 만들었지만, 이제는 나와 결이 맞고, 내가 좋아하며 나를 좋아하는 이들을 만났다. 더 이상 누군가를 만나도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활기가 내 안을 따뜻하게 채웠다.
멈췄던 여행도 다시 다녀왔다. 직장 때문에 어딘가의 한 달살이는 하지 못했지만, 연차를 붙여 긴 주말을 만들어 가족들과 여행했다. 여행 일정을 짜고 맛집을 찾는 설렘도 오랜만이었다. 계획이 흐트러져 가족들이 나만 바라보는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두 번은 못 할 노릇이야’하고 투덜대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다 점점 만남도, 휴식도 조금씩 시들해졌다. 익숙해진 즐거움은 무뎌지고 기대하던 설렘 대신 허전함이 자리를 차지했다. 게으르고 바쁘게 채우던 쉼이 헛헛해졌다. 지루함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림의 시작도 그 지루함에서 비롯되었다.
지겨운 회사 일을 마치고, 다시 지루한 저녁을 맞으러 가는 퇴근길이었다. 지하철역을 나서자 길고 크게 이어진 구름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순간, 오래전 올려다본 하늘과 그 아래 빛나던 취미 미술 학원 간판이 겹쳤다. 지루하다 못해 무기력했던 그날, 나는 그림을 배우기로 결심했었다. 그 하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얼른 핸드폰을 꺼내 하늘을 담았다. 이제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적 없이 보낸 시간도 결코 헛되지 않았다. 모르는 사이, 내 안에 작은 구슬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파스텔 빛으로 물든 구름, 담벼락 위 붉은 장미, 발그레한 조카의 통통한 볼살을 떠올리며 캔버스에 담아 나가기 시작했다.
영감은 그렇게, 일상의 틈에서 왔다. 우리는 단지 틈 사이로 시간을 흘려보낼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지루함을 밀어내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보면 한순간의 기억이, 하나의 장면, 한 줄의 문장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 쌓인 구슬들을 하나씩 꿰어 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