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립 flipped

일요일의 방

by 일요작가

혼자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서툰 때가 있었다. 주말 오후에 약속이 없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수요일 정도에 약속이 생기지 않으면 벌써부터 우울해졌다. 매일매일 친구와 연인과 함께 하루를 살았다. 20대에는 원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었다. 인기쟁이가 아니었음에도 매일이 만남으로 바빴다. 젊음의 체력이 소진되면 종일 잠으로 체력을 보충했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와 시간을 보냈다. 이쯤 되면 알 것이다. 타인과 보내는 시간은 금세 지치고 헛헛하기 마련이다. 깨달음 덕분인지, 나이가 들어 그런 것인지 알 순 없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찾기 시작했다.


약속이 없는 날에도 누군가를 찾기보다는, 잠을 자거나 서점을 찾았다. 책을 고르고 사는 것은 꽤 근사한 행위였다. 지적 허영을 채우고 시간도 금방 흘러 보냈다. 진득한 탓인지 게으른 탓인지 한자리에서 책 한 권을 뚝딱 읽어 내는 것에 무리가 없었다.


그렇게 방 한구석을 책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쌓인 책을 가만히 보면 혼자 보냈던 시간의 기록이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을 읽었다. 고민이 생겨도 책을 찾았다. 책 속에서 해답을 얻기보다는 생각을 멈추기 위한 딴짓거리 중 일환이었다.


책은 그 자리에서 다 봐야만 했다. 영화처럼 말이다(영화를 누가 끊어 본단 말인가). 책을 좀 읽는다는 사람이 되면서 책을 읽는 무리를 찾았다. 그들과의 대화는 유익했다. 나의 독서법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했다. 인생 책이라며 흥분하며 추천하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마음을 쿵하게 했던 글귀 한 구절이 기억나지 않았다. 글을 읽은 것이 아니라, 책을 보는 행위 자체의 허영만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기 위해 조용한 카페를 찾은 것이 아니라 카페에 가기 위해 책을 챙겨 들었다.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다독하기보다는 정독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책을 사지 않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읽지 않고 쌓아 둔 책을 다 읽기로 했다. 읽었던 책은 다시 한번 책장을 넘겼다. 더 이상 독서는 취미가 아니었다. 책을 읽는다며,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았다. 휴식하는 중에 책을 꺼내 들었다. 취미가 아닌 습관으로 반복했다.


잠들기 전 좋아하는 시 한 구절을 읽고, 눈을 뜨면 그 날 읽을 책을 찾았다. 티백이 우려 나기를 기다리면서 책장을 넘겼다. 일하기 전 독서와 차 한 잔은 잔뜩 힘이 들어 간 어깨의 긴장을 풀어줬다. 조금씩 나눠가며 읽어 내려 간 책이, 오히려 한 달에 1권 읽기라고 다짐한 목표의 권 수를 넘어섰다. 반복되는 20분이 이렇게나 길고 대단하다.


일요일이면 책 한 권 읽을 시간을 의식했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파묻을 집중의 공간을 만들었다. 일요일에는 묘사와 색이 풍부한 책을 읽으려고 한다. 가족과 아이, 자연이 나오는 소설이면 좋았다. 플립, 길버트 그레이프가 그렇다. 화목하거나 그렇지 못한 가족의 이야기는 언제나 나를 울린다. 가족과 함께 했던 10대를 회상하게 하고, 떨어져 지낸 20대를 그리워하게 한다. 그리고 언젠가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을 기대하게 했다.


소설 속 아빠는 딸아이에게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라고 조언한다.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한 줄기 빛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한데 모으면 마법 같은 일들이 생긴다’는 아빠의 말에 몇 시간이고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는 딸의 모습에서, 나를 찾았다. 해 질 녘 하늘은 가끔 보랏빛으로 물들고 때로는 타는 듯이 붉게 물든다. 그 노을을 그리고 책 속 아빠의 말을 가슴속에 새겼다. 어둑해지는 일요일의 창 밖이 물 들듯 불타듯 황홀감으로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