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방
한없이 답답하고 우울해질 때 저마다의 해소법이 있다. 혹자는 달달한 것을 먹거나 술을 마신다. 운동하면서 풀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 슬픔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타로카드나 사주를 본다.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부정적인 기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나는 문제가 생기면 모든 감정의 스위치를 끄고 집으로 향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겁나지만, 위기의 순간에 믿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 참으로 든든한 나는, 이불속으로 숨는다.
미간에 보톡스가 시급한 주름이 더해지고 눈 밑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날이었다. 모든 일이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하늘에 서운한 하루였다. 회사에서는 복잡한 일이 생겼고 사랑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랑과 일, 일과 사랑. 그게 전부라고 프로이트가 말했지만, 내겐 그 두 가지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위로가 필요한 퇴근길이었다. 핸드폰 속 대화목록을 뒤적거렸다. 이번 주는 그 날이라 수영을 안 간다는 친구를 찾으려다 말았다. 얼마나 나오기 싫을지 알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를 찾았다. 요즘 사업이 힘들다던 친구의 대화창 상태 메시지는 심각했다.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프로필 사진까지 사라졌다. 나까지 보태기가 망설여졌다. 다음 친구도 그랬다. 야근 때문에 죽겠단다. 우리 모두 위로가 시급하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마다 친구를 찾을 수는 없다. 자칫 내가 품은 부정적인 기운이 친구에게도 전해질 수 있다. 힘들 때 곁에 있어 주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친구라고는 하지만, 자신도 모자라 상대의 기분까지 망치게 할 수는 없다. 내가 그런 친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감춘 채 혼자서 기분을 달래기 시작했다. 가끔은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던 예전의 내가 그립다.
위로에 있어 현실적인, 그리고 사랑스러운 기술은 바로 고기와 선물이다. 내 밥공기 위로 고기를 올려 주는 친구의 마음 씀씀이와 오후 3시에 도착한다는 택배 아저씨의 문자는 어떤 위로보다 특별하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다 힘들잖아. 그러니깐 힘내자!'라는 위로는 묘하게 나의 상황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가끔은 나의 슬픔이 특별했으면 좋겠다.
지극히 개인적인 처방은 수면이다. 머릿속을 비워 주는 나만의 해소법이다. 수영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하지만 기분이 바닥을 치는 날이면 운동할 기력조차 없다. 믿기 어렵지만 입맛도 없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캔버스 위로 사악한 잔상들이 떠다닌다. 그럴 때면 수면 속으로 도망친다. 나는 우울하고 나약한 것이 두렵다. 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다. 사실 보는 것도 불편하다. 누군가 아프거나 힘들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걱정하는 마음을 넘어 속상하고 화가 난다. 상실감에 빠진 상대를 구해주지 못하는 내가 못 마땅하다. 친구는 힘에 겨워 눈물을 짓는데 난 고작 '잘 될 거다.', '이 또한 지나가는 일이다, '라는 위로밖에 해 줄 것이 없다. 위로는 위로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는 시 구절을 기억한다. 함께 비를 맞지 못하는 나는, 결국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꿈속으로 도망친다.
이불속은 꽤 좋은 피난처가 된다. 게으른 나에게 딱 맞는 방법이기도 하다. 고민이 있고 골치가 아픈데 잠을 잘 잔다는 것에 대해 신기해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나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라도 잠을 잘 수 있다. 아무래도 타고난 재능인 것 같다. 이런 나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릴 때가 있다. 공복이거나 기다리는 연락이 있으면 그렇다.
사실 잠에서 깨어나면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적어도 깨어 있는 동안 커졌을 자괴감과 떨어질 자존감은 구제할 수 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충전된다. 모든 것이 리셋된다. 우리는 이미 고민과 걱정의 끝을 다 알고 있지 않은가. 하늘 아래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도 안다. 모든 문제는 해결되길 마련이고 잔인하지만, 한걸음만 물러서 보면 별 일이 아니란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수면은 그것을 다시 상기시킬 시간을 벌어다 준다.
수면은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꽤 과학적이다. 꿈이 그 도구가 된다. 수면 속에서 우리는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꿈으로 표현한다. 오늘 있었던 특별한 일들이 주제가 되고 출근길에 무심코 들었던 노래가 OST가 된다. 잊은 줄 알았던 과거의 일이 약간 또는 아주 많이 들어간다. 원하는 미래의 모습도 추가된다. 그렇게 한참을 꿈속을 헤엄치다 누군가 내민 손에 놀라 잠에서 깬다. 이내 손을 잡은 그 사람을 보고서야 안심한다.
불안한 마음을 멈춘다면 다시 자신의 인생을 사랑할 수 있다. 그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가 있다. 그러니 다시 깨어나야 한다. 나를 구해줄 당신은 바로 나 자신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