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를 회복해야 할지도

내가 도망쳐 왔던 광기의 세계로 돌아가는 길

by 윰윰
피하는 게 능사는 아니니까.



뭔가 쓰고 싶은데 뭘 써야할지는 어렴풋한 상태. 조증에 가까울 정도로 들떴던 때가 있었다. 들뜸, 환희, 신남, 흥, 의지로 불탔던 시절에 대해 생각한다. 그 시절에도 번뇌는 있었고 괴로웠다. 오히려 감정의 낙폭이 커서 더 감당하기 힘들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 있으면 바닥으로 추락하는 때도 있었다. 바닥으로 기분이 꺼져버리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울이 계속되는 것보다도 지독했다.


나는 병리적일 만큼 들뜨는 기쁨과 한없이 추락하는 우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언제나 힘들었다.


지금은 잔잔하다. 들떴던 게 아주 오래된 옛날 같다. 어쩌면 전생 같기도 하다. 힘은 다 빠졌고 세상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너무도 잘 안다. 몸을 갈아봤지만 그 방향성이 내 돈을 벌 거나 내 안위를 개선하는 쪽도 아니었다는 걸 인정한다. 쉽게 말해 나는 남 좋은 일만 했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자신의 몸을 갈아 일한다는 건 결국 이렇게 한 번은 꺾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약 삼사년 전쯤 내가 믿어왔던 세계관이 완전히 붕괴됐다. 사람이라면 이래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일말의 기준조차 사라졌다. 그러면서 알게 된 건데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순간이 온다. 빠르면 10대 혹은 20대, 대체로 30-40대, 늦으면 60대, 그 시기를 넘기면 죽기 직전이라도 한 번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본다. 내가 믿고 따라왔던,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무언가'가 사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서 무너진다.


어쩌면 이 생을 살아간다는 건, 깨어지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소설 <데미안>의 유명한 문장처럼.


서글픈 건 깨어짐 이후에도 생은 지속된다. 허깨비가 된 채로 먹고는 살아야 한다. 누군가는 그 순간에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못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몸을 힘껏 갈고 또 갈다가 죽는다. 혹은 그저 '나이 탓'이라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맞다. '나이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음과 청춘을 그리워하는 건 그때만 갖고 있는 '치기'를 그리워 하는 거라 생각한다.


이따금 나는 그 '치기'가 그립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요절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화려하게 불타고 일순간에 사라져버리는 무수한 사람들을 몹시도 동경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유독 좋아하는 사람들은 꼭 그런 사람이었다. 예술가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았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이 참으로 잘 맞는 세계다 보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물론 그들이 그 시절에 죽지 않았다면, 또 다른 인식을 갖고 색다른 결과물을 냈을 거라는 걸 지금은 잘 안다.


동경일 뿐, 딱히 바람직한 길은 아니라는 걸 안다.


예술적으로 찬란할지라도, 인생은 곤궁하고 몹시도 괴로웠을 거라는 걸, 그 사람 중에 몇몇은 (혹은 다수는) 평범한 삶을 동경했을 거라는 것도 안다. 고통스러운 만큼 토해내듯 무언가를 만들었을 거다. 고통에 비례하듯 박수를 받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애석하게도 고통만 받고 죽는 순간까지 단 한 명의 박수조차 받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박수는 받았으되 전해지지 않아 '알지 못한 채' 죽은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건 형벌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 형벌을 주는 것이 신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자유 의지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몹시도 지긋지긋하지만 많은 순간들이 지나가고 고락이 있다면 남는 건 분명히 있다.


한때 내 안에는 머리에 꽃단 년 하나랑 지독하게도 시니컬하지만 물불 안 가리는 차가운 불도저 하나랑 관조적인 중재자 하나가 있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에는 관조적인 중재자만이 남아 있다.


살기 위해서다.


창작을 일단 내려놓고 우선은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번아웃을 겪으면서도 어떻게든 쓰겠다고 발버둥치던 게 불과 3달 전이다. 나는 4월에 신체적, 심리적으로 극심한 번아웃에 시달렸고 5월에는 도망쳤다. 그리고 쉬지도 않은 채로 6월에 새로운 환경에 들어왔고 현재 7월 말이다. 그렇다면 쉬지 못한 게 맞다.


열의를 다 쏟아내 단거리 달리기를 하여 무언가를 쟁취하는 삶은 20대까지다. 몸이 감당해주질 못한다. 몸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열의를 불태우기도 힘들다. 과로는 죽음으로 가는 급행열차다. 잘 알고 있다. 내가 몹시도 사랑했던 무수한 사람들은 대체로 30대로 가지 못했고, 또는 30대 초중반을 넘기지 못했다. 마흔을 살아간 사람은 없었다.


근데 웃기지, 요절을 동경하면서도 목숨을 중요하게 여겼다. 좀 과하다 싶으면 기가 막히게 몸이 축나서 더 다치거나 건강이 악화되기 전에 나가 떨어졌다. 몸을 이리도 생각하니 살 수밖에 없는 거겠지. 내 지금 상태에서 한 두 스푼만 건강 염려증이나 예민을 덜어냈으면 내가 바라던 대로 됐을 텐데 애석하다.


나는 내 스위치를 잘 알고 있다. 나를 들뜨게 하는 것들을 보는 것, 흠뻑 빠지는 것, 취하는 것, 거의 넋을 반쯤 빼놓은 상태로 미친 듯이 쓰고 읽고 보고 또 쓰는 것. 사실 나는 끝없이 도망쳐왔다.


열시간 가까이 앉은 자리에서 타자만 두드려서 한 편을 완성했을 때 친구는 나한테 미친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순간이 좋다.


무위의 영역으로 접어드는 순간,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는 순간. 흠뻑 취해서 나도, 세상도 잊게 되는 그 찰나. 붕 뜨는 기분이다. 모든 걸 잊는다. 몰입이다.


미친 상태를 좋아하면서, 끝없이 도망쳤다. 처음엔 미칠까 봐, 그 다음에는 이상한 것들에 홀릴까 봐, 그 다음에는 몸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누구보다 겁이 많고 약하다. 실은 몹시도 나약한 사람이면서 안 그런 척 센 척하고 살아 왔다.


몸이 감당하지 못해야, 이상한 것들을 봐야, 내가 지금 억눌러 봉인해 둔 광기를 개방해야 내가 우울하지 않다는 걸 안다.


딜레마다.


방향성을 잘 잡아야 할 것이다. 타겟을 잘 조준해야 할 것이다. 중도에 내려놓지 않고 오래도록 갈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할 거다. 이런 저런 생각에 얽매여서 에너지가 없다는 걸 안다.


외면했다.


다시 황해도 만신굿이 끌리고, 군웅굿이나 산신제를 찾아서 보고 있는 걸 보면 회복이 되고 있는 거 같기도 하다. 기력이 빠질 때면 진오기굿이나 제석굿, 씻김굿, 불경들을 들었고 기운이 생기면 이북굿을 찾아 들었다. 웃기지만 내 나름의 상태 체크 방법이다.


또 하나, 다시 유튜브 빌런 플레이리스트를 찾아 듣고 있다. 기력이 떨어지면 보사노바나 리드미컬한 재즈를 찾아듣는다. 나는 귀가 예민한 편인데, 비트나 멜로디에 반응해서 흥이 솟기도 한다.


굿을 찾아 듣는 걸 이상해 하는 사람도 있던데 다른 게 아니라 징 소리가 좋다. 꽹과리 소리가 좋고 북소리가 좋다. 무언가를 두드리는 행위, 이를 테면 키보드 같은 걸 두드리는 거나 무언가를 두드리는 타악 소리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심장 박동과 닮았다. 무언가를 깨우는 것 같다. 또 예쁘잖아. 무복들이며, 굿판을 꾸며둔 원색의 컬러들.


모르겠다. 잠재우기보다는 깨워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야 하는지도. 딱히 깨우고 싶진 않았는데, 잠재운 상태로 살면 또 그 나름대로 몹시도 우울하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어떻게든 살아야지 한번 사는 삶.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글만 쓰며 살고 싶고 그러려면 내가 외면해 왔던 흥, 들뜸, 조증에 가까운 상태 속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빠져야 해내고, 취해야 취하며, 미쳐야 미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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