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독이는 글
사촌이 얼마 전 떠났다. 어릴 적 한때 우리는 친했으나, 마주할 일이 많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나는 그 아이를 알지만 모른다. 그 아이 역시 나를 알지만 모를 것이다. 오래 앓다가 떠난 그 아이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주위에 떠나가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계절이다. 나는 매번 마음을 다해 애도한다. 애도의 말을 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어떤 문장, 단어, 표현으로도 위로할 리 없음을, 채 닿기도 어려울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할 수 있는 말을 할 따름이다. 그저 내 할 만큼, 내 몫의 슬픔과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는 마음을 떼어내 그들이 가는 길에 내어줄 수 있을 뿐이다.
떠나간 이들이 바랐을 매분 매초, 하루를 오늘의 나는 살고 있다.
누군가 떠나가도 세상은 여전하다. 하늘은 화창하고 때론 우중충하며 또 때론 변화무쌍하다. 생은 가고 또 온다. 삶은 막을 내리기 전까진 이어진다. 어쩌면 이 삶이란 하나의 연극 같기도 하다. 영화 같기도 하며 소설 같고 때론 꽤나 버거운 게임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다. 살아있기에, 육신에 들어와 있기에 우리는 울고 웃고 화내고 반하고 사랑하고 증오하며 반성하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선다. 배가 고프고, 음식이 맛있고, 배가 부르고, 향을 만끽하며, 내 취향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육신의 밖에 영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육'을 떠나면 오육이라는 것도 '부재'하게 되는 게 아닐까. 내 주위에 있던, 내 주위 사람들의 곁에 있던, 아니 그저 이 생을 살아갔던 모두가 평온한 안식에 들길 바란다. 삶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우울하게도, 갑갑하게도 했던 모든 욕망과 갈급한 마음과 결핍, 소망 같은 것들은 모두 다 잊고, 잃어버리고 평안히 떠다닐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겠다.
생의 끝을 나는 끝나는 순간까지 모를 것이다. 기어코 알게 되는 그날이 오면 나에게는 입도 혀도 눈도 코도 손도 발도 심장도 뇌도 나라는 사람을 이루던 그 어떠한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불안마저 사라져버린, '무'의 세상이 못내 반가우면서 동시에 두려운 것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신을 믿을 것이다. 나는 한때 신을 믿었고, 지금은 잘 모르겠다.
신의 가호와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동시에 가혹을 느낄 때도 있다. 엄청난 가혹이라고 보긴 어렵겠으나, 내게 있어 삶이란, 매일의 생이란 매번 고단한 것이었다. 그 고단 속에 '락'이 있었다. 고, 락은 함께 가는 거겠지. 쓴 맛을 아니까 단 맛이 더 달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제 내어맡기기로 했다. 생이 흘러가는 대로 둬보기로 했다.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애쓰는 것은, 온 몸에 힘을 주며 긴장하고 사는 것은 참으로 고단한 일이다.
나는 누군가를 바뀌게 할 수 없고, 그것은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성격이 바뀔 순 있으나 그것은 신념과 가치관 역시 변했다는 뜻이다. 삼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며, 그 이전의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끝없이 움직이는 유기체 같다. 육신 안에 고정되어 있으되, 멈춰 있지는 않다. 변모하고 있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역시나 그 '좋음' 역시 누구의 잣대로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 내 마음이 편한 길이라고 하자.
'선의'가 살아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내가 바라보는 '선의'란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과 같이 여겨보려고 노력하는 자세다. 사람은 모두 이기적인 존재라, 저마다의 지옥 속에 골몰하여 살아간다. 결국 내가 가장 슬프고, 가장 사랑받고 싶고, 가장 어여삐여겨지고 싶고, 가장 성공하고 싶고, 가장 빛나고 싶다. 나 역시 그렇다. 그저 타인 역시 그런 존재임을, 모두 세상 안에서 분투하며 살아가는 참으로 어여쁘고 서글픈 존재임을 아는 것- 그렇게 하고 나면 그 누구도 미워할 수 없다.
문제는 나를 침범하는, 나를 공격하는 이들까지 미워할 수 없었던 시절에서 오는 우울이다. 나는 누군가를 미워할 수 없어 그 미움의 화살을 다 내게 퍼부었다. 그것은 참으로 고독하고 고단한 일이다. 여전히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몹시도 힘들고, 천천히 벗어나고 있다. 들어주지 않으려 외면했던, 나약하다고 내던져버리기도 했던 내 안의 여린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 나는 '나'라는 존재를 보호하는 자그마한 울타리를 세워보려 한다. 생애 처음으로 나를 위해, 오직 나만을 생각하며 애를 써본다. 이 세상 모두 다 이해하려고 하면 이해 못할 일이 없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서글프지 않은 생이 없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긍휼히 여겨야 한다는 걸 나는 서툴게나마 천천히 배우고 있다. 나를 보호하고 아끼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또한, 애도하는 마음으로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지. 또 하루치의 숨을 쉬는 것을 버겁게만 여기지는 않아야 하겠지.
몹시도 고단하고 힘겹던 어느 날엔가, 내 삶에 도대체 무엇이 남아 있나 생각했을 때 떠오른 건 결국, 역시나 '글'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이날 이때껏 나를 살게 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애도하는 글, 치유하는 글, 한풀이, 살풀이... 나는 글로 살풀이를 하고 싶다. 나조차 가늠할 수 없는 악의와 욕망, 결핍, 갈급한 마음, 서글픈 절규, 절망, 설움, 목마름, 애달픔, 거부 당한 마음, 끝내 보답받지 못한 선의, 불운한 액, 꼬여버린 마음, 싸움과 전의, 애끓는 희생, 구원이란 이름의 창, 말로 그어버린 상흔 같은 것들... 나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했을지도 모를 상처 주는 말과 행동, 표현들까지 털어내고 풀어내고 벗겨내고 새하얗게 표백하고 싶다.
내어놓고, 꺼내놓고 한바탕 해치우고, 한판 춤을 신명나게 추고 텅 비어버린 놀이판을 보며 느끼는 허망함... 그 허망함 끝에 누군가 그 위에 씨를 뿌리겠지. 그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뿌리내리고 한 그루의 나무가 되고, 군락이 되고, 수풀을 이루고 울창한 산이 되고 또 그 산에서 어리고 어여쁜 생이 태어나 숨을 쉬고 또 하나의 나라가 되고, 세계가 열리는 모양을 보고 싶다. 하나의 세계수, 세계수와 같은 글을 언젠가는 쓰고 싶다. 내가 참으로 힘겹고 고단한 어느 날, 글들을 읽으며, 글들을 씹어 먹으며, 끝없이 쓰며 살아난 것처럼 누군가 내 글을 읽고 하루치의 숨을 더 쉬고 싶다 생각한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일까.
단순히 글로서 위로하고 싶진 않다. 생이란 건 위로만으로 살 순 없다. 몹시도 각박하며 힘겹다. 살아간다는 게 악몽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이 삶이 꼭 감옥에 갇힌 것처럼 고되고 또 벗어나고 싶어 미칠 것 같은데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나와 같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힘을 얻을 수 있는 글이라면 어떨까... 결국에 인생은 여행이며 춤판이고 한 판의 신명난 극이라는 걸, 나 역시 배워가는 중인데 어느 때가 오면 아주 신나게 춤을 출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회복하며 쓰고 읽고 말하고 또 써야하겠다. 나의 혼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며 누구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하겠다,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