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유예

결론은 없다, 아직까지는. 어쩌면, 영원히.

by 윰윰


기나긴 우울의 늪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기록이다.


나는 내게 냉정한 경향이 있다. 자기연민이 많지 않단 소리다. 자기합리화도 잘 안 되는 편이고, 채찍질에 익숙하다. 징징거리거나 하소연해봤자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 왔다. 그렇게 병들었다.


병듦을 인정한 순간부터 내가 좀 불쌍했다. 불쌍한 내가 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삶의 의미가 그닥 없었다. 욕망이 한때는 많았으나 9년간 사회생활을 통해 사라졌다. 불살라봤자 타버리는 건 내 건강밖에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게 됐다. 회사엔 미래가 없다. 본래 회사란 조직은 일이 '되게' 하려는 사람보다 '안 되게' 하거나, '되게 하는 척' 하는 사람들이 오래 버티기 좋은 곳이다.


함께 일을 미루고, 모른 척하고, 남 탓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오래 곪았다. 아이러니한 건 회사, 업무, 일이 내가 딱히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라는 거다. 누군들 하고 싶어서 일을 하겠냐만은... 단지 돈벌이인 일에 너무 많은 시간과 감정과 에너지를 썼다. 참았기 때문이다.


남들 힘든 거 보이니까 내가 더하자는 착한 마음을 타고난 탓이다. 나는 착함은 미덕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핸디캡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장애물이다. 선한 사람은 대체로 이용 당하며, 선의나 호의는 '호구 인증 마크'가 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미련하게 참았다.


화내서 달라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투정부린다고, 회사를 때려친다고 마땅히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일용할 돈이 필요하고, 어쨋든 돈벌이를 위해 살아가야만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회사 외 다른 일을 해도 되지 않느냐 한다. 프리랜서 일 해봤다. 아르바이트도 해봤고, 서비스 직종은 안 해봤다. 글쓰는 것 외에 손으로 하는 일은 모조리 못하는 탓이며 그릇을 깰 것이 분명해서다.


살아온 인생을 객관적으로 사건 위주로만 나열해본다면 막상 또 그렇게 불우하진 않다. 나름대로 그냥저냥 나쁘지 않게 살았고, 일종의 성취도 했었다. 그것을 위해 '갈았던' 내가 회복이 안 되는 것뿐이다.


욕망도, 분노도, 기대도, 궁금증도, '해보고 싶다'라는 것도 없다면 지쳐 있는 거라는 글을 보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3년째 지쳐 있다. 그전까지는 욕망, '해보고 싶다', 궁금증. 기대가 있었다.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열정을 모조리 쏟고 몸까지 불태우면 이런 상황에 놓이는지도 모른다.


이쯤 되니까 딱히 할 일이 없다. 글쓰고 책보는 것 이외에.


해결책을 찾겠다고 버둥거렸는데 사면이 막힌 방에 갇힌 기분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학창시절에도 그랬다. 미치게 달려서 목표한 바를 이뤄내고 난 뒤에 몸이 몹시 아파서 다 내려놨을 때 그닥 하고 싶은 게 없었다. 나는 미래까지 보지 않아서, 내가 필시 20대엔 죽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글을 쓰기로 했다.


그때랑 비슷해진 것 같다.


다른 거라면 나는 내가 쉽게 죽진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다. 잔병치례가 많은 사람에겐 큰병이 잘 오질 않고, 조심성 많은 사람에겐 역시 마찬가지다. 삶에 딱히 의미는 없지만, 내가 스스로 죽을 게 아니라면 언제끝날지 모르는 명이 끝날 때까지는 '스테이'하게 된다. 그러니까 삶이란 건 '죽음'의 유예 상태다.


죽음이 유예된 상태로 나는 살아야 한다. 죽기 전까지 내 한 몸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어떤 방식의 노동이든 해야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것 외에는 알 수 있는 게 없다. 과거는 고정되었고, 현재는 흘러가고, 미래는 아직 모른다. 뭐라든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지금은 해결책을 찾겠다는 생각을 멈추려 한다.


생각의 유예다.


이직은 답이 아니다. 퇴사도 답이 아니다. 그렇다고 뭔가 사업을 벌이거나 프리랜서를 할 만한 사회 상황도 아닐 뿐더러, 내 에너지도 없다.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 소진되어버린 나는 뭘 하겠다는 생각도 안 든다. 오히려 글을 읽고 글을 쓰기 좋은 상태일지도 모른다. 이전의 나는 가만히 앉아 있으려 들지 않았다.


지금도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걷는 것'이 나왔다. 그냥 정처없이 걷고만 싶다. 가방 하나 메고 끝이 없는 길을 목적 없이 걷고 싶다. 남 시선 신경쓰지 않고 무례를 참아주지도 않고 딱히 맞설 필요도 없게, 눈치 없는 사람이 돼서 하고 싶은 말 다하고, 하고 싶은 대로만 살고 싶다.


그럼 의무를 최대한 내려놓고 느슨하게,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나태해야 하지 않을까. 나태하게 산다는 것에 죄책감이 없어야 버티기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면만 본다면 가장 순수하게 책을 읽고 글을 감상하며 내 글을 쓸 수 있을 때인지도 모른다. 내 글에도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될 것이다. 이 글이 팔릴 거냐, 잘 썼냐, 구조가 안정적이냐, 못 썼냐 그런 생각 따위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우울해지게 할 뿐이다.


만나기 싫은 사람은 안 만나고

맞추기 싫은 사람은 안 맞추고

무례한 사람에겐 무례로 답하고

하기 싫은 일은 대충하고

읽기 싫은 책은 읽지 말고

쓰기 싫은데 돈 주는 글은 적당히만 쓰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마구잡이로 맘대로 써버리고

단순해져야 한다.


어차피 안 죽었으니까, 사는 것도 팍팍한데 열심히까지 살아야 하나. 미리 걱정하는 습관도 버리지. 일 일터지고 걱정해도 된다. 어차피 예상보다 큰 일도 툭 벌어지고, 예상보다 괜찮은 일도 벌어지게 마련이다.




믿음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일을 겪었다. 그 일에 내가 또 많은 노력을 들였었다. 어차피 내 노력은 나만 아는 것이다. 타인은 타인의 세계 안에 산다. 해서, 나는 타인을 헤아려보려 노력했던 시간이 나를 챙겨야 하고 그것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 대충, 스리슬쩍, 태만하게 할 필요가 있고 그것을 자책하지 말자. 3월까지는 지금 쓰는 글의 초고를, 종이 쓰레기 상태로라도 완성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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