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이 되고 싶습니다.
이진경, <사랑할만한 삶이란 어떤 삶인가>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좋은 말들이 적혀 있었지만, 저자가 니체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인지 만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다. 니체라는 단어는 많이 언급되었지만, (내가 이해한) 니체다운 이야기가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워낙 삶에 관해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모임에서 이야기 나누기에는 좋은 책 선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내용 중 무관심의 관심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고, 또 내가 추구하는 삶의 태도와도 닮은 점이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공부나 독서에 몰두한 사람이 많은 것에 초연해 보이는 것은 그 사람이 정말 초연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단 한 가지의 욕망을 쫒기 때문이다. 그 욕망이 너무 강렬해서 여타의 욕망들은 묻히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에 수험 생활 중, 시험의 최고 고수(?)가 쓴 『불합격을 피하는 법』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 따르면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것보다 공부 외의 다른 것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적혀 있었다. 즉, 매일 8시간 공부하고 두 시간 넷플릭스를 보는 사람보다 매일 6시간 공부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멍을 때리는 사람이 공부를 더 잘하게 된다는 말이다. 사람이 하나의 일만을 하고 그 외의 일을 하지 않으면 일시적으로나마 도통한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 자신의 체험에 대한 글쓴이의 해석이었다. 책에서 시키는 대로 나도 실천을 해 보았는데, 상당히 일리가 있다. 동일한 시간을 집중해서 공부했는데도, 2달간 글쓴이의 원칙을 지켰을 때는 성적이 현저히 좋아진 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쉬는 시간에 모바일 게임을 하자 성적이 눈에 띄게 나빠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수험 생활을 말아먹고,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살아가다가 30대에 들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나를 재정비하게 되었다. 그때 『불합격을 피하는 법』의 조언이 문득 생각나고, 날카로운 송곳의 이미지가 온통 나를 사로잡았다. 낭중지추(囊中之錐). 남다른 사람은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과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인다는 말이다. 나는 내 삶이 하나의 방향성을 띠도록, 그 방향성에서 어긋난 것을 계속 덜어내서 나를 얇은 송곳처럼 제련하고 싶었다. 내가 가진 시간과 재능, 에너지로는 한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임계점을 통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방향성에 부합하는 활동(독서 모임이나 책 수집,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 등)을 제외하고는, 그 외의 활동을 최대한 내 생활에서 몰아냈다. 중국어, 해외 드라마 시청, 그림 그리기, 모바일 가챠 게임, 추억의 PC게임, 만화책 보기, 엘든링, 앤틱 찻잔 혹은 인형 수집, 가죽 공예 …… 20대 동안, 혹은 30대에도 여전히 나는 너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들은 어떤 의미에선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커리어에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기여하지 못하는 활동은 삶에서 덜어내기로 결정했다. 취미 생활 외에도 재테크 쪽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도 비슷하다. 나는 최대한 급여 소득의 라인을 탄탄하게 만들고, 은퇴를 하더라도 지금의 커리어와 관련된 다른 업을 하는 데 관심이 있지, 다른 방향으로 내 에너지가 새어나가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할만한 삶, 다시 살아도 후회가 없는 삶이란 송곳처럼 얇고 심플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