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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 Nov 08. 2024

나는 팀장이 망했으면 좋겠다.

  ***


  그동안 현황관리를
엉망으로 하셨네요?


  거대한 와이드형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팀장은 그렇게 말했다.


  그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나름대로는 화를 삭이고 있다는 의미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무척이나 모욕적이었다.


  2주 넘게 주말도 없이 출근해서 만든 현황을 보고 한다는 첫마디가 고작 <엉망이다>라니.





  ***


  하지만 나는 기분이 상할 틈도 없이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죄송합니다.



  를 낼 때의 팀장은 마치 샴페인 같았다. <펑!>하고 마개가 한 번 열리면 감정을 완전히 소진할 때까지 막말을 퍼붓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른 인정만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게다가 팀장에게 보여준 자료는 내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만든 것이었기에 나 스스로는 더 개선할 여지도 없었다.


  그런데 그게 팀장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면?


  납작 엎드릴 수밖에.




  ***


  일 맡은 지 2달밖에 안 됐는데
엉망이라고 했다고요?
진짜 그렇다면 <전임자>가 잘못한 거 아녜요?


  내 얘기를 들은 동료들은 그렇게 나를 위로해 줬다.


  그러나 결코 전임자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전임자는 팀장의 절대적인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켜본 바, 그는 잘못을 해도 잘못한 것이 아니었다.

  

  - 정 과장이 잘못한 거 아니야. 개선해 나갈 점을 발견하게 해 준 거지. 괜찮아, 괜찮아. 앞으로 잘하면 돼.


  누가 봐도 명백한 실수를 해도 그렇게 아름답게 포장되곤 했던 것이다. 다른 동료들도 그런 팀장의 편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 내가 잘못한 게 뭐라고!


  곱씹어볼수록 억울했다. 내가 무슨 대단한 위치에 있다고 단 2달 만에 전체 현황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

  

  나는 팀장이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팀장이 연말 승진에서 물 먹는 것으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내심 기대하고 있을 거란 사실은 누구나 알고 었으니까.


  만약 아무런 목적의식도 없이 팀원들을 이렇게 몰아붙이고 쥐어짠다면 그게 더 악당일 것 같다.


  그런 인간이 승진을 한다면?


  자기가 지금껏 살아온 방식이 맞다고 믿고 더 기고만장해지겠지.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괴롭힐까.




  ***


  그리고 장의 아이가 수능 시험을 망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잘못 없는 그의 아이에겐 미안하지만 어쩌겠는가.  정도는 돼야 팀장이 괴로워할 테고, 그래야 내 직성이 풀리겠는데.


  그렇다고 해도 가족까지는 건드리는 건 좀 그런가?


  내 아내와 딸도 늘 지쳐있는 나를 걱정하며 힘들어하는데도?


  좋다, 그렇다면 그건 취소하자.


  아무튼 팀장이 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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