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쓸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1983)' / 전영록
그런 노랫말이 있죠.
어릴 때 들을 적엔 그저 재밌는 노랫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연애를 하게 되니 반문하게 되더군요.
어떻게 사랑이 틀려?
그러나 상대를 향한 내 마음이 변해가는 모양을 그저 지켜봐야 했던 뼈아픈 경험을 한 적도 있었죠. 결코 연필로 썼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지우개를 손에 들고자 한 적도 없었는데.
사랑이 자꾸 지워지려 하네.
지우개가 필요 없는 그림
지우개가 필요 없는 그림은 자신의 그림이 그리려는 대상과 전혀 다르게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5분 스케치 / 김충원'
그전까진 미처 몰랐습니다.
지우개가 필요 없는 그림이란 드로잉에 능숙해졌을 때에나 가능한 일인 줄 알았거든요. 한 번 그은 선을 고칠 필요도 없을 만큼 말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어차피 다르게 그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되는 건데.
디지털 드로잉 수업
제가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휴직을 했을 때였습니다.
길을 가다 우연히 쇼윈도에 붙어있는 수강생 모집 포스터를 본 것이 계기가 되었죠.
★ 디지털 드로잉 수업 ★
아이패드 또는 갤럭시탭 모두 가능
1회 수강 시 3만 원
총 4회 과정 수강 시 12만 원
일주일에 한 번 그림 그리러 가는 시간이 즐거웠어요.
일반 학원이 아니라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미술작가가 원데이 클래스처럼 해주는 수업이라 더 편했던 것 같아요.
틀린 그림?
'똑같이 그리지 않아도 돼요.
여러 선으로 그려볼까요?
자신감이 붙으면 조금 더 진한 선을 그어보세요.
이번엔 자기 그림을 보지 말고 그리려는 대상만 보고 그려보세요.'
때로는 어린아이의 낙서 같았고, 어떤 건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그린 그림 같을 때도 있었어요. 대상만 보고 그렸을 땐 말도 안 되는 그림이 그려져있을 때도 있었죠.
하지만 그럴수록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떻게 그려도 내가 그린 그림은 틀리지 않았어.
그런 믿음이 생기자 자유로워진 느낌이 들었거든요.
지금도 그때 배웠던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답니다. '방식'이라기보다는 '기분'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원하는 대로 그림이 나오지 않아 스트레스받을 때면 그때의 좋았던 기분을 떠올리려 노력합니다.
나는 지금 '틀리지 않은 그림'을 그리려는 게 아니라고.
틀린 그림 같은 거 없다니까
디지털 드로잉의 장점은 언제든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이에요.
지우개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기능이죠.
'뒤로 가기' 버튼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 같은 마법을 부릴 수도 있고, 수차례 반복해서 지워도 태블릿의 레이어는 종이처럼 우는 현상도 생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선 하나도 그을 수 없는 때도 있어요. 운이 나쁠 땐 정말 그래요. 실패한 선을 지우고 다시 긋는 행위만 반복하다가 그만 지쳐버리게 되는 겁니다.
의외인 부분은 이런 거죠.
아, 이건 완전히 실패인데.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조차 여러분들이 좋다고 해줄 때가 많다는 사실.
거 봐, 역시 틀린 그림은 없다니까.
오늘 내가 그린 그림은?
오늘 하루
어떤 그림을 그리셨나요?
혹시 내가 그은 선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요?
문제없습니다. 내일 그 위로 다른 선 하나를 그으면 되니까요. 자신감이 붙었을 땐 조금 더 진하게 그려보세요.
그런 선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새 자신만의 멋진 그림이 그려질 거예요. 무엇보다 먼저 내 뜻대로 되는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훨씬 편해질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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