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것조차 사랑이었을까?
처음 운전을 배웠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저는 많은 순간들이 기억납니다. 정말 기가 막히는 일 투성이었거든요.
기왕이면 수동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아반테 스틱을 샀는데 출발을 할 수 있어야 말이죠.
면허를 딸 때 운전했던 1톤 트럭과는 달리 승용차는 클러치 유격이 매우 민감했습니다.
그래서 출발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운전 중에도 조금만 긴장을 풀면 시동이 꺼지곤 했죠.
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슬퍼
비탈진 길은 멈추지 않고 원 테이크로.
그게 당시의 제 운전 모토였습니다. 경사진 길을 오르다가 멈춘 뒤 다시 출발하는 것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힘이 부족해서 시동이 꺼지기라도 하면 차가 뒤로 밀리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참 공포스럽거든요.
그날도 비탈진 길을 빠른 속도로 달리던 중이었습니다. 제 머릿속엔 한 번에 이 언덕길을 올라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마주 오던 차를 만나서 급정거를 해야 했죠. 자칫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저는 앞 차에 미안하다는 뜻을 전하게 위해 다급하게 비상등 버튼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비상등 대신 작동된 것은 와이퍼였죠.
초보자의 비극
화를 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앞차는 쿨하게 제 차 옆으로 빠져나갔어요.
피식.
상대방의 차량으로부터 분명히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그래, 어쨌든 욕하지 않고 지나가줘서 고맙다.
침착하게 와이퍼를 멈춘 저는 2~3차례만에 시동 거는 것에 성공할 수 있었죠. 모르긴 해도 와이퍼를 끄겠답시고 방향지시등 레버를 먼저 작동시켜봤을 겁니다.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초보운전자의 비극은 이런 거구나.
'미안하다', '고맙다'는 표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 말이죠.
몰라서 그렇겠지
오늘 퇴근하면서 몇 대의 차에게 제 앞 공간을 양보해 줬습니다.
어떤 차는 비상등을 켜서 고맙다는 표현을 했고, 어떤 차는 아무 반응도 없었죠. 처음엔 서운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양보 받았을 땐 어떻게 해야 한다는 운전 예절을 배운 적이 없거나 어쩌면 자신이 양보 받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아마 몰라서 그렇겠지.
문득 오래전 비상등 대신 와이퍼를 작동시킬 수밖에 없었던 제 모습을 떠올리며 웃게 되는 겁니다.
피식.
지나갑시다.
나도 부모는 처음이라서.
자식은 처음이라서.
유치원은 처음이라서.
40대는 처음이라서.
처음이라는 이유로 서툴다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말라고들 하죠. 그건 당연한 거라고.
하지만 몇 번 해봤다고 한들 쉽사리 능숙해지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어쩌면 그 옛날 엄마가 어린 내게 모질게 굴었던 것도 사실은 사랑이지 않았을까?
마치 내가 잘못해놓고 괜스레 툴툴거리곤 했던 것이 미안하다는 뜻이었듯이 말이죠.
오늘 그 사람이 했던 차가운 말조차도 사실은 이렇게까지 내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는 없었을 거야.
오늘 밤엔 다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우린 모두 갑작스런 상황에서 비상등 대신 와이퍼를 켜기 일쑤인 초보들이니까요.
가볍게 웃고 지나가 보려고 해요.
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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