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 한 순간이 인생의 전부일지도
누군가의 신작이 나왔다고 했을 때, 말벌 아저씨처럼 달려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정혜윤 작가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인데요. <아무튼, 메모>로 시작해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삶의 발명>을 읽으며 저는 출퇴근길 사연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안 울고 싶은데 안 울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고, 안 읽고 싶은데 글이 정말 좋아서 빨리 흡수시켜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런 작가의 신작 <책을 덮고 삶을 열다>가 나왔고 저는 어김없이 누워서 엉엉 우는 사람이 되었어요. 좋았던 문장에 하이라이트를 쳐보니 86개. 그 중에 오늘은 이 문장을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녹아들다'는 나에게 행복의 동의어다."
'행복'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지만 행복을 찾고 싶어 합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정작 내가 어떤 순간에 행복한가를 자문해보면 애매하더라고요. 아끼는 사람들이랑 수다떨면서 맛있는 술 마시고 그러고 있을 때 행복한데. 월급날 25일이 되기 전 24일의 저녁이 행복한데. 입맛에 꼭 맞는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읽고 싶었던 책을 읽을 때 행복한데. 그런데 어딘가 부족했습니다. 친구들이랑 놀고 나서는 집에 오는 길에 표현하기 힘든 공허함이 찾아왔고, 월급날의 행복은 25일의 점심까지만 유효했고, 좋은 책을 읽어도 한편으로는 나도 저런 글을 쓰고 싶다는 약간의 질투심이 들었고요.
그런데 정혜윤 작가의 문장을 읽고 나서 내가 어딘가에 녹아들었는지, 그 몰입의 순간들을 더듬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혼자서 가만히, 빈 종이에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하더라고요. 비어있는 공간에 대고 내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 내볼 때. 사실 그 과정에서 저는 제 안의 상처를 다독이는 것이 먼저이긴 합니다. 그리고 애써 내일을 향한 긍정을 만들어보기도 하고요. 그리고 아주 조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내 삶을 잘 꾸려가고 싶은데 이래저래 고민이 많아서 마음이 삭막해져버린 사람. 세상은 너무나도 쉽게 우리를 내버려두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를 귀하게 여기자는 말까지 나아갑니다. 은근슬쩍 말이죠.
어떤 목적도 없이 내가 누구인지 채 인식하지 않은 채로 녹아드는 일. 어쩌면 그 일이 당신의 본질과 가장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부터는 또 하루에 수십통에 달하는 메일과 슬랙이 날아들겠지만, 그런 와중에도 나의 몰입을 지켜가는 일주일이 되길 바랍니다. 저는 또 일주일 동안 모닝페이지를 성실히 쓰면서 글감을 모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