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면
딱 하루치 먹을거리만 준비하는 삶이었다. 친한 언니는 혼자 살면서도 장을 봐 요리를 해 먹고, 심지어 재료가 고루 소진될 수 있게 식단표를 짜서 먹는다고 하던데 나는 정반대였다. 퇴근길에 오늘 먹을 것만 사고 그 날 먹고 버렸다. 냉장고에 음식을 채워두는 편이 아니었다. 흔한 과자도, 아이스크림도 사두지 않았다. 어쩌면 묵혀두지 않아 건강하게 산다고 볼 수 있을지도. 실은 내 삶의 미래를 크게 기대하지 않게 된 것, 그래서 오늘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탓이 크다.
꿈이 많던 소녀는 매일 고려대학교 합격증을 보면서 공부했다. 친한 선배가 그 학교에 가면서 본인의 합격 증명서를 파일로 보내줬고, 나는 합격자명에 내 이름을 새로 적어 책상 앞에 붙여두었다. 어떤 일을 하고,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지 매일 야심차게 그려나갔다. 그래서일까, 또래 친구들이 나에게 털어내는 고민이 썩 와닿지 않았다. 친구들은 가정불화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첫 연애를 걱정했지만 나는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가 싶었다. 어차피 이곳에 다 놓고 떠나면 되지 않냐고 생각했다. 일찍 커버렸고, 동시에 조금도 자라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늘이 도와서, 엄마의 기도빨로, 나의 들끓는 의지로 원하는 학교에 갔고 열심히 공부했다. 결국 원하는 동아리에, 졸업 성적에, 끝내 직업까지 얻었다. 그 과정들은 대체로 힘들었지만 목표를 생각하면 늘 설레고 재밌었다. 그런데 사회는 녹록지 않았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일인데도 그 환경이 나에게 맞지 않았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이후부터는 마음속에서 야심을 조금씩 지워 나갔다. 쑥쑥 자라기만 하던 대나무였는데, 이제는 태풍에도 자유자재로 흔들리는 버들가지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그 틈에 내 머릿속에는 허무주의가 자리 잡았다. 열심히 일해도 결국 직장인 1이잖아.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알콩달콩 서사를 쌓아갈 때 배경으로 지나가는 사람 1. 실제로도 일하고 돈을 모아봤자 지금 서울에서 내 집을 살 수도 없잖아. 매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삶 자체에 대한 열정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던 참이었다. 동력이 없으니 눈을 뜨는 아침이 고역이었다. 일주일 중에 금요일 오후에 가장 행복했고 일요일 오후부터 불안했다. 사실 오늘 아침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이 문장을 만난 것이다.
"모든 게 허무하니 한바탕 재밌게 살아봐야겠다"
주다주 작가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그린 인스타툰 중 한 문장이었다. (궁금하신 분은 여기로) 어차피 죽음으로 귀결될 인생이라고 생각해서 한계를 정하거나 행복을 포기하지 말자. 대신 어차피 죽을 인생이기에 남은 날 한바탕 재밌게 살자. 이런 메시지였다. 순간만 생각해서 쾌락을 추구하자는 게 아니라, 인생을 길게 봐도 결국 죽음이니 그 과정을 즐겁게 채우는 것이 나를 위해 좋다는 것으로 읽혔다. 그게 이득이지 암만. 어깨가 가벼워졌다. 눈앞이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삶에 대한 거대한 기대로, 그에 따르는 허무주의로 열정을 잃었다면 다시 생각해 보자. 어차피 인생은 한 번이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러니 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한바탕, 재밌게, 살아보는 것으로 선택해 보자. 크게 벌어진 판을 주저 없이 뛰어다니며,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들을 추구하며, 경험 삼아 한 번 살아보는 태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