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굿즈는 무엇인가요?
보기만 해도 두근거리는 세계. 어렸을 때 저에게는 36색 색연필 세트가 그랬습니다. 철제 케이스를 열면 아릿한 기름 냄새가 났고, 얇은 트레싱지를 걷어 올리면 색색의 연필이 꽂혀 있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맨 처음 놓인 흰색부터 맨 끝에 놓인 은색까지를 손가락 끝으로 드르륵 훑었고요. 연필 하단에 새겨진 로고를 일정하게 맞추는 의식을 치렀습니다. 물론 색연필은 그것 말고도 많았기에, 이건 오로지 보고 만지는 것만으로 행복을 주는 대상이었습니다. 마치 종이접기를 하지 않았던 색종이 100장 세트처럼요.
수집에 대한 애착은 교복을 입던 시기에도 착실히 이어졌습니다. 집에는 늘 신문이 왔는데 저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책상에 가져가서 읽고 마음에 드는 기사 하나씩을 노트에 오려 붙였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와서도 그 습관은 이어졌습니다. 그냥 좋았습니다. 기사를 읽으며 이런 제도가 있구나, 이런 인물이 있었구나, 이런 개념이 있구나 배운거죠. 또 칼럼니스트들이 글을 잘 쓰잖아요? 취미 삼아했던 신문 스크랩은 나중에 대입 면접에서도 큰 힘을 발휘합니다. 내가 정말 사회에 관심이 많고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을 정확히 증명해 줬기 때문입니다.
보기만 해도 설레는 당신만의 세계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지금의 저에게는 노션 앱과 작은 다이어리가 그와 가까운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요. 이 글을 쓰면서 다이어리를 들춰보니... 다른 수납장이 있어야겠다 싶습니다. 데스노트에 가까운 수준으로 감정을 풀어놓다 보니, 이건 뭐 설렘이 생기다가도 사라지겠네요. 마음 상태가 괜찮을 때는 그날 읽었던 책 중에 좋은 문장을 적어두기도 하는데 매일 그러긴 힘드니까요. 이 감정의 잡탕밥은 그대로 두고, 오로지 좋은 문장만을 담아두는 노트를 마련해야겠다 싶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둘러보니 배지를 모아둔 파우치가 보였습니다. 배지 하나하나에 사연이 담겨있어요. 뒤늦게 알게 되어 혼자 독립영화관에서 봤던 영화 '프렌치수프'의 일러스트 배지도 있고요. 생일을 맞아 친구와 함께 갔던 정동진 동네책방 '이스트씨네'의 배지도 있습니다. 제가 담당했던 소설의 일러스트도 있네요. 마치 어렸을 때 색연필 상자를 열어보듯, 하나씩 모은 유리구슬을 만져보듯 이 파우치를 들여다봅니다. 그러면 그때 순간순간의 장면과 행복했던 감정이 되살아납니다. 제 인생의 굿즈들처럼 말이죠.
인생이 팍팍할 때 꺼내보면 마치 달달한 사탕처럼 마음을 부풀게 하는 것들. 인간애가 사라질 때(자신 포함) 급하게 들쳐볼 수 있는 구급상자. 당신의 상자 안에는 무엇이 담겨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