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보다 나를 먼저 두는 작은 실험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 오래도록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첫눈에 반해 지독하게 구애했다. 두 사람은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끝내 행복하지 못했다. 식탁에 앉아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남자는 지친 일상을 떠나 행복을 찾겠다고 하고, 여자는 허망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내 행복은? 그러자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한다. 왜 니 행복을 나한테 물어? 여자는 아이를 안은 채 그대로 무너진다.
처음 봤을 때는 저 남자 재활용도 안 될 쓰레기네.. 하고 말았다. 그런데 곱씹어 볼수록 씁쓸했다. 네 행복을 왜 나한테서 찾아? 맞는 말이다. 물론 여자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접어뒀겠지만, 한쪽에 기댈 수밖에 없는 행복은 늘 이렇게 위태롭다. 자신의 행복은 자신의 손에서 온전히 만들어져야 한다. 수동적으로 체념하지 말고 악착같이 행복을 찾아가야 한다. 그래야 내 인생에 후회가 없다. 다른 것들을 이유 삼아 포기하기 시작하면, 그렇게 지켜낸 것들에 억울함이 담긴다.
나 역시 종종 '의무'라는 이름으로 내 행복을 미뤄두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물론 지금도 나는 오늘의 할 일에, 주중에 다 끝내지 못한 업무의 목록을 적어두었지만 애써 외면 중이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간이기에! 읽고 싶었던 책을 마저 읽고 글을 쓰면서 몰입한다. 사실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계기가 몇몇 있었다. 무엇보다 의무를 우선하다 보니 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힘겨웠고, 결과물이 성에 차지 않았다. 뇌가 탈진해 버렸으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리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보상심리 때문에 더 많은 힘이 들어가곤 했다.
주중에는 도망칠 수 없는 의무들이 늘 나를 앞선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새벽 3시쯤 벌떡 일어나서 카카오톡 나와의 대화창에 꼭 해야 할 일들이나 업무 아이디어를 적어둔다. 그렇지만 주말은, 일주일 중에 딱 28%는 나에게 더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집 앞에 카페가 있지만 굳이 한 참을 걸어서 분위기 좋은 카페로 가기, 좋았던 문장을 찾으면 애착 노트에 필사해 두기처럼. 순전히 나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나의 작은 즐거움들을 채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