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yownangle Jan 16. 2024

EP.7 "문과라서 죄송하지 않아요"

글로 밥벌어 먹고 살 수 있던데요? 

한때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유행인 때가 있었다. 이 말은 철저히 문과생으로 살아온 나의 자존심에 꽤나 치명적인 상처였다. 이과라서 죄송하다는 말은 없지 않나. 왜 문과라서 죄송해야 하는가, 문과가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대학에 가서도 몇몇 선배들과 술을 마시다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시간을 돌려 계열을 정하던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돌아간다면 무조건 이과를 택할 거라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한 편 웃겼고, 한 편 속상했다. 


모든 것이 숫자로 대변되는 시대다. 회사 화장실에는 피터 드러커의 한 문장이 적혀있다. "계량화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이런 문장을 화장실에서까지 봐야 하다니, 다시 생각하니 지긋지긋하다) 나는 원래 일을 할 때 가치를 먼저 생각했다. 그러나 숫자로 보여줄 수 없을 때 그간의 노력은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걸 뼈저리게 배운 후로는 달라졌다. 그 일을 시작하기 전에 달성할 수 있는 KPI 값을 정하는데 목을 맨다. 그럼에도 나는 '문송하지 않다'. 


적어도 나는, 새로운 일을 기획할 때 가장 흥이 나는 사람이다. 이러한 고유성을 이과에 갔다면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동일한 결괏값이 나온다는 걸 증명하는 일보다, A에서 B로 가는 가장 의미 있고 유쾌한 길을 찾을 때 행복하다. 그 과정에서 이과적 사고와 데이터의 힘은 필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자유롭게 생각하는 방식은 문과에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속세의 이야기를 덧붙여보자면, 평생 지독한 문과의 길을 걸어왔어도 연봉이 꽤 높았던 적도 있었다. 한 때 이과 출신에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보다 초봉이 높았다. 문과라고 해서 무조건 다 굶어 죽는 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마치 문예창작과 나 철학과에 가면 다 굶어 죽는 것처럼 사람들이 말하지만, 그 안에서도 착실히 자기를 잘 단련시킨 사람들은 먹고사는데 큰 문제가 없더라. 


 문송하지 말자. 사실 문과고 이과고 죄송할 일이 아니다. 문과생이어서 발견한 고유의 세상이 있었다. 자신의 오롯한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사람만이 경쟁력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Series. 20대 직장인의 뿌리 찾기 프로젝트

내 안을 채우고 있는 한 가닥을 찾아보는 과정.

그 한 가닥이 내 노잼을 뒤흔들 수 있다면.



작가의 이전글 EP.6 "오래 걸려도 걸어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