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yownangle Jan 13. 2024

EP.6 "오래 걸려도 걸어보기"

집에 도착하면 기절하긴 합니다만

1월에 다짐했던 건, 되도록 많이 걷기였다. 회사에서는 늘 묘한 보상심리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퇴근해서는 더욱 강력한 보상심리로 고칼로리 야식을 먹었다. 그렇게 산지 어언 1년 뱃살이 조금씩 늘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 몸이 가볍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1월 중에는 틈틈이 걸어 다녔다. 사실 버스 타면 편하다. 가만히 있어도 되니까. 그런데 그 안에서 느껴야 하는 미묘한 사람 간의 갈등이 싫기도 하다. 누가 내 가방을 치기라도 하면 짜증은 배가 된다. 조금 춥더라도 속 편하게 걷는 게 최고다.


퇴근하고 지하철에서 내리면 대략 오후 9시에서 10시 사이. 놀랍게도 그때까지도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다. 뻑뻑해진 눈을 쉴 새 없이 깜박이며 20분을 견디고 역에서 나오면 그때부터 혼자만의 시간이다. 회사에서 분노했던 일, 아쉬웠던 일, 보고 싶은 사람이 차례로 떠오른다. 그때 누군가에게 전화가 오면 고맙기도 하다. 그 사람과 마치 함께 산책하는 것처럼 15분을 걷는다. 그러다 보면 집이 어찌나 반가운지.


사람의 걸음이 무섭다

엄마는 종종 이런 말을 했다. 엄마는 걷는 걸 무척 좋아하셨고, 어린 나는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서 늘 옆에 따라다녔다. 그래도 언제 거기까지 가서 돌아오나 한숨을 쉴라치면 엄마는 사람의 한 걸음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말해줬다. 그렇게 한 발을 내딛고 또 한 발을 내딛다 보면 금세 도착해있곤 했다. 사실 이 걸음이라는 게 물리적인 걸음만은 아니지 않을까.


걷는 건 느리다. 버스 한 번이면 금방 도착할 거리, 그에 비해 걷는 일은 몇 곱절의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그러나 집에 도착했을 때 만족도가 현저히 다르다. 빠른 길 대신 나에게 필요한 길을 찾고, 누가 뭐래도 한 걸음씩 내딛는 일. 나는 이런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



Series. 20대 직장인의 뿌리 찾기 프로젝트

내 안을 채우고 있는 한 가닥을 찾아보는 과정.

그 한 가닥이 내 노잼을 뒤흔들 수 있다면.


작가의 이전글 EP.5 "일기는 손으로 써야 제맛이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