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초 다이어리 5개씩 사는 사람이 바로 나예요
회사에서 받는 다이어리를 제외하고, 보통은 4~5개의 다이어리를 사보곤 한다. 여러 권을 사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느 하나 마음에 완벽하게 붙는 것이 없기 때문에. 적당한 크기와 표지 질감을 가졌더라도 내지 디자인이 별로인 것도 있고, 올해는 좀 강렬하게 살자 싶어서 산 쨍한 오렌지가 다음 주에 보니 질린 경우도 있다. 본질적으로는 올해가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되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아이패드도 있고 하니 굿노트로 다이어리를 옮겨볼까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하루 이틀 쓰고 나면 금세 종이 다이어리를 찾곤 했다. 손으로 쓸 때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 것 같다. 진짜 대화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지난주에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수시로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아이패드로 쓰면 보통 특정한 시기를 지정해야 그때로 갈 수 있는데 종이 다이어리는 조금 더 쉽게 샥샥 펴볼 수 있으니까. 내 인생의 여러 지점들을 연결하기 용이하다.
매일매일 기록을 남긴 건 중학교 3학년 끝나고부터였다. 다른 친구들은 다들 고등학교 선행을 한다고 학원에 갔는데, 선천적으로 학원 기피자였던 나는 독서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처음 스터디플래너를 쓰기 시작했다. 암기할 단어 분량을 정하고, 수학 단원을 나누고, 하루가 끝날 때쯤에는 내가 몇 개의 미션을 클리어했는지 빨간색 체크표시로 확인했다. 이러한 습관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고시 공부를 할 때도 이어졌다. 하루를 채운 생각보다 공부량이 중요했다.
출판사에 다니면서부터는 'edit'이라고 새겨진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이때도 물론 월간 미션과 일간 미션을 적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일별 칸이 넓어서 거기에 마음의 조각을 조금씩 꺼내보기 시작했다. 파주에 있던 출판사였고 출근이 9시까지였는데 나는 8시 20분쯤 도착해서 혼자 30분 동안 카페에서 글을 쓰고 출근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성실성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의 나는 대부분 업무에 대한 아쉬움과 자기 계발의 한계를 느끼고 성장하고자 애썼다. 그렇게 보낸 시간들이 모여서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작년 한 해는 다이어리를 끼고 살지 못했다. 즉 일하는 나와 생활하는 나 사이의 균형이 깨져버린 것이다. 회사에서 쓰는 스케쥴러는 빽빽한데, 개인 다이어리는 빈 공간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도 그럴 게 퇴근하면 10시가 훌쩍 넘었고 씻고 나면 다음날 출근을 위해 잠들기 바빴다. 올해는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는 굳은 다짐으로 일기를 채워가고 있다.
올해 더 열심히 쓰겠다고 생각했다면, 박연준 시인의 에세이 <쓰는 기분>을 추천하고 싶다. 그 속에 한 문장이 우리를 응원해 주기 때문이다.
쓰는 사람은 자기 삶의 지휘자가 될 수 있다
Series. 20대 직장인의 뿌리 찾기 프로젝트
내 안을 채우고 있는 한 가닥을 찾아보는 과정.
그 한 가닥이 내 노잼을 뒤흔들 수 있다면.
프롤로그_ https://brunch.co.kr/@a0bd4d3b8469449/48
연재 요일 _ 화 /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