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인가요?

각자의 모양 그대로 마주 선 채 어딘가에서 부드럽게 맞물리는 순간

by 산호


‘제가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냐고 하면 제일 처음으로 말하고 싶다. 보통 그로부터 관계의 선순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남녀관계만이 아니다. 내가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우리 안엔 누구나 최고와 최악이 있지만 그래도 그게 감당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예컨대 세상에는 나를 그냥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나를 만나면 행복해한다. 그런 사람들을 다행히 많이 만났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그게 전에는 타격이 컸다. 요즘엔 얼른 후진한다. ‘미안! 너는 내가 행복하게 해줄 수 없구나.’

“인간은 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이다.” 박민규의 소설집 <더블>에 수록된 단편소설 ‘누런 강 배 한 척’의 문장에 동의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나쁜 사람이었을 수 있다. 가치관, 취향, 속도에 따라 그렇게 되더라. 그런데 무슨 우주의 조화인지 어떤 누군가에게는 무척 좋은 사람으로 해석되곤 한다.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그건 잘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을 볼 때 타인의 행동 외에 생각과 감정이 대체로 엄청 많이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나를 볼 땐 행동, 생각, 감정이 실시간으로 펼쳐진다. 그래서 나에서 벗어난 타인의 시야, 누군가의 뒷모습이 잘 보이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어쩌면 사랑이란 ‘끝까지 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좋은 시절의 나뿐 아니라, 낯설고 지친 나까지도 함께 보는 일. 그리고 그때조차 “괜찮아, 네가 그렇다면 그럴 이유가 있겠지”라고 말할 수 있는 시선. 그런 시선은 상대를 바꾸려 들지 않는다. 그저 바라봐준다. 나를 조금 덜 두려워하게 하고, 삶을 덜 비판적으로 대하게 만든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 그 불완전함이 어떤 관계에선 결점이 되고, 또 어떤 관계에선 매력이 된다. 결국 중요한 건 ‘누구와 있을 때 내 불완전함이 덜 무겁게 느껴지는가’ 하는 질문일 것이다. 우리가 각자의 모양 그대로 마주 선 채 어딘가에서 부드럽게 맞물리는 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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