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와 '더 보이즈' #netflix #disney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히어로물을 좋아해본 적이 없다.
단순한 이야기지만 '공감'이 되지 않아서다. (어딘가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극이 시작하기 전에 동의하는 것이다.
히어로가 히어로와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된 과정의 개연성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재단하는 짓을 하지 않기로.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쉽게 합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외려 나 같은 인간은 피곤한 부류로 취급되게 된다.
근데 억울하지는 않다. 서사가 진행되려면 사실 몰입의 시동이 걸리기 전까지 자잘한 건 뭉개고 가는 일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여담이지만 드래곤볼을 볼 때는 이런 삐딱한 눈초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나서서 이렇게 '히어로물은 공감되지 않는다'라고 적는 이유는 남들과는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공리주의적인 삶을 살기로 선택한 캐릭터의 저의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총알을 튕겨내고, 눈으로 레이저를 쏘고, 인간의 형체를 유지하면서 마하의 속도로 날아다닐 수 있는 존재가 대체 뭐가 아쉬워서 법과 도덕을 지키고 국가 간의 협약을 준수하려 들겠는가? (예를 들면 한마 유지로)
히어로씨, 당신이 그럼에도 법과 도덕을 지키며 협약을 준수하는 까닭은 있을 겁니다.
나는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에 그러리라 본다.
(1) 사람들한테 호감을 얻기 위해서.
(2) 그 호감이 효율적이니까
앞서 말한 겁나 강한 존재더라도 사실 살아 숨쉬는 인간들에게 매순간 협박과 강권으로 살아가는 것은 힘이 들 게 분명하다. 레이저 한 방 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체력이 소모될 지는 알 수 없지만, 하루 종일 하기에는 지루할 것이고 만약 밀크 쉐이크를 먹고 싶은데 밀크 쉐이크 기술자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죽여버리면 솔직히 좀 낭패인 건 맞지 않나.
즉, 아무리 세상을 뒤집어 엎을 힘을 가진 존재더라도 인간이 이미 구축해놓은 사회의 '효율성'을 생각하면, 절대 다수의 비위에 맞춰 알아서 그들이 나에게 돈과 먹을 것, 잘 것을 제공하게 해주는 편이 낫다는 거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히어로들의 매력이 대부분 끊임없는 능력 비교와 마치 연애를 하는 것과 같은 빌런과의 애증, 그리고 수십억이 들어간 그래픽 기술로 구현된 스펙터클함에 의탁하고 있기에 공감의 영역은 조금씩 옅어지기 마련이다.
물론 현재 마블과 DC가 궁상맞은 히어로들을 못 그려내는 건 아니다.
집세를 내지 못하는 히어로도 있겠고 (스파이더맨이라던가), 가족관계가 복잡하거나 약물에 중독된 히어로도 있겠고 (핸콕이나 완다... 닥터 스트레인지라던가), 정신병을 지닌 히어로라던가 (배트맨이라던가), 장애를 지닌 히어로도 충분히 나왔다. (자비에 교수?)
그러나 아쉬운 건 그건 그저 이 히어로를 소개하는 백그라운드, 즉 배경설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심이 되는 서사로 이러한 배경들이 올라오지 못한다. 종국에는 누군가를 깨부숴야하거나 누군가를 잃거나 혹은 다른 영웅들이랑 세계관이 이어지는 접합에의 쾌감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러한 흐름을 주도해서 깨고자 하는 히어로물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내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와 '더 보이즈'다.
둘을 붙여놓기에는 사실 분위기 상 간극이 꽤 큰데, 설정상 같은 궤를 하는 것들이 몇 개 있다.
(1) 과거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이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과
(2) 히어로가 대가 없이 봉사하는 것이 아닌, '직업'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와 같은 상황이 설정된다면, 사실 히어로가 정석적인 영웅서사의 흐름을 따라가기 굉장히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영웅서사에 등장하는 영웅은 결국 군계일학으로 남아야하며 동시에 그 과정에서 험난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야만 하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초능력을 갖고 있다는 설정은 위의 법칙의 빛을 바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의 돌파구는 생겨난다. 대중에게 초능력을 부여하더라도, 대부분 못나고 불완전한 능력들을 던져주면 되니까. 내가 생각하는 미디어 속 히어로의 기준은,
(1) 남들과는 다르고 멋진 초능력이 있어야 하고 (이게 없으면 미디어에 명함도 내밀 수 없다)
(2) 이타적이고 공리주의적이어야 하며, (나름의 정의론 따위는 필요없다. 무조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해야한다.)
(3) 잘생기거나 예뻐야하고, (못생겼더라도, 예전에 잘생겼는데 불의의 사고로 못생겨'져야한다'. 그리고 무조건 그런 못남을 사랑해주는 멍청이가 필요하다.)
(4) 영웅에 준하는 능력과 서사를 가진 빌런이 필요하다. (요즘은 아니지만, 어쨌든 영웅보다는 조금 못나야 하고 포기를 몰라야 한다.)
위의 기준을 충족하면서 수없이 많은 능력을 지닌 캐릭터들 중에서도 특정한 능력을 골라 이야기를 전개해나가야 한다.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히어로의 기준이 되는 인물이 분명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포트라이트는 위의 기준을 조금 벗어난 인물들에게 집중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1) 능력이 있긴 한데 인성이 터졌거나, 인성이 터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거나 (더 보이즈의 등장인물 대부분에 해당한다)
(2) 다 능력이 있는데 이 인물만 능력이 없는 일반인이거나 (미도리야 이즈쿠, 휴이 캠벨)
(3) 이상할만큼 빌런에게 상세하고 공감갈 만한 서사를 주거나 (시가라키 토무라, 윌리엄 부처)
즉, 모두 다 초능력이 있는 세상이 처음에는 신선하고 참신하게 느껴지더라도 군계일학의 구조는 유지되는 것이다.
모두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주인공에게서는 초능력을 빼앗는 것으로, 이미 초능력을 가지고 있어, 강해지는 과정이 생략될 것 같더라도 계속 무언가 하자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이야기는 아주 살짝 변주되었을 뿐인데도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굉장히 다른 느낌을 준다. 그 한 번의 꼬아냄으로, 천편일률과도 같은 히어로물의 행보는 변화하게 된 것이다. 그럼 여기서 나는 조금 더 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1) 왜 사람들은 계속해서 비틀고 꼬아내는 과정까지 감수하고서라도 영웅서사를 만들어낼까?
(2) 그래서 결국 이들이 대중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와 같은 것들이다.
나는 뜬금없지만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비롯한 SNS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의 등장이 이런 상황과 조금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플루언서는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인데, 이들이 선사하는 영향력이 선한지 악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논란이 된 유튜버가 우승을 하면서 좋든 싫든 화제에 오른 넷플릭스의 예능 '더 인플루언서'는 그 지점을 확실하게 짚는다. 인플루언서의 자질은,
(1)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지
(2) 그 관심으로 인한 흥미가 얼마나 충족될 수 있는지
(3) 그러한 욕구의 충족이 이 사람에 대한 매력으로 충분히 치환될 수 있는지
(4) '빠'와 '까'가 동시에 공존하는지
이 네 가지에 해당한다.
그러고보니 이 네 가지의 요건은 앞서 내가 언급한 '미디어 속 히어로의 기준'과 부합한다. 우연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이 네가지가 충족된 영웅서사 속에서 맴돈다. 가지치기가 얼마나 다르게 되고 살을 얼마나 다르게 붙였는지의 차이로 A와 B가 다른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서사의 본질은 같다.
과거에는 1만, 10만 명의 팔로워나 구독자를 거느린 인플루언서의 숫자가 많지 않았으나, 요즘은 '인플루언서가 되는 방법'과 같은 것들이 온라인 강의 상품으로 출시되면서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인플루언서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그럼 인플루언서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인플루언서 강사'는 대체 무얼 가르칠까? 그건 다음과 같다.
(1) 자신이 밤새 떠들 수 있을만큼 좋아하는 걸 먼저 찾아라 -> 이게 히어로의 능력에 해당한다
(2) 이걸 플랫폼에 따라 어떻게 게시물로 치환할 수 있는지 공부한다
-> 알고리즘, 즉 영웅이 서는 무대의 차이
(3) 그렇게 모인 사람들에게 조금씩 자신을 드러낸다 -> 여기서 남들과 다른 차이가 나타난다
(4) 찬사를 받든 욕을 먹든 그것 역시 애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 이 짓을 계속할 수 있도록 멘탈 개조
내가 이걸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나는 2년 동안 인플루언서들에게 컨택해 인터넷 강의를 열고 마케팅을 하는 일을 해왔고, 혼자서 100억이 넘는 매출을 견인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연락주시라. (농담이다)
그러니까 코로나 시기 한창 인기를 끌었던 클래스101, 클래스유, 와디즈와도 같은 플랫폼들은 쉽게 말해, 영웅의 이야기가 듬뿍 담긴 넷플릭스나 만화책, 그리스 로마 신화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차이는 그걸 그냥 읽거나 보고 치워버리느냐, 혹은 나도 그 영웅이 되려고 발버둥치냐-에 있다. 그리고 그 간극 사이에서 실질적인 돈과 거래가 오가는 것이다.
누구나 히어로가 될 수 있는 삶,
그리고 누구나 빌런이 될 수 있는 삶.
현대 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현대 사회를 저 두가지의 특징으로 말하고 싶다. 이제 일반인은 없다. 히어로가 되든, 빌런이 되든 그렇지 않으면 어딘가 삶이 '잘못된' 세상.
그럼 다시금 내가 던진 질문으로 돌아와서,
왜 사람들은 계속해서 영웅서사를 만들어내고자 할까.
이렇게 수없이 많은 히어로와 빌런이 난립하는 현대 사회에서 말이다.
내 생각에,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는
영웅은 당위적으로 필요한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이고
'더 보이즈는'
영웅은 자연스럽게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는 현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의 대답은 조금은 나이브하면서도 지루하다.
'영웅은 상징으로서 존재해야 하며, 나아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는 것.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에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히어로인 '올마이트'가 등장한다. 다만, 그의 능력은 날 때부터 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거쳐서 '계승'되어 온 능력이다. 그 능력은 주먹 한 방으로도 기후를 바꿔버릴 정도로 강력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능력이 최대치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능력의 계승자는 '무개성', 즉 아무런 능력이 없는 일반인이어만 한다. 무개성이란 특징은 이 대목에서 오히려 가장 큰 축복이 된다. 자잘하게 발현된 개성보다는 큰 책임과 권한을 담을 수 있는 거대한 빈 그릇이 필요하다는 말과 진배 없기 때문이다.
올마이트와 그 능력의 계승자, '미도리야 이즈쿠'는 자신과 상관없는 이들을 위해 온 몸을 던져 희생한다. 그게 인류 역사상 최고의 능력을 지닌 이들의 숙명이자 과제인 것이다. 물론 여타의 인물들 역시 공리주의의 법칙으로 움직인다는 영웅의 덕목 아래 움직이긴 하지만, 능력이 딸리기 때문에 그 숭고한 가치를 계승할 자격이 없다.
리더란 고독한 것이며, 그 고독을 인내하면서 끝까지 희생해야만 한다. 비록 그러한 숙고의 과정 속 인물이 맞이하게 되는 최후는 많은 '나히아' 독자들이 성토했던 결말처럼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이라고 할 지라도.
(나는 사실 결말을 부정적으로 보진 않는다. '최고의 히어로'는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에 소년만화가 선택할 수 있는 안전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많은 독자들이 기대했던 미도리야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포기했다는 것에 대담한 편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마치 임무를 다한 사무라이가 기쁘게 할복을 하는 것과도 같은 숭고함을 여전히 작가는 '영웅'이라는 존재에 바라고 있던 게 아닌가 싶다.
반면, 아직 결말이 나지는 않았지만 '더 보이즈'의 대답은 생각보다 미시적이고 개인적이라고 생각한다.
'영웅은 그저 한낱 인간이자 독립적인 개인일 뿐이며, 각자의 정의론에 맞는 삶을 살아가며 선택하고 책임지는 게 삶이다'라는 것.
더 보이즈에 등장하는 '홈랜더'는 의상은 물론이거니와 능력, 사회적 위치 같은 것이 전부 '올마이트'에 해당하는 캐릭터다. 절대 권력이자 절대 선, 정의의 상징으로 존재해야하는 홈랜더는 사실 실험실에서 태어난 사생아이며, '마미 이슈'를 지닌데다가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인물로, 그가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는 것'이다. 비단 홈랜더 뿐만 아니라 보우트 소속 히어로들은 전부 각자의 아픔과 도덕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
비교적 선역이라고 생각되는 스타라이트 역시 과거 미인 대회에서 자신의 경쟁자들을 향해 폭언을 퍼붓거나 집단 따돌림을 유도한 악랄한 이력이 있고 (우리로 치면 학교폭력에 해당하겠다) 프렌치는 러시아 마피아 소속에 있을 때는 가차없이 청부된 살인을 이행하는 범죄자이고, 기미코 역시 실험으로 태어난 히어로로 '더 보이즈'에 합류한 뒤에도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거리낌이 없다.
쉽게 말해, 이 드라마에서는 모든 캐릭터를 덮어놓고 사랑할 수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홈랜더'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들에게 '공감'이란 걸 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 하나의 깃발이나 가치 아래에 모여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행동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각자 원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물들이 모두 '살아있음'을 알리는 순간들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와 '더 보이즈'가 비슷한 설정을 지녔음에도 확연히 다른 노선을 타게 되는 이유가
물론 문화적인 토양의 차이에도 있겠지만, 각각의 작품이 공감대의 타겟을 다른 곳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자는 영웅에게 책임을 묻는 '대중'을 향하고, 후자는 영웅이 된 '개인'을 향해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힘을 합쳐 애쓰지만 결국 최종결전에 서야하는 영웅은 단 한 명이라는 생각과 영웅이 아무리 멋지게 적을 제압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영웅에 의해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 비록 수없이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결국 최대 다수를 지키고 평화를 도래하게 만들었다는 결론과 영웅이 많은 사람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할 때,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소수의 희생자가 내가 되어도 그게 평화일까-라는 의문.
결국 인류 역사에서 계속해서 양립하는 공리주의와 정의론에 대한 시선 차이가 두 작품의 방향성을 가르는 키가 되고 동시에 전 세계의 사람들도 러프하게 이 차이로 나뉘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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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재발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전지구적인 전염병으로서의 위세가 한 풀 꺾이고 나서의 주위는 확실히 변했다. 이것은 마치 하나의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의 변화된 사회와도 비슷할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이 시기가 온라인 강의 판매를 비롯하여 SNS 활동이 최전성기에 이르게 된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이 시기에 SNS를 삶에 밀접시키면서 SNS에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는데 이들의 존재는 소위 말하는 '코로나 블루'에 빠진 이들에게 있어 영웅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사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나 '더 보이즈'의 극 내부에서도 영웅의 위치에 오른 이들이 표면적으로 하는 말들은 동일하다.
'여러분을 위해서'
'대중을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선한 영향력을 펼치기 위해서'
그리고 인플루언서들도 본인을 영웅으로 삼는 팔로워나 구독자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여러분에게 즐거움을'
'좋은 콘텐츠로 즐거움을'
'위로와 위안을'
'유대감과 신뢰를'
'도움이 되는 정보를'
극 중의 영웅들이 하는 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스케일이 전 세계를 향하느냐, 자신과 팔로워들이 구축한 그들만의 세계를 향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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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이자 내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이 부분에 있다. 일상을 기록하고 취미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 각종 SNS를 하는 사람이 아닌, 정말 SNS라는 무대에서 '영웅'의 위치까지 도달하고 싶은 사람들은 과연 어떤 방향성을 잡고 있을까?
인플루언서는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따라야만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들이 구축한 세계 속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즉, 제한된 영역에서의 공리주의를 기본으로 삼아야 성공하는 영역이다. 그렇다면 영웅은 무엇을 원하는가? 개인으로서의 영웅, 개인으로서의 인플루언서는 무엇을 추구할 수 있는가? 돈? 명예? 안온한 삶? 개인으로서의 영웅이 공리주의를 선택하지 않을 권리는 있는가?
인플루언서와 영웅이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고 단정짓기 이전에 오히려 많은 영웅 혹은 인플루언서 후보생들은 다수에게 선택 받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두 작품이 변화된 세상에서 영웅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각각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는,
'영웅이라면 그에 걸맞는 책임과 사명을 가져라.'를,
'더 보이즈는'
'영웅이기 이전에 한 개인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를.
우리는 대체 어떤 영웅을 꿈꾸고 동경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