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관계 이후로
연인이 될 지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이 처음 마주하는 시간이 언제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쩐지 음산하다. 스토커처럼 누가 누군가의 뒤를 밟는다. 배려 넘치는 합의 따위는 없다. 마치 병균이 동의 없이 체내에 침투하는 것처럼. 사실 그것은 침투이자 침략에 가깝다. 관계를 맺기 직전에 터지는 스파크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크고 장중한 소리를 동반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문방구에서 파는 작은 콩알탄 정도의 소리와 그로인한 놀람 정도가 어쩌면 대부분의 관계의 시작이다. 당황스러울 순 있어도 새로울 건 없다. 운명이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웃음 나지만 그런 한도 내에서다. 어쩌다보니 서로가 서로의 친구를 알고 있고 그물망처럼 얽힌 관계들 속에서 당신과 나의 관계만이 하나의 금줄처럼 빛나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 우연이란 단어가 끼어들 감정적 여유는 없다. 그의 이름이 '밀'이고 그의 동생의 이름이 '쌀'이라니, 정말. 그 사실 때문이라도 역시 당신과 나는 운명이다. 운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것도, 죽는다는 것도 어쩌면 당신과 내가 있기에 그런거다. 한낱 교통사고 때문에 죽을 필욘 없잖아, 우리 같은 운명은.
관계는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다. 관계를 잇는 그 빛나는 줄의 금박이 벗겨지고 세월에 자연스레 삭아 끊어질 때까지 그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툭- 하고 끊어질 뿐이다. 이것도 운명이라고 할래? 이것도 운명일지 모른다. 누군가 이유도 없이 지하철 역사 내에서 휘두른 칼에 사람은 죽고 저멀리부터 시작된 바다 속 돌무더기들의 마찰이 우리가 사는 뒷동네에 지진을 일으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돌들과 상관도 없는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죽는 것처럼. 모든 것은 운명이라고 하기에 족하다. 하지만 어쩐지 이러한 운명은 비극적이다. 애초에 운명이라는 단어는 종결에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운명이란 단어를 제멋대로 어떤 찬란하고 공교로운 접합점에 기대어 사용하길 원한다. 지극히 인위적인 개념에 자신의 온 감정을 걸곤 한다.
우리는 관계에 있어서 불안한 것이 아니라 견고하고 단단한 것들에 강한 신뢰를, 아니 거의 전부이다시피 한 것들을 내건다. 깨어지지 않을 관계, 부서지지 않을 강한 유대, 무조건적인 사랑, 동일한 시공간에 놓여있길 바라는 서로의 지향점에 평생을, 몸과 마음을, 영혼을, 돈을, 생명을, 사랑을. 그러나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우리가 끝없이 달려봤자 허상은 충만함보다는 기갈을 안겨준다. 이상이 곧 허상이라는 것이 아니다. 변화무쌍한 서로가 관계에 있어서는 절대무변함을 바라고 있다는 것, 개개인의 그 동적인 움직임들을 가둬 놓으려는 운명이라는 인위적 단어가 곧 영원한 위안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간극과 균열을 견디지 못한 우리는 멀어진다. 서로의 영토에 궁상맞게 패인 구덩이 같은 상처들 몇 가지를 남기고서 안녕이다, 안녕. 불안한 우리가 이제 기댈 곳은 어디일까, 길을 잃은 우리가 가야할 곳은 어디일까. 그것보다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우리.
아사코는 그렇게 무심코 발을 떼며 떠나간 관계 이후의 주인공이다. 아사코는 떠난 자리로 돌아온다. 아사코가 료헤이의 옆에 기어이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잘못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끔찍하게 뻔뻔스런 성격의 소유자라서가 아니고 내면의 죄책감에서 기인한 자기처벌 욕구에 의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아사코가 신뢰하는 것이 관계의 절대성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사코가 믿는 것은 아사코의 감정과 욕구다. 아사코는 바쿠가 아닌 료헤이의 옆에 있기를 원했고 그것은 료헤이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와는 무관한 일이다. 다치지 않고 사랑받고 할 수 있는 무결점의 관계 속에서 건강한 자신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한다는 주체로서 상대방이 밀어내도 계속해서 다가갈 수 있는 존재로 아사코는 움직인다. 아사코의 동력은 상대방을 포함한 외부세계가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 나아가 아사코는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에 절대적인 신뢰를 내걸 수 없다는 사실을 신뢰한다. 더럽지만 아름다운, 관계의 이면을 모른 척하지 않는다. 불어난 강물이 더러운 것들을 모두 붙잡고 떠내려갈 때에도 아사코는 그러나 아름답다고 말한다. 만남과 헤어짐과 분노와 슬픔이 도사리는 곳과 같은 높이에 역시 애정도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아사코는 그 불안감을 믿는다. 서로를 속일지라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등 뒤에 기대어 바라보지 않고 홀로 방파제에 서서. 아름답고 따뜻한 여름날의 바다가 아닐지라도, 격앙한 새벽녘 파도가 자신을 삼킬 것처럼 몰아쳐도 눈을 돌리지 않는다.
아사코는 그렇게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