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과 분출에 대한 기억
소마이 신지 영화를 처음 봤다. <세일러복과 기관총>을 비롯해서 지인들이 궁금해 한 영화인 <이사>까지,
베일에 싸인 80년대 후반기에 전성기를 보낸 일본 영화 감독이라.
80년대 일본 영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이시이 소고 감독의 <역분사 가족>. 호황기에 접어든 일본 사회를 유쾌한 동시에 너무나도 기괴하게 풀어낸다. 전쟁 세대인 조부와 베이비 붐 세대인 중년 남성의 아버지, 일정한 여성상과 가정에 갇힌 중년 여성의 어머니, 그리고 입시 지옥에 미쳐 버리고 만 아들. 영화의 핵심은 ‘내집마련’과 ‘가족 간의 화합’에 집착하는 일본의 중년 남성에 있다. 구 세대와 신 세대의 갈등, 여성과 남성 간의 갈등 그 중심에 끼어서 가족을 이끌어야 하는 혼란을 극복해야만 하는 존재.
그리고 딸이 있다. 이제 막 중학생인 딸은 여성 레슬러에 열광하는 동시에 자신을 ^여성^스럽게 꾸미는 것에도 집착한다. 사회가 무의식적으로 주입한 아름다움에 대한 맹목적인 열망,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가정과 사회 속에서 자신을 구속하는 복잡다단한 권력관계의 사슬을 끊어 버리고 싶은 열망이 혼재된 캐릭터였다. 그것은 비단 역분사 가족의 ‘딸’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이고 유일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태풍클럽은 이러한 딸들, 억눌린 욕망과 원치 않는 종점으로 성장할 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공포, 변화에 대한 열망인 동시에 변화에 대한 공포, 그 양면성 사이에서 부유하는 존재들에 집중한다.
+ 쿠도 유키는 <역분사 가족>과 <태풍 클럽>에 모두 출연했고 나아가 <러시아워3>와 짐 자무쉬 감독의 <미스테리 트레인>에도 출연했다. 놀라운 연기를 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나는 만약 내가 중고딩 시절에 저런 연기를 했다고 생각하면 아마 자아 붕괴가 오지 않았을까 하는데. 어쨌든 좋아하는 배우다. 지금 행보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시골의 어느 한 고등학교.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학교와 학생들, 그리고 선생. 그러나 그들은 사실 불안하고 아프다.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 도시에 대한 환상, 모두의 앞에서 광대가 됨으로써 관심을 받는 것, 짝사랑과 동성애 그리고 결국 자신의 삶이 이렇게 끝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뒤이은 체념들. 이것들이 좋고 나쁘다는 가치판단은 의미가 없다.
한가롭고 천천히 흘러가는 시골의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시각화 되지 않은 격렬하고 벅찬 고뇌들이 드문 드문 빈 공간들을 가득 채워 놓는다. 사각의 스크린에 차고 넘치는, 태풍의 빗물과 바람과도 같은 호르몬, 감정들.
작중에는 ‘리에’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녀는 어느 날, 충동적으로 도쿄로 떠난다. 가출을 한 것이다. 동급생인 ‘미카미’와 학교를 같이 가기로 해놓곤 늦잠을 자게 된 어느 날에 그녀는 황급히 옷을 챙겨 입으려 동분서주하다 어머니의 화장대 앞에 앉는다. 이리저리 자신을 꾸며 보고는 어머니의 잠자리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더듬는 듯한 몸짓을 보인다. 성장이 완성되지 않은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재단한다. 시간에 맞춰 학교를 가야하고 수업을 듣는 소소한 규칙과 의무에 대한 환멸, 새로운 장소와 경험할 기억들에 대한 기대는, 그녀를 자신을 가두는 궤도로부터 이탈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태풍이 올 것 같다’라는 말을 남겨두고 그녀는 도쿄로 떠난다. 자신의 미래는 그저 어머니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떠올랐을 지도 모르겠다.
리에는 도망치듯 도쿄에서 떠난다. 자신이 꿈꾼 도시와 달리 도쿄는 그저 휘황한 불빛만을 머금을 뿐, 갇힌 채로 늙어간다는 인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은 아님을 깨닫는다. 비가 끊임없이 몰아치는 도쿄의 골목길에서 그녀는 도움을 청하지만 아무도 없다. 그녀가 도망치듯 달려가 잡은 손들은 모두 마네킹에 불과했다.
태풍이 오고 있음을 예견한 인물은 리에 외에도 '아키라'가 있다. 아키라는 자신을 깎아 내리며 친구들에게 웃음을 주며 관심을 유도한다. 다른 남학생들보다 체격이 작은 아키라의 생존방식일 지도 모르겠다. 콧구멍에 학용품을 끼워 넣으며 아이들을 바라보면, 아이들은 '아키라, 더 해봐' 라고 신이 나서 말한다. 그러다 아키라는 수업 시간에 모두에게 주목을 받는다. 선생은 한심하다는 듯, '아키라, 또 너냐?' 라고 묻는다. 아키라가 씨익- 웃으면 모두가 따라 웃는다. 부끄러움이나 수치심 보다는, 이를 통해 모두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전략. 살면서 한 번쯤은 학교에서 만나 보았던 인물형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혹은 나 자신의 캐릭터였을 때도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태풍이 오고 있음을 알고 있는 아키라와 리에는 모두 태풍이 온 시점에는 학교에 없다. 그들은 각기 다른 공간에서 태풍을 맞이하고 학교로 돌아온다.
‘리에’가 떠난 뒤, 마침 태풍이 몰려오자 리에의 동급생인 한 무리의 학생들은 빈 교실에 남는다. 규칙적인 일상이 잠깐 동안 붕괴되고 그들을 통제하거나 혹은 그들을 안내해줄 선생님이 사라지자 억눌린 욕망들이 전면에 드러난다. 짝사랑을 하는 여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학생, 자신들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서로의 몸을 더듬고 입을 맞추는 친구들,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벗고 춤을 추며 노래하는, 속옷 차림의 남녀들. 그들은 아직 젊다고 하기에는 어린, 그러나 필사적으로 껍질을 깨고 나오고 싶어하는 에너지들을 뿜는다. 그 뜨겁고 혼란스러운 에너지는 태풍에 섞여 분출된다.
한 아이는 자살한다. ‘미카미’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은 각각의 개체가 종을 초월할 수 있는가, 라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던 소년이었다. 한 개인이 인간 전체를 지배하는 법칙을 초월할 수 있는가.
미카미는 자신의 선생님을 비판한다. 선생님처럼 되지는 않겠다고.
그러나 선생님은 너무나 쉽게 말한다. 어차피 너는 15년 뒤에 나야. 결국 발버둥쳐 봤자 결국 너는 내가 돼. 선생님이 내뱉은 이 말은 미카미가 오래도록 고민해온 질문에 대한 너무나 거칠고 절망적인 답변이다. 결국 개인이 인간 전체를 초월할 수는 없어. 발버둥쳐도 너는 결국 나처럼 유형화되고 개념화된 무기력한 인물이 될거야. 무색무취한 존재가 될거야.
미카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자신의 죽음을 통해 증명하려 한다. 그러나 소년이 자살하고 난 뒤에 화면에 담긴 소년의 모습은 숭고하다거나 슬픔, 혹은 깨달음을 이끌어 낼 만한 이미지가 아니다. 오히려 소년의 죽음은 웃음을 유발한다. 태풍 때문에 운동장을 가득 채운 구정물 속에 상체만 박혀 있고 하체는 이따금 움찔거리는, 만화에나 나타날 법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결국 소년의 죽음이 태풍을 함께 맞이한 다른 동급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메시지는 제시되지 않았다. 소년의 죽음을 안고 있는 학교는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학생들에게는 그저 금각사와 같이 아름답게 빛날 뿐이다.
그러나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예전 같지 않다. 태풍은 모든 것을 휩쓸고 간다.
그 안에서 견딘 존재도, 그 밖에서 보낸 존재도 모두 예전 같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언젠가 그런 순간들이 온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격렬하게 붕괴되고 또한 재조합 되며 다시금 원래의 상태로 회귀하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변형되어 서로가 낯설어 하는 공기와 분위기를 마시는 나날들.
태풍이 오기 직전의 건조하고 착잡한 눈빛과 말투는 태풍이 휩쓸고 간 뒤에, 아직은 눅눅하게 가라앉은 습기와 물컹한 복숭아의 속살에 부대끼는 것만 같은 감정들.
소마이 신지는 이 모든 것들을 천천히 그리고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청소년기의 불안함이나 폭발하는 감정 같은 것들을 표현하기에 이질적이다.
그러나 삶은 이렇듯 연속적이다. 일년에 잠깐 동안 휩쓸고 가지만 결국 그 자리는 영원히 이질적으로 만드는 태풍과 같은 시기도, 결국 삶의 일정한 연장선에 존재하는 점들의 모임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성장에 대한 종용도 억압에 대한 비판도 말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했던 고민들, 가졌던 에너지들, 지웠던 기억들에 대한 제시와 환기 정도라면 충분할 것 같다.
언젠가 비 오는 날에 무작정 성별에 구애 받지 않고 중학교 운동장에서 모두가 모여 공을 뻥뻥 찼던 기억이 난다.
돌아가는 길에 내가 걸어온 길만큼의 빗물들이 총총 찍혀 있었고 신발 안에는 모래와 물이 가득 차 있어서 불쾌했지만.
그 때만큼 유쾌했던 기억이 있었나, 그 때만큼 속 시원하게 스트레스를 풀어본 적이 있었나,
그 때만큼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고 내가 가진 온갖 육체의 힘을 동원한 적이 그 이후로 있었나,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