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파인 다이닝 알바의 후기
내가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시급이 8,000원대였다.
나는 소위 말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일했고 그 레스토랑은 부잣집들이 즐비한 동네에 자리해있었다. 레스토랑을 가지고 있는 대표는 내가 일했던 곳과 비슷한 레스토랑을 그 근방, 멀지 않은 곳에 2~3 곳을 더 경영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서유럽 국가들의 요리 풍토를 따온 느낌이었다.
내가 일했던 곳은 이탈리아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었고, 당시 나는 몸을 쓰며 일을 하는 것에 꽤나 큰 기쁨을 느끼고 있었고, 편의점이나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보다 시급이 200원 정도 더 높았다.
한 번도 서빙을 해본 적은 없지만, 포스기를 다루어본 적이 있었고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동나잇대의 경쟁자들을 제칠 수 있을만한 큰 자산이었다고 생각한다)
날 좋던 9월달 중순, 오후 4시 즈음 면접을 보러 갔다.
그때가 점심 예약을 전부 마무리한 다음에 직원들이 쉴 수 있었던 오프 타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애초에 요리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홀 서빙을 하는 직무로 지원을 했다. 별 게 있을까 싶었다. 음식 나오면 서빙하고, 파인 다이닝이니까 요리에 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외워논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모르는 걸 물어보면 정직원을 부르면 되는 것이었고.
나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남자가 나의 면접을 보았다. 키가 180cm 정도 되어 보였고, 덧니가 심하게 난 ‘이이경’을 닮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 사람은 나를 마음에 들어했고 나는 바로 다음날부터 출근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이 일이 굉장히 치열하고 또한 울적해지는 순간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베어’는 한 천재 요리사가 빚더미에 오른 핫도그 식당을 인수하여 파인 다이닝으로 만들어가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심플하게 설명했지만 이 안에는 조금 복잡한 이야기들이 레이어를 쌓아 구성되어있다.
천재 요리사 ‘카르멘 베어제토’는 젊은 나이에 고평가되어 있는 세계 유수의 식당에서 커리어를 쌓아, 장래가 촉망되는 셰프로 기대받는 유망주였다. 그에게는 ‘마이클’이라는 호방한 형이 하나 있었는데, 시카고의 귀퉁이에서 가족과도 같은 친구들과 함께 작은 핫도그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카르멘은 어린 시절부터 마이클의 영향을 받아 요리사의 꿈을 키워갔고 실제로 어중이떠중이 요리사가 아닌, 세간에서 알아주는 셰프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명성이 높은 셰프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요리 실력만으로 될 수는 없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를 고안해내야하고, 수셰프로 있는 동안 사수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과 동시에 사수의 이유 없는 갈굼으로 인해 완치되지 않는 공황장애와 수면장애를 얻어야만 했다. 매 순간이 소중하고 긴박한 주방에서의 시간을 보내며 카르멘은 점점 보통의 인간이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일상’을 잃어버린다. 연인을 만든다거나,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거나, 보람 찬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단잠에 빠지는 것과 같은 그런 기본적인 안온함을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망가져가던 카르멘을 ‘완벽하게’ 붕괴시킬 만한 사건이 일어난다. 형인 마이클의 부고가 들려온 것이다. 그것도 사고나 타살이 아닌, 권총으로 직접 자신의 머리를 쏘아버린 자살의 형태로.
내가 일할 때는 ‘더 베어’가 아닌 ‘왕좌의 게임’이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시기였다. 나는 오전 서빙을 끝내고 나서 테이블을 정리한 뒤에는 항상 노트북을 꺼내 왕좌의 게임을 시청했다. 다른 알바들이나 홀의 정직원들, 셰프들과 견습생들은 전부 의자를 연결해놓고 그 위에 누워 낮잠을 청했다. 런치보다는 디너 타임의 일이 더 빡세고, 술을 주문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매출도 높지만 동시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되지 않을만큼 기상천외하면서도 돈 많은 인간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체력을 비축해놓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 레스토랑에서 1년 정도를 일했다. 검정 슬랙스와 흰색 셔츠를 입고 꼭 구두를 신고 출근해야만 했다. 자세는 항상 꼿꼿한 상태를 유지해야했고 몸매도 슬림한 편이 팁을 받기에도 좋았다. 뚱뚱한 사람은 서빙을 하거나 설명을 할 때에도 불쾌한 감정을 준다는 이유가 나왔다. 동의할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먹고 마시는 손님들의 테이블을 돌며, 물잔이 빈 사람들에게 물을 따르는 일만 시킨다. 의욕이 앞서면 고객들이 불쾌해한다. 물 좀 마시고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할 일이 없는 나 같은 서빙 알바가 와서 어떻게든 물을 채워주려고 하니.
그 일이 좀 익숙해지면 이제 슬슬 음식 서빙을 시작한다. 파스타를 내어 갈 때는 접시의 어디를 잡아야하고, 어떤 집게를 가져가야하는지, 딱새우와 소라고둥이 들어간 메뉴를 가져갈 때는 어디까지 해체해주어야 하고 어디까지 발라주어야 하는지, 피자가 너무 탄 것 같다는 컴플레인을 받을 때는 화덕피자의 특수성을 어떻게 불쾌감을 주지 않고 설명해야 하는지 등의 교육을 받는 것이다. 이 단계가 대부분의 알바생들이 3~4개월 동안 일을 한 상태였고 대부분 그 시기에 그만둔다. 생각보다 진상인 인간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메뉴는 동일하더라도 그 당시의 원재료 수급 상황에 따라 농어가 민어로 변경되거나, 제주도산이었던 해산물이 통영산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는 그 변동성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쫑크’를 받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고 알바가 끝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쓰레기장 뒤편에서 담배를 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던 적이 있었다. 제깟 놈들이 뭐라고, 셰프가 나한테 욕을 하면 뭐라 안해. 고작 서빙이나 하는 놈들이 경험 좀 더 많다고 쿠사리 줄 건 뭐람. 나도 참 굉장히 어린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홀 캡틴과 매니저와 함께 다같이 모여 저녁 스탭밀을 먹고 업장을 닫는 와중, 이야기가 우연히 닿아 와인을 한 잔 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당최 이 인간들은 서빙이나 하려고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고작 이정도 돈을 번다는 것에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가지길래 열을 내어 알바생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건지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캡틴은 문예창작과 출신이었다. 소설을 쓰고 싶어했고 소설을 쓰기 위해서 몇 년 동안 고시원에 살면서 남들 고시 공부를 할 때, 자기는 뼈를 깎는 고통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고 한다. 근데 그 결론이 여기였다. 나와 같이 돈이 궁한 시절에 한 푼이라도 벌어보려고 이곳에 발을 들였다가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캡틴은 자조하는 듯이 말하지는 않았다. 지금이 행복하다고 했다. 내가 왜냐고 묻자, 여기서 조금은 자신의 영향력을 펼치는 것 같아서 즐겁다고 했다.
판에 박힌 듯이 재료의 원산지를 외우고 상대하기 싫은 고객들을 치우기 위해 떠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내 말을 듣고 미소지을 수 있는지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새우는 제주도산 딱새우입니다-’라는 딱딱한 문장에서, ‘오늘은 제가 직접 셰프님들이랑 함께 수산시장에서 공수해 온 딱새우라서 맛은 제가 보증합니다. 정말 신선한 녀석들로 특별히 선별했답니다’와 같은 능청까지도 부릴 수 있었다고.
소설 같다고 했다. 이 모든 게. 이 레스토랑에 온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이고 그들은 가끔은 악역을, 가끔은 작가조차 울릴 수 있을 정도의 선한 역할로 다가온다고 했다. 국문과 출신으로 소설쓰기에 도전했었던 나에게 캡틴의 말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어차피 꿈을 이루지 못해 도피한 것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삶의 경험이 얼마나 쌓여있는가-를 겨루는 싸움이기도 한 것이었으니.
매니저는 좀 달랐다. 요식업계와 관련된 학과를 나와, 다른 식당에서 매니저를 하던 와중 현재 근무하는 식당의 셰프와 연이 닿아 스카우트 당한 것이라고 한다. 캡틴 역시 매니저가 불렀다고. 매니저는 말투가 사근사근하고 농담도 곧잘하는 남자였지만 일처리를 진행할 때는 꽤나 냉철하고 또한 냉혹했고, 일은 일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자부심은 누구보다도 크고 높게 가지고 있었으나 오히려 일의 재미와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감을 갖고 있었다. 미슐랭의 별을 몇 개까지 모을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과 목표에의 질주가 당시 그의 삶을 채우는 전부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다. 나는 그들에 비해 할 이야기가 없었다. 때문에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이질감은 내가 받는 시급에 비해, 파인 다이닝에서 즐기고 떠나간 사람들이 지불하는 액수가 너무 높아서, 그 간극을 피부로 느끼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아무것도 박탈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박탈감에 가끔씩 숨이 막힌다고 말했다.
그러자 캡틴이 말했다.
‘웃기지 않니? 한 끼에 100만 원 가까이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의 기분이 월급 250만 원 받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게 말이야.’
캡틴은 그 말을 하며 기분이 어땠을까.
요리를 주제로 한 콘텐츠는 웬만해서는 재미있다. 일본이 잘 하는 요리와 힐링물을 뒤섞은 드라마나 숏폼은 언제나 지친 일상에 큰 위로가 되어준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나 헬스 키친, 요즘 인기인 흑백요리사와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요리사들이 마주한 압박감이 마치 의학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은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더 베어는 단순히 재미라는 차원을 넘어 내게 지금껏 살아온 삶을 떠오르게 해 괴로웠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마치 내가 일했던 곳의 셰프들과 홀 직원들의 이야기를, 그것도 듣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들까지 들으라고 강요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들의 이런 은밀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였다. 그들을 애정하게 될까봐였다. 편집증, 피해망상이 심한 것 같은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처음에 대부분 비호감이다. 영문도 모른 채 이들이 화가 나 있는 모습을 봐야하고 시간에 쫓겨, 돈에 쫓겨 섬세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많은 것들을 뭉개고 지나가는 이들의 모습이 답답했다. 그리고 나아가 미웠다. 내가 삶을 살아오면서 미워했던 나의 상사, 친구,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해왔던 지인들의 모습이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악역으로 남아있어야만 했다. 그래야 내가 잠시 스스로가 작아지고 한심해보이고 미울 때, 그들을 마음껏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탓해가며 작고 미약한 자존감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 베어는 그래서 괘씸하다. 카르멘을 이해하게 되고, 리치가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며, 시드니가 조금 더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쓸데없는 오지랖이 마음 속에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다들 알고보면 좋은 사람들인 거 나도 안다. 내게 상처를 주었던 누군가도,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나이브한 이야기인 것 같더라도 진리는 항상 단순하고 지루하다. 역지사지라는 말 안에 담기에는 그건 조금 오만한 것 같고.
드라마를 보는 사람 마음이지만, 요새는 왕좌의 게임과 같은 거대한 대서사시보다, 더 베어와도 같은 미시적인 이야기들이 끌린다. 아니, 끌리다못해 미치도록 이 현실을 바꾸고 싶은 마음에, 전례없던 몰입과 공감을 하게 되어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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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4에서는 또 어떤 답답하고 숨막히는 순간들이 카르멘을 비롯한, 레스토랑 ‘더 베어’의 구성원들을 찾아갈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하지만 가끔씩 구성원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시간을 내어 서로의 과거를 생각해보곤 한다. 티나가 직업을 갖기 위해 며칠 동안 발을 동동 구르며 시카고 더 비프에 도착해서 눈물 젖은 핫도그를 먹었던 것처럼, 테리 셰프가 그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도 이제는 여행을 떠날 거라며 자신의 오랜 친구와도 같은 레스토랑의 장례를 치러주는 것처럼, 그리고 마커스가 이제는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엄마의 죽기 직전의 순간을 상상하는 것처럼.
캡틴과 매니저의 연락을 끊은지는 오래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알바였긴 했지만 전 직장의 상사들이었고 그들과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것은 꺼려지기 마련이다. 다만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괜시리 그들의 인생이 행복하길 빌어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연락이 오래도록 끊어졌기에 그들이 내게 카르멘이자 리치이자, 마이클로 느껴진다는 것 정도다. 나 따위의 염원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겠냐만, 나를 위해서라도 그들의 행복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