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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망자 Sep 24. 2024

'크리에이터 파일 골드'와 '라이트하우스'

일본의 책과 예능을 핑계로 내가 하고 싶은 말들


예전에 쓴 자기소개서 글에 이런 걸 쓴 적이 있다

결국 경주마가 결승선에 이후 다다른 이후 마주하는 곳은 또다른 경마장 뿐이라고.

지금은 사실 어디로 달려가는지는 안다, 단지 그곳이 가기싫은 곳일 뿐.






난생 처음 접한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집어든지는 이미 1년 전 2022년이었다. (많이 유명하지 않은 '아기를 부르는 그림'이라는 시대물 추리극이었다.) 나는 얼마 전에 그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기타이치라는 인물과의 접점은 하나도 없고,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가 대체 어떤 글을 써왔는지 알지도 못한 채 - 화차의 작가라는 걸 안 건 꽤나 나중 일이었고 - 나는 맹목적으로 이 책을 구매했기 때문에 썩히고 싶지 않아 읽었던 것일 뿐인데, 어쩌면 정말 다양한 삶의 흔적들이 기타이치가 마주했던 은행잎 문신을 한 여성의 살인사건처럼 스러질 위기에 처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요즘 강박적으로 일기를 쓰고 있었던 것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나의 삶의 많은 부분들이 일과 돈에 의해 빛이 바래지면서, 그 빛을 잡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내가 기록하고 있었던 것은 그날 내가 어떤 목표를 달성했는지에 대한 답답하고 재미없는 글들 뿐이었다. 그냥 떨어진 기억 조각들이었다.



내가 올해 들어 일본어 듣기랍시고 들었던 모든 일본의 예능들이 뭔가 저주스럽다..

토크 서바이벌부터 시작해서 특급 어시스트 아리요시, 지금 보고 있는 ;크리에이터 파일 : 골드' (이건 나쁘지 않음 그냥 나같음) 등등, 어딘가 이걸 봤다고  대화를 나누기에는 저급한 것들 투성이인데 내 요즘 정신 상태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에 나는 많이 저급해져 있다고.


'크리에이터 파일 : 골드'를 보면 일본의 개그맨 아키야마 류지가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며 자기 스스로가 수천, 수백가지의 페르소나를 사용해서 사람들을 웃기곤 하는데, 나 어쩌면 정말 저런 게 너무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sB3hP4xt4Q4


성공적인 웨딩을 위해서라면 절대 타협하지 않는 한 웨딩플래너를 연기한 것인데 사실 나는 이 사람이 천재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자기가 재밌는 걸 계속 하다보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지에서 터지는 웃음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분야에서 똑똑한 사람들은 쎄고 쎘지만 이걸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크리에이터가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냥 아키야마 류지를 보여주고 싶다.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내가 무엇이 되어 사람들로부터 얼마 간의 돈을 뜯어내는 지의 기준보다는 그냥 엄청 뜬금없이 시작한 이야기만으로도 사람들의 웃음을 끌어내면 엄청난 능력인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 같은 사회에서 누구 헐뜯지 않고서는 조롱 섞인 웃음조차 자아내기 어려운 게 현실인데. 외국 밈이 가끔 유해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나와 거리가 먼 것 같은 인간들을 헐뜯으면서 웃는 걸 보고 나도 심각성이나 공감대를 느끼지 못하고 그냥 웃고 있음을 발견할 때다. 그럴 때마다 오드리의 와카바야시가 생각난다. 호시노 겐이랑 함께 찍은 넷플릭스의 라이트하우스는 가볍게 봤음에도 불고하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4poIjIK75I


병들고 아픈 사람들 사이에서 건강함과 유쾌함을 잃기란 쉽지 않고, 누군가 건강함과 유쾌함을 연기하고 있을 때 그걸 격려하지 못할 망정 끝까지 그 사람의 거짓된 면을 찾아 집어내려는 모습들이 안타까운데, 이미 내가 그러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게 내 무기로서 활용되었을지 몰라도 얼마간 살만큼 산 사람들이 그냥 입을 다물고 자기를 돌아보는 이유를 이제는 안다.


많은 질투 속에서 오늘도 나를 별다른 이유 없이 나를 신뢰하고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도와줬던 과거의 팀원들을 보면서도 느꼈다. 그 중에 한 팀원은 이미 똑똑한 사람인데 하고 많은 이미지 중에 자신을 낮추는 것을 택했지만 누군가를 도와줄 때만큼은 너무나 큰 진심으로 다가와주는 것에 나는 존경과 감사함을 느꼈다. 


회사에서도 몇 가지 이슈가 있었는데,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노동의 가치를 내가 후려치고 있다는 생각에 옅은 자괴감을 갖고 내내 살았다. 괜한 언질로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트위터를 보다가 연락이 뜸한 친구의 트윗을 보고 많은 생각을 또 했다. 연차가 쌓인 그가 이제는 많은 자리에서 기분 나쁜 티를 내도 넘어갈 수 있는 위치가 되었는데, 또 사람들에게는 상냥해야 한다는 생각에 괴롭다고 했다. 내가 지금 그러고 있다. 재은아, 나 그러고 있어!


좋은 책과 좋은 영화를 볼 준비를 하자. 매일 목표를 외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매일 좋은 이야기를 일상에서 얻어내기 위해 거기서 조금 더 기민해질 필요가 있다. 팀원 중 한명이, 내 장점이 행동력이라 했는데 정말 내 장점이 행동력이라면 매일 같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자각하는 내가 이대로 있진 않았겠지. 하지만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게 삶이라면...


생각이 많을 땐 이제 공을 들고 동네 뒷산 위에 있는 족구장에 몰래 들어가 공을 통통 찬다.


미친듯이 뛰어다니지도 않고 사람들과 경쟁을 하고 누구를 제끼며 골을 넣는다는 목표로 축구나 풋살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게 최종목표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발등과 발목 사이 어딘가의 그 지점에 공이 닿았고 그게 내 바운더리를 많이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또다시 돌아온 공을 내가 맞받아친다.


소유라는 게, 내가 그 공을 품 안에 꼭 쥐고 있는 게 아니더라.


결국에는 누군가한테 건네줄 줄도 알아야하고 누가 건네준 걸 내 바운더리 안에 안전하게 먼저 내려놓은 다음 그 공을 어디로 보낼지의 내 의도와 그 컨트롤이 정확히 일치하는 순간일 때가 온전한 소유의 개념이라 나는 확신하고 있다. 그러니 먼저 내가 뭘 가지려 하는지 계속해서 내 몸과 발등과 공, 내가 점유한 공간들을 끊임없이 알아보는 게 좋다. 내 소유의 공을 빼앗으려는 타인과 내가 누구에게 공을 주어야하는지의 피아식별도 중요하겠지만 일단은 내가 내 공간부터 알맞게 컨트롤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 하나만을 컨트롤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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