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
초2, 뭐 했냐고 물으면 '아빠가 뇌종양을 겪었던 때.'라고밖에 답할 수 없었던 그 시절에 나는, 고모 집에 얹혀살았다.
그중 지금은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셋째 고모와 유난히 친했었는데 한 날, 고모와 함께 장을 보고 나오던 때였다.
"니 엄마는 천사여."
대뜸 고모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
나는 단지 그때에 엄마가 병원에서 아빠 간병인으로 있어서, 그 점을 말하는 줄로만 알았다.
"윤희(가명)를 줬잖애."
"윤희를 왜 줘? 그게 무슨 말이야?"
어린 나는 그 말을 한 번에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윤희, 니 동생이야. 원래는 혜란이 너한테 동생이 둘이라고. 윤희도 네 친동생이야."
갑작스럽게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도, 말에 대한 사실 여부도 그 모든 게 당황스럽고 믿기지가 않았지만
늘 장난 섞인 모습이었던 셋째 고모의 얼굴은 그 누구보다도, 그 어떤 때보다도 진지했다.
그렇기에 나는 고모에게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니 엄마가 윤희를 낳았는데, 내가 애를 못 낳잖아. 그래서 윤희 달라고 했어, 내가."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 말을 믿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고, 그에 반해 사실은 태산같이 컸다.
어렸던 나와 우리 남매들은 몰랐는데, 이상하게도 지나가던 사람들이 먼저 눈치채고 물었던 것 같다.
나와 사촌 언니, 윤희가 함께 문구점을 가면 "너랑 너(윤희)랑 자매니? 똑같이 생겼다~"라고 하기도 하고,
나와 사촌 남매, 윤희와 충완이 이렇게 다섯이서 슈퍼를 가면
"너희끼리(나, 윤희, 충완) 남매구나? 친척들끼리 놀러 온 거야?"라는 식의 질문을 수없이 받았었다.
커가면서 굳이 고모들이 번갈아 말해주지 않아도, 주위 사람들이 먼저 눈치채고 물어봤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서로 우린 단지 '많이 닮은 친척.'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아빠가 방학만 되면 "혜란아, 윤희 와서 며칠 있으라 해라." 했다.
그러면서 아빠가 윤희 픽업하러 가고, 집에 다시 되돌아갈 때에는 용돈까지 주면서도 태워다 주기까지 했다.
일주일 정도 머무른 후 집에 가려는 윤희에게 계속해서 몇 번씩 "좀 더 있어, 윤희야~"라고 꼬드기기도 했고
윤희가 온 날은 나에게 평소 안 주던 용돈까지 잔뜩 주면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노래방도 찜질방도 다녀오라고 했다.
난 그런 아빠가 어색하고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나중엔 이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엄마는 윤희를 냉대했다.
글쎄, 왜 그랬을까?
그렇다. 난 윤희만 보면 "너희 집에 가."라고 냉정하게 말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긴 본인도 본인을 이해 못 하는 때가 오곤 하는 건데, 어찌 엄마라고 해서 예외가 아닐 수 있으리.
나중에 생각해 보니 항상 가난하게 사는 윤희가 친엄마 눈에는 너무 안타깝고 안쓰러워서,
그래서 보기가 버거워 그랬던 것도 같다. 엄마는 윤희의 진. 짜. 친엄마니까.
애들은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 "와, 무슨 드라마 같다."라고 한다.
그렇지만 더 이상 이런 식의 막장 드라마는 사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