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죄목은 '무임승차'입니다

by zozo

예전에 시골에 살 때, 버스로 1시간 거리의 검정고시 학원을 다녔었다.

워낙 시골 of the 시골이었던 지라 그 버스 정류장에서 해당 버스를 타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조현병으로 인한 환청 증세 때문에 평소 이어폰을 껴야지만 바깥을 돌아다닐 수 있었던 나는 평일 아침마다 버스를 타 기사 아저씨한테 목례만 하고 자리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검정고시 학원에 공부하러 갔다가 집에 오는 것이 평범하고 흔한 일상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무료하게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던 어느 날, 버스 기사 아저씨가 이어폰을 낀 나를 의식하신 듯 소리 높여 나를 불렀다.

"저기, 학생!!!"

항상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뒤쪽 자리에 앉던 나는 아저씨의 부름에 앞자리로 자리를 옮겨 기사 아저씨와 수다를 떨면서 학원까지 한 시간 거리를 이동했다. 뭐, 같이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다. 일방적으로 나만 얘기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는 뭐에 홀린 양 나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다 하였고 기사 아저씨도 뭐에 홀린 듯이 가만히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셨다.

글쎄,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가족들은 내가 그토록 원하던 자퇴를 했으니 이제 약만 잘 챙겨 먹으면 병은 괜찮겠지 싶어 나를 방관했고,

막상 학교를 나와 자유를 얻긴 얻었는데 조현병의 테두리에 갇혀 나는 이름만 자유지, 실은 가시 박힌 틀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현실을 마주하면서 느낀 외로움과 서러움, 괴로움 등을 처음 말 튼 아저씨에게 다 털어놓았다.

어쩌면 그 아저씨는 당황했을 지도 모른다. 황당했을 지도 모르겠다.

본인 차에 자주 타는 아이에게 인사 한 번 건넸을 뿐인데 대뜸 자기가 조현병인데 이게 힘들다, 저게 힘들다 한 시간을 쉬지 않고 털어놓으니 의문스러울밖에.

그리고 그다음 날 또다시 어제와 같은 기사 아저씨가 운전하시는 버스를 타게 되었고 난 반갑게 인사하며 1000원짜리 지폐를 넣으려는데 기사 아저씨가 대뜸 오른손으로 동전 투입구를 막았다.

'어? 조현병이라고 했다고 승차거부하시는 건가..? 나 또 말실수했나?'

짧은 3초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학생, 그냥 타."

그렇게 나는 몇 번을 무임승차했다.

무임승차 값은 나의 인생사였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걸로 됐다면서 버스비를 받지 않으셨다.

물론 항상 이야기는 내가 먼저 꺼냈다.

아저씨는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으셨고 내 이야기에 어떠한 태클도 걸지 않으셨다.

예를 들어 내가 자퇴했다고 해도 왜 자퇴했냐고 묻지 않으시고

내가 전교생에게 이유도 모른 채로 왕따 당했다고 해도 왜 찍소리도 못 했냐고 따지지 않으셨다.

궁금한 게 많아 보이시는 얼굴이셨지만 오직 앞을 보고 운전만 하시며 내 말에 응답과 탄식만 번갈아 하셨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난다. 뵙고 싶다.

그 당시 내가 제일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일주일에 적게 보면 아예 못 뵙고 많이 뵌다면 두어 번 뵈는 게 전부였지만 나는 그때에 그 기사 아저씨와의 만남이 제일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었다.

검정고시 학원을 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준 사람.

내 인생사를 가볍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준 사람. 그분께

그때 정말 가족보다 정신과 교수보다... 그 어떤 사람들보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셔서 감사했다고.

그리고 초면에 또 운전 중에 힘든 이야기를 꺼내서

정말

정말

정말로 죄송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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