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 탄생부터 육군에게 자신의 운명을 잡히다
중세 시대의 전통을 지키고 있는 융커 지주들과 다른 카스트의 상부 계급들, 거대한 산업 카르텔을 지배하고 있는 거물들, 자유군단의 방랑하는 콘도티에리 들, 제국 민간 행정의 고위 관료들, 그리고 이 모두보다 더 위에 존재하는 군사 카스트과 참모 본부의 구성원들. 이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자산들 중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었을 것이었다.
그 자산들이라고 하는 것들이 낭비적이고, 비경제적이었다. 그리고 산업계의 독점 세력들과 카르텔들, 그리고 관료제와 사법부, 경찰, 대학들과 육군이 청소되고 물갈이되며 개혁이 되어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새 민주주의 정권에 충성을 다하지도 않고 정직하게 봉사하지도 않고 있었다.
이것이 사회 민주당원들, 즉 대체적으로 사람 좋은 조합원들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기존의 권위에 복종하는 마찬가지의 습관을 가지고 있는 자들로, 다른 계급의 독일인들 속에서도 뿌리 깊게 배어든 이 복종심 강한 그들이 새로운 사회의 개혁을 강하고 가차 없이 진행할 것 같다는 생각은 애초에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이었다.
대신에 이들은 현대 독일에서 항상 지배적이었던 육군의 힘에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지 않고 물러서기 시작했다. 따라서 전장에서는 패배했을지라도 육군은 여전히 국내에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혁명을 물리칠 수 있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결말을 성취하려 기민하고 대담하게 행동을 개시했던 것이다.
1918년 11월 9일의 밤, 공화국이 "선포된"지 불과 몇 시간 후에, 베를린의 국가 재상부 안의 에베르트의 서재에서 전화 벨이 울렸다. 매우 특별한 전화로, 욕실 내에서 최고 사령부와 사적이고 비밀리에 연결되어 있는 전화선이었다. 에베르트는 그 때 혼자 있었다. 전화선을 들자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뢰너입니다."
이 전직 마구 제조업자는 여전히 그 날의 사건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듯이 갑작스럽게 원래부터 의도된 바가 아니지만 자신의 손으로 잘게 부서저 내리고 있던 독일에서 그게 어떤 것이 되었든 그 정치적 권력을 독일 국가에 찔러 넣어 다시금 일으켜 세웠던 것이다. 아직 그 감명적인 순간이 머리와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빌헬름 그뢰너 장군은 병참총감으로서 루덴도르프 장군의 후임자였다. 바로 그날 이른 오전 시간에 폰 힌덴부르크 육군원수가 더듬거렸을 때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카이저에게 더 이상 자신의 군대에게 충성을 명령할 수 없으며 나가야만 한다고 대담하게 말했던 것이다. - 용감한 행동으로 이것은 군사 카스트에서는 결코 용서 받지 못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에베르트와 그뢰너는 1916년 이래로 상호 존중의 유대를 다져오고 있었다. 당시 전시 생산을 담당하게 된 장군은 이 사회주의 지도자와 함께 그것도 아주 가깝게 일을 했던 것이다. 11월 초순 - 며칠 전이었다. - 그뢰너와 에베르트는 베를린에서 군주제와 조국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 지에 관해서 상의했다.
이제 조국의 가장 최저의 순간에 비밀 전화에 의해 둘은 다시 함께 했다. 그리고 그 때 그곳에서 사회주의 지도자와 독일 육군의 제 2인자는 협약을 맺었다. 비록 오랜 세월동안 공개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을 것이었지만, 독일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것이었다. 에베르트는 아나키즘과 불셰비즘을 억압하고 육군이 그것이 가진 모든 전통을 그대로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뢰너는 그러자 곧 육군이 새 정부가 자신을 설립하고 정부의 목표를 추진해 나가는 것을 돕는데 지원을 약속했다.
"육군원수 (힌덴부르크를 말한다) 가 그 명령을 유지할까요?"
에베르트가 이렇게 묻자 그뢰너 장군은 원수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육군 원수에게 정부의 감사를 전해 주시오."
에베르트의 이 답변이 의미하는 바는, 독일 육군은 구원받았지만, 공화국은 탄생의 바로 그 날에 이미 버림받았다는 것이었다. 명예로운 예외로서 그뢰너 자신은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독일 장군들은 결코 공화국에 충성스럽게 봉사하지 않을 것이었다. 종국에는 힌덴부르크가 이끌어서 공화국을 배신하고 나치에게 국가를 넘기게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