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및 북유럽 여행 6(마지막)

내가 바라던 인생은,

by 준둥

이번 여행은 12월 31일에 출발하여 1월 15일에 인천 공항으로 복귀하는 여정이었다.

체코, 오스트리아를 거쳐 헝가리로 그리고 유럽 최대 폭설로 인한 결항으로

헝가리에서 다시 핀란드로. 추가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한 해의 마지막과 새로운 해의 시작을 이동과 함께 맞이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들은


'내가 바라던 인생은 무엇이었을까.' 이었다.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토요일의 어느 날이었다.


그 토요일은 아침에 정말 개운하게 일어났었다.

비록 임용 공부를 해야 해서 아침을 대충 챙겨 먹고

9시까지 스터디 카페에 나가야했지만 말이다.


그 날은 신기하게 임용 공부를 하는 것이 꽤 집중이 잘 되었다.


'시험에 또 떨어지면 어떡할까.'

'다음주에 내가 예상하지 못한 어떤 문제가 생기면 어떡할까,'

'그래서 선배에게 야단맞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걱정 없이.


공부를 하고 난 뒤,

저녁이 되어서는 한 주를 무리 없이 보냈다는 것에 즐거워하며

집 앞 강가를 따라서 자전거를 탔고,

불어오는 바람은 참 시원했다.


그리곤 함께 공부하는 친구와

무한 리필 고기집에 가서 식사를 했다.


평소엔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그 날엔 생맥주를 마셨다.


쓰고 차갑기만 하던 맥주가

그 날만큼은 왜 그렇게 시원했는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서도 걱정이 없었다.

아, 그래도 한 가지 바람이 있었다면,

"내일도 이렇게 피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날은 오랫동안 나의 꿈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시험을 합격하고 나면,

그 토요일처럼 살다가,

일요일에는 눈을 뜨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되려 눈을 뜨지 않으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의 오랜 목표에는

수차례의 불합격을 경험한 수험생활에 대한 극복이라는 꿈과


그걸 이루고 나서는 평범한 하루.

그리고 끝나는 인생.


난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벌써 그 토요일도 5년이 넘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해야겠다.


그날은 겨울 방학식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짧은 1박 2일의 여행이었다.

그리고

그 날은 1차 시험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제주도로 가는 출국장 안에서

학교에서 챙겨간 노트북으로 시험 합격 여부를 검색하였다.


같이 간 보건 선생님이 그 모습을 영상으로 찍으려 했다.

나는 떨어지면 부끄럽다고,

안된다고 손사래쳤다.

혼자 창가에 걸터앉아 확인하고,

보건 선생님은 그 모습을 확대해서 사진으로 남기고,


결과는

다행히 합격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두 선생님은 엄청 궁금했을텐데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기다려주었다.)


여행을 떠난 그날 제주도에서

나는 불안감에 많이 휩싸였다.


이번에도,

또 이번에도

지난 2차례와 같이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면 어떡하지.


걷고

또 걷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아무리 걸어도,

또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었다.


답을 찾고자 열심히 고심했지만, 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면


'어쩌면 질문이 잘못된 것일지도 몰라.'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떡하지' 걱정할게 아니라

'이번에도 떨어지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지?'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좌절하지 않아야지.

이번에도 떨어져도, 또 다시 준비해야지

기간제로 근무하며 틈틈히 기출문제 분석하며 1차 점수를 높여야지.

이제는 좀 더 일이 익숙해졌으니까 더 수월하게 해봐야지.


그래서

앞으로 10년동안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해야지.


그래서,

임용 공부를 해서 꼭 합격해야지

그리고 그 10년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야지.


벌써 그 제주도의 경험도 3년이 넘었다.


작년이었다.

지난 추석은 정말 연휴가 길었다.


나는 장모님과

그리고 우리 부모님, 그리고 아내와 함께 일본 여행을 갔다.


나의

엄마는 여행이 길어질수록 시어머니와 같은 행동을 많이 보였고,

아빠는 늘 그렇듯 조심스럽고 뒤로 빠지는 모습.


나는 짜증이 쌓일대로 쌓였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밤.

일본의 어느 숙소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마지막 날 밤을 숙소에서 보내기 아쉬워,

우리는 모두 밖으로 나갔는데,


마땅한 음식점이 없어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곤 했다.


아내가 인터넷으로 애써 찾은 곳은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문을 닫았기 일쑤였다.

그러다 결국 도넛을 파는 가게에서 음료를 마시게 되었다.

맥도날드나 버거킹과 같은 장소였다.


둥글게 앉아 각자의 이야기를 했다.


조마조마

터지기 조마조마

우리는 그런 분위기를 뒤로하고,

서로 여행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들만 하고

사진을 나눠보고 있었다.


그렇게 겉으로만 대화하는 모습을 나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일어나서 얘기했다.

"저는 먼저 나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좀 더 이야기하다 오세요."


아내는 그런 나의 모습에 눈물이 맺혔고,


장모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00아 가지 마라. 네가 지금 가면 내가 많이 서운할 듯하다."


나는 차마 서운해도 어쩔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장모님은 이어서,


"너는 이제 결혼을 했는데 이전과 같이 행동할거니?"


"저에게는 시간이 필요해요. 시간이라는 값을 치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모님이 말씀하셨던

'이전과 같이'가 아직도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전에 결혼을 하기 전의 자유로운 삶.

책임감에서 벗어난 삶 정도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내 생각이지만, 당신이 겪으신 결혼생활과 연결해 볼 때,

결혼을 하고 나서는 책임감이 많이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때 장모님 당신께서는 늘 T라고 하셨지만 그 때는 우셨다.

하나뿐인 딸, 장모님은 이따금 못해준 게 많다고 생각하시나보다.


당신께서도

삶이란 굴곡을 열심히 살아내다 보니, 어쩔수 없다고 여기며

애써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굳게 살아왔음에도


이따금 딸에 대해서만큼은 늘 미안한가보다.


나에게 언제쯤 가까워지냐는 말에


난 그 와중에도

끝까지,

시간이라는 값을 치러야 한다고,

지금은 기다려야 한다고 꿋꿋하게 얘기했다.

섣부르게 다가갔다가는 더 멀어질 수도 있다고도 했다.


여행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친정과 시댁 모두에게 연락을 줄였다.


나는 나의 가족에게만

아내는 아내 가족에게만

연락을 하고 지냈었다.


시간이 꽤 흐르고도


장모님의 말이 꽤 오랫동안 나의 기억에 맴돌았는데.

"너는 이제 결혼을 했는데 이전과 같이 행동할거니?"

여전히 이 말을 되뇌이곤 했다.


'이전과 같이'에는 아마도,


나의 앞선 두 기억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일요일에 눈을 뜨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토요일 밤

앞으로 10년 동안 좌절하지 않고 시험 준비를 하겠다는 제주도의 기억.


장모님의

그 말이 나에게 오랫동안 남았던 이유는

이제는 이전과 동일하게는 살 수 없겠다는

스스로도 그러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엔 지불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제 더이상은

목표만을 바라보고,

후회없이, 거침없이 살아가는 삶.

내일이 오지 않더라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이젠 느끼지 않았을까.


과거의 마음들을 이제는 놓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삶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제 여행을 정리하는 중에 아내가 나에게 물었다.

"오빠는 어떤 아빠가 되고 싶어?"


답은 비교적 쉽게 나왔다.


언젠가 아이가 커서, 나에게 묻는다면.


"아빠는 내가 태어날 때 무엇을 하고 있었어?"

"금강경을 읽고 사복불언에 대한 논문을 열심히 쓰고 있었지."

"아빠가 맨날 얘기하는 원효가 그 원효야?"

"그렇지. 그 원효가 바로 이 원효야"


그러니까 내 2026년의 목표는 바로 이것이다.


인생은,

세상살이는 그 어떤 것도 원하는 대로만 되지 않고,

생각한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세우고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결단 속에는

혼자 내쉬었던 한숨

남들에게 보이지 않은 눈물,

여러 차례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들.

그리고 그 보다 조금 컸던 굳건한 마음가짐.


그리하여 결과를 이루더라도, 혹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게 삶이 다가온 결과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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