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 5

사랑하자 미치도록, 아니 죽도록

by 준둥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왕국의 중심이었다.

그래서인지, 유럽 전역을 거의 700년 가까이 통치한 중심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20세기까지 현대 문명의 가장 중심지는 유럽이었다.

그래서 현재를 알려면 유럽을 알아야 한다.

유럽을 알려면 유럽의 중심인 합스부르크 왕가를 알아야 한다.

합스부르크를 알기 위해서는 오스트리아에 와야 한다.


그러니까 오스트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근사한 나라 중 하나다.

물론 그 근사함 이면에는 주변국들에 대한 착취와 침탈이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반면에 헝가리는 오스트리아는 반대라고 생각한다.

헝가리라는 나라 자체가 기본적으로 우울과 비극의 정조가 녹아져 있다고 들었다.

그러한 이유는 세계대전의 여파, 대공황 그리고 근본적인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라고 느낀다.


헝가리라는 나라 자체가 오스트리아로 대표되는 중부 유럽과 동유럽을 구분짓는 장소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다페스트에 와서 계획된 일은 딱 1가지였다.


사진찍기!


유럽 3대 야경이라고 하는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앞에서 찍어보는 것이었다.


어부의 요새.png


위 사진은 아내와 함께 어부의 요새에서 국회의사당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다.


사진 작가님의 말에 따르면,

어부의 요새는 정말로 fisherman이 맞다고 한다.


정말로 어부들이 물길을 잘 알고 있었고,

다뉴브 강 건너에서 오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요새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런 어부들이 강에서 잡은 물고기들을 부다지역 사람들에게 팔았던 시장이 있는 장소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헝가리인들의 선배의 선배가 되는 사람들이

이곳에 살면서 그들의 생계와 터전을 지켰다는 장소라는 말이다.


어부의 요새를 지나서 국회의사당 앞으로 내려오는 길에

gloomy sunday 노래와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계단을 내려왔다.


일요일이 왜 우울한가?


일요일에는 미사를 한다.

미사에는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지내는 것이 헝가리의 풍습이다.

세계대전 이후에 일요일이 되었다.

나의 가족들은 전쟁으로 죽거나, 외팔이거나 외다리이다.

눈이 한 쪽 없는 경우도 있고, 얼굴이 반토막 나서 흉측하게 일그러진 사람도 있다.


일요일에 미사는 경건하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데 현실의 우리는 너무 고통스럽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이상과 진리, 그리고 전쟁 이후의 우리가 닥친 현실



그 간극은 너무나 멀다.



한국 근현대 소설 수난이대

잠깐 언급하고 지나가야겠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서 외팔이가 된 아버지는

6.25전쟁이 끝나고 다행히 살아서 돌아온다는 아들을 역에서 기다린다.

역에서 만난 너무나 반가운 아들은 예전 그 모습이 아니었다.

아들은 외다리가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화를 낸다.

그 화는 아무리 화를 내어도, 아내에게, 가족들에게, 아들에게, 주위사람들에게

아무리 화를 내더라도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눈에 아무리 넣더라도 아프지 않을 아들.

그 아들이 다리병신이 되어서 고향에 오다니.

아버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수 없었을 터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거리감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의 손에는 짐이 들려 있었는데, 눈 앞에 외나무다리가 나타난다.


아들은 혼자서 외나무다리를 건널 순 없으니 당황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업는다.

아들을 업느라 팔을 쓰다보니, 짐을 들 여력이 없다.

그 짐을 아들이 든다.


그렇게 부자는 외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넌다.


헝가리인들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미사에서 가족들과 자신의 모든 지인들을 만나는 일은

그럴 때마다 자신이 애써 잊고 살고 싶었던 기억들을

억지로 꺼내어 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주일은 우울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작가님으로부터 들으며

나는 끝으로 한 사람이 떠올랐다.


해인사에 가면 부처님이 한 분 계시는데 이름이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불은 그 손모양이 독특하다.


왼손으로 오른손의 검지를 쥐고 있다.

반대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검지 뿐만 아니라 주먹 전체를 감싸쥐고 있는 경우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그 상징의 핵심은

그러니까 부처님이 중생(우리같은 인간들)을 그 광대하고 넓은 지혜로 안아준다는 의미이다.


넓은 지혜의 품에 안겨있는 중생들은 그제서야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부처님 또한 다시금 부처로 거듭난다.


비로자나불 부처님께서 gloomy sunday에 나타나는 헝가리 선배들의

우울하고 속상한 마음을 안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불교의 세계관에서는


애초에 나 자신부터 부처이기 때문에


그리고

우울에도 힘이 있기에,

비극에도 열정이 있기에


결국 자신의 벽은 자신이 극복해 내어야 하지만 말이다.


KakaoTalk_20260113_014203476.png


그러니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우리는 어쩔 수가 없다.


사랑하자, 미치도록

아니


죽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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