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는 건 마치 어두운 밤길을 걷는 일과 같아서, 쉽게 길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가끔 불교 철학을 접하다보면, 거기에서는 ‘자신만의 길’이라는 것이 아예 없다고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니, 자신만의 길이라고 믿는 것도 사실 수많은 것들의 영향 하에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나를 둘러싼 부모님, 친구, 학교, 책, 직장, 국가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니까. 온전히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는 말이다.
사실 위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는 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항상(恒常, 언제나 변함없는)한 ‘나’가 없기 때문에 더욱 나와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불교가 말하는 ‘나는 없다’는 나의 존재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본질적 자아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를 둘러싼 것들에 의해서 내가 추구하고 원하는 것들이 보이지 않을 수 있으니 더욱 나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는 거다. 우리가 평소에 인터넷 영상을 보고, SNS로 집중력을 뺏기고 있을 때 내 안에서 들리는 이야기에는 그다지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요즈음 이모티콘 만드는 것에 열중이다. 이모티콘을 만드는 작업은 쉽지는 않았다. 이름을 짓고, 또 아이디어를 생각해서 구조화하고, 사람들 눈에 인상적으로 드러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늦은 밤까지 작업을 할 때도 있고, 몇 시간씩 그것에 몰두하곤 했다.
그런 아내에게,
“이모티콘으로 성공하면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어?”
“응 당연하지, 난 이것보다 직장 생활이 더 재밌는데?”
직장 생활이 더 재밌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그 직업이 천직이라는 걸까. 일을 하는데 스트레스가 없다는 걸까. 직장을 다니는 것이 더 안정적인 수입원이라는 뜻이 되는 걸까 또는 직장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과정이 재밌다는 걸까?
아님 그 모든 것들이 어느 정도 뒤섞여 있다는 걸까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사람은 자신의 길을 걸어야한다는 명제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다.
그게 직장생활이든, 가정생활이든, 사업을 하든, 글을 쓰든 말이다.
그것만이 의미없는 인생에서 인생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