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까, 살다보니까, 먹고 살다보니까 다들 그렇게 되었다.
세상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과 불합리한 일들이 많다.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은 사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이해하기 정말 쉽고 합리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관점에 따라서 같은 행동과 사건이라도 크게 달라지는 거다. 그렇게 사람이 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살다보니까, 먹고 살다보니까 편한 길을 찾다보니까 그렇게 되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거다. 예를 조금 들어서 설명해야겠다.
건강보험심사 평가원의 출처를 따왔다. 2020년에 비해서 24년은 대장암 비율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었다는 거다. 세간의 이야기를 따라보면,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뽑는다. 첫 번째는 2030대의 식습관에 문제가 있다는 거다. 치킨, 피자, 마라탕, 떡볶이와 같은 고 탄수화물, 지방의 음식들과 맵고 자극적인 음식들이 먹어서 대장암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식습관의 문제라는 거다. 그리고 두 번째는 몇몇 음모론자에 국한되는 이야기일수도 있겠으나, 백신 때문이라고 한다. 확실하게 검증되지 않은 백신을 사람들이 접종하였고, 그 결과 부작용으로 이러한 암이 폭증하였다는 거다.
무엇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또 각 개인별로 크게 경우의 수가 다른 부분이라 명확한 인과관계를 따지기에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첫 번째 이유든, 두 번째 이유든 간에. 결국은 당사자의 선택이 아니었냐고 되물을 수 있겠다.
그러니까. 식습관이 문제였다면 네가 처음부터 좋은 음식을 먹고, 과식하지 않고, 절제하며 건강한 생활습관을 운영하면 되는 거 아니었냐는 거다.
또는 두 번째 이유라면 네가 접종을 하지 않았다면 되는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아무도 너에게 그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결국 너 자신이, 본인이 그렇게 판단내리고 결정한 거 아니냐는 말이다.
사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본인에게 있기에 그렇게 말하더라도 쉽게 나의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다만 사람들이 먹고 살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그런 부분들에 깊게 생각하지 못하니, 사람의 선택은 온전히 자유로운 선택도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입맛이 단순 당에, 자극적인 맵고 짠 맛에 길들여져 있으니, 좀 더 정확하게는 중독되어 있으니, 나도 모르게, 모르는 사이에 그걸 원하게 되고 찾는 거다. 또는 직장을 다니며 내 시간을 갖지 못하니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저녁에 불규칙적인 시간 패턴을 가지게 되고 일정하게 못 사는 것일 수도 있겠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귀신과 관련된 설화가 있다.
사람이 귀신, 뱀파이어, 뭐든 간에 쫓길 때 좁쌀이나 겨자씨 등을 뿌리면 귀신이나 뱀파이어는 무조건 그것을 다 세어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그걸 세고 있는 동안 시간은 지나가기 마련이고, 그 결과 해가 뜨거나 도망칠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다는 것이다.
귀신은 왜 이런 것들을 모두 세어야 할까? 그리고 인간은 어떻게 그런 것들로부터 쉽게 뛰어넘어서 도망칠 수 있는 걸까? 굳이 귀신이라고 하지말고, 좀 더 범박하게 이야기하자면 어떤 이는 무조건 세어야하고, 또 누구는 그런 것들을 쉽게 뛰어넘어 갈 수 있는걸까?
어떤 삶에 매달려 애쓰는 것은 귀신만이 하는 행동이 아니라 우리도 평소에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취업이 되지 않아서 생을 정리해야겠어.', '사업에 실패했으니 삶을 끝내야겠어.'
그러니까 어딘가에 묶여있는 삶은 귀신만이 하는 게 아니고 우리도 다 하는 삶이니까 말이다.
벼룩의 학습된 무기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벼룩을 통 안에 가둬두고 시간을 보내면 벼룩은 그 높이 이상을 못 뛴다고 한다. 왜냐면 뛰다가 천장에 부딪히면 그게 나의 한계이자 가능성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멈추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격적인건 그런 벼룩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 또한 그 높이가 최선인 줄 알고 거기에 멈춰있다고 한다. 학습에 따라 본능에 내재된 능력마저도 제한되는 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러니까 좁쌀을 세는 귀신이나 없는 천장을 있다고 생각하며 뛰어넘지 못하는 벼룩이나. 어딘가에 얽매여 있는 우리나 모두 사실 똑같다는 거다.
아마도
살다보니까, 살다보니까, 먹고 살다보니까 다들 그렇게 되었다.
나중에 아들에게도, 꼭 하고 싶은 말은
언제 인생이란 시간이 끝날지 모르니까, 정말 한 번쯤은 원하는 삶을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이다. 일단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삶이 뭔지도 모르니까, 아마도 그걸 알기 위해서 시도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터이다. 인생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그런 축복같은 시간, 선물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 삶은 특별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좁쌀을 세고 있는 게 아니라,
천장을 못 뛰어넘는 게 아니라,
남들이 일러준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정말 내 마음의 뜻대로 사는 삶을 한 번쯤 살도록 맛보게 해주고 싶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기 위한 첫 걸음은 내가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리고 그 시간들 속에서 좁쌀을 세지 않고 뛰어넘어 내 길을 갈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