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이라는 것의 의미는
오늘은 작센 스위스와 드레스덴으로 가는 날이다.
작센 스위스는 스위스는 아니고, 그냥 멋진 산악 풍경을 두고
스위스라고 이름 붙였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내가 사는 부산 근처에 영남 알프스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비록 스위스는 아니지만,
또 신혼여행으로 갔던 쓰리 시스터즈(로키 산맥)는 아니지만 풍경은 꽤 멋있었다.
가이드님의 말에 따르면, 날씨가 좋지 않으면 안개가 많이 끼고 아무것도 볼 수 없다고 한다.
다행히 날씨가 정말 좋았다.
이어진 드레스덴 여행도 잔잔하게 좋았다.
소이탄이 터지는 날에 1000도까지 도시가 화염에 뒤덮였다는 말도 들었고,
어떤 왕(무슨 2세였는데 기억나진 않는다.)의 이야기도 들었다.
잔해들과 이것들을 지키려던 동독 시민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여행을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가이드님이 이번 여행이 본인에게도 새해 첫 여행이라고 하였다.
본인은 프라하가 좋아서, 특히 맥주가 좋아서 프라하에 살게 되었다고 하였다.
난 사실 맥주가 좋았다기 보단, 프라하가 주는 자신에게 주는 여유로움이 한국보다 훨씬 더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체코어도 공부하고, 공부하면서는 늘 차에서 체코 라디오를 들었다고 했다.
프라하에서만 살 거라면 영어도 충분한데, 자기는 체코가 좋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분은 체코에서 결혼까지 했는데, 그 이야기도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체코의 무엇이 좋았는지,
왜 그게 좋았는지,
어느 지역이 특히 좋았는지,
사람들은 한국과 어떻게 다른지
다시 한국으로 가고 싶진 않은지를 나는 정말 물어보고 싶었지만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는 투어라, 그러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숙소에서 한 카톡을 받았다.
이 카톡과
그의 말과 행동을 보며
프라하에 대한 애정이 정말 깊다고 느꼈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끝이 났다.
아마도 그는 체코에서, 나는 남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그리고 다시 돌아간 한국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오늘은 나와 엄마의 꿈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지어야겠다.
나는 엄마의 꿈이었다.
아마도 내가 결혼할 때, 결혼해서 집을 떠나간다고 했을 때
나의 엄마는 그 사실을 정말 반겼으리라 그렇게 생각한다.
점차 나이가 들어가는 아들.
그래서 이제는 결혼해야 할 텐데.
그런 아들이 결혼하겠다고, 결혼식장을 잡았다고 뜬금없이 얘기를 했다.
엄마 눈에도 좋은 아내를 내가 데려온 사실에 엄마는 꽤 행복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결혼식까지도 끝났다.
결혼식이 끝나고 분가하여 살게 되니, 아들과의 연락이 뜸했다.
아들은 자신의 삶을 비교적 근사하게 살아가고 있었고,
어느 순간엔 며느리와 함께 일본 여행도 다녀왔고,
또 어느 순간엔 임신했다는 소식도 알려왔다.
그러니까 엄마는 아들의 삶이 많이 궁금했으리라,
아들은 또 아들 나름대로의 삶이 있기에 어느 정도 거리를 뒀으리라.
어느 순간부터 연락 한 번이 없던 엄마는
나에게 연락을, 내 전화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엄마는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난 아직 헤어질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
언젠가 나는 우리 엄마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엄마의 30대의 모습 정도였을까.
엄마의 볼살이 통통한 모습을 보니, 나를 낳고 난지 얼마 되지 않았구나.
이마 중간 부분을 제외하고 양 갈래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니,
"아 엄마가 이 때는 정말 젊었구나."
엄마도 나의 꿈이었다.
프라하에서 살든, 한국에서 살든, 캐나다에서 살든 간에
또 '새해 첫'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삶을 당차게 살아내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고 꿈을 향해 살아가는 삶은 아름답다.
설령 그 꿈과 헤어질 준비가 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