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의 연애와 결혼
오늘은 비엔나에서 첫 투어를 진행하였다.
첫 투어이자 마지막 투어이다.
내일은 음악 교향곡? 이름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무슨 음악을 들으러 갈 예정이다.
오늘의 투어는 비엔나 이정은 투어였다.
비엔나에 가는 사람은 대부분 이정은 투어를 신청하나 보다.
비엔나 = 이정은 이러한 등식이 모든 블로그와 글들에 녹아져 있었다.
이정은 투어에 관한 세부적 내용은 넘어가고,
벨베데레 미술관 그중 마지막 2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정은 투어에서 마지막 2 작품은 에곤 실레에 관한 것이었다.
위 작품은 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라는 작품이다.
미술은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검은색이 죽음, 소녀는 소녀처럼 보인다.
죽음과 소녀 아주 어울리지 않는 두 대상이 서로 겹쳐져 있다.
이정은 가이드님에 따르면, 위 작품은 에곤 실레의 자전적인 작품이라고 한다.
에곤 실레는 이 작품을 그릴 때 즈음
무명 시절부터 자신을 잘 돌보던, 연인 발레리에(Wally)와 결별하였다고 한다.
통속적 소설이 대체로 그러하듯,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이야기가 그러하듯,
마치 사법고시 합격만을 기다리며 모든 뒷바라지 한 여자친구를 차버리는 합격생의 이야기처럼.
에곤 실레는 발레리에와 헤어지고, 돈이 많은 귀족 부잣집 딸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귀족 부잣집 딸과 결혼하는데, 뒷바라지했던 발레리에는 귀찮은 존재였을 것이다.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어떤?
첫째는 나의 부족했던 과거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둘째는 이제 더욱 비상하려는 나를 가로막는 여자라는 점에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남자라서 하는 생각인데, 첫째 이유는 아주 주관적인 소견이긴 하다.
나의 여자에게는,
나와 함께 평생을 함께 할 여자에게는
내가 부족했던,
코흘리개 같고, 어색하고, 부족하고, 서투른 나의 모습에 대해서는 보여주기 싫어하니까.
그런 나의 모습들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들과는 간격이 크니까.
그걸 보면 지금의 여인이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걱정하듯 말이다.
아마도 실레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한다.
자기가 무명시절 힘없는 모습을 새로운 여자에겐 보여주기 싫었겠지.
실레가 전여친을 떠나보낼 때 과연 무슨 말로 보냈을까?
아마도 쓸데없는, 희망고문과도 같은 말들을 하며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널 너무 사랑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이러저러한 이유로 너와 더 이상 만날 수 없어."
"오빠 예전에는 이러저러했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그렇게 말하는 거야?"
"네가 예전에 이러저러하게 말했잖아. 나는 그걸 해낼 자신이 없어."
뭐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히 위와 같은 말들을 반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맥주를 마시면서 글을 써서 그런가
좀 글이 샌다는 생각이 들지만 좀 더 적어보겠다.
(사실 아주 새로운 기분이다.)
그러니까 여자분들은
(성공한) 남자들이 헤어질 때 하는 허황된 이러저러한 말들에 대해서는 집중할 필요가 없다.
그 반대도 응당 마찬가지다.
어차피 그 남자의 말들을 논리로 해결할 방법도 없고, 설령 논리적으로 증명해 내면,
요새말로 속된 말로, 회피형 남자처럼 도망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뭐 사실 이걸 남자 입장에서 적어서 그렇지.
여자 입장은 뭐 다를까 싶다.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군 입대 이후에 헤어짐을 경험하는가?
군입대로 인한 헤어짐으로 외로움을 겪는 여자에게
군 복무를 끝낸 복학생 오빠와 우연한 만남을 겪게 되고,
여자의 상황과 마음을 잘 이해하는 모습에서,
또 내가 불렀을 때 항상 옆에 있는 모습에서
여자는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또 새로운 남자와 함께 기다리기 힘들다는 이유로 떠나가지 않는가?
이뿐인가?
결혼을 앞둔 남자와 여자들이다.
얼마나 많은 남녀가, 자기가 현재 사귀고 있는 상대가 있음에도
소개팅을 나가고, 또 사귀고 있는 상대가 없다고 말하는가?
"오빠는(넌) 왜 나랑 사귀는 거 얘기 안 했어?"
"직장에서 그런 거 얘기하면 불편해"
"아니 그래도 이렇게 이 분이 연락 올 때는 정확하게 얘기해야 하는 거 아냐?"
"아니 갑자기 어떻게 그렇게 말해."
물론 이러한 얘기는 일반적인 얘기는 아닐 수도 있다.
그냥 아주 주관적인, 내가 듣고 경험한 것들이다.
이뿐인가.
결혼을 앞두고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갈리는가?
최근에 이슈였던 충북도 공문을 따왔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아주 사적인 내용이다.
"오빠의 연애 가치관은 아닐지 몰라도 나한텐 이게 중요한 부분이고, 연애할 때뿐 아니라 결혼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에곤 실레와 그의 전여친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말하는 바이지만,
저렇게 여성분이 오빠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나는 거의 98% 단언한다.
애초에 남자는 여자가 마음에 들면, 알아서 잘한다.
그럼 지금 남자는 내가 마음에 정말 들지 않는 걸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세상에 100%는 없으니까,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남긴다.
다만, 대부분 그렇다는 거고, 세상의 모든 일들은 대부분의 범주에 들어간다.
아무튼 다시 실레 얘기로 돌아와서.
실레도 똑같은 남자라서
결국 이러저러한 얘기로 결국 전여친을 떼어놓았을 것이다.
아마도 전여친도 쉽사리 떼어지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위에 저런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저런 그림을 그리면서까지 보였던 실레의 생각은,
나의 아주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너에 대해서 이만큼이나 표현하니까 이제 그만 좀 놓아줘."
라고 본다.
이러한 모든 해석은
개인적이고, 피상적이고, 주관적이고, 왜곡되었으며, 여러 해석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언급을 다시 한번 한다.
그러고 나서 실레는 다시 그림을 그린다.
에곤 실레의 가족이라는 그림이다.
이건 실레의 상상도이다.
실레의 아내는(부잣집 아내) 아기를 낳은 적이 없는데, 아기를 실레는 그렸다.
이 그림을 그린 직후,
아내는 스페인 독감에 걸려 죽었고,
당연히 아기도 태어날 수가 없었고,
실레 또한 아내가 죽고 난 뒤 사흘 뒤에 사망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건 태어나지 못한 미래를 미리 그린 유서와도 같다.
나는 특히 세 인물이 서로 닿아 있기는 하지만,
안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연결은 있지만 불완전한 모습을 드러내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점에서 어쩌면 전여친과의 관계보다 느슨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물의 접촉 측면에서만 본다면,
어쩌면 실레는 전여자친구와 더욱 강한 의사소통을 했던 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결국 실레가 찾고자 한 사랑과 이상은 달성되지 못하였다.
그런 점에서 실레의 마지막은 비극적이라 생각한다.
실레는 왜 이러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를 둘러싼 전쟁이라는 큰 재해 때문인가.
아니면 지금껏 그를 지탱해 온 여러 관계들 때문인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이런 모든 것들이 우연하게 연결되어 맞이한 결론인가.
실레의 그림이 위대하다고 한다.
위대하니까
벨베데레 미술관에서 지금까지도, 심지어 한국에서 온 나도 유심히 보니까 말이다.
왜 사람들은 그의 그림이 위대하다고 하는가?
삶의 저열한 모습을 숨김없이 그려냈다면 위대한 것인가?
그렇다면 그의 삶은 과연 위대한가?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또는 그리하여
실레 자신은 본인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