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2019.7.24.수ㅡ
제주를 다니며 스치듯 만나고 마음속 어딘가에 고요하게 가라앉은 채 기억의 저장소에 머무는 곳은 많은 편이다.
잘 정리된 서랍처럼 각자 자리를 차지하고 추억을 꺼낼 때 살포시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구석진 자리가 아닌 정중앙의 자리에서 언제든 포르르 나타나는 기억의 장소가 바로 나의 인생 스폿이 된 '닭머르해안길'이라는 장소이다.
성산 한달살이의 끝자락이라 해내야 될 일도 정리 모드였고 아쉬움도 큰 나날이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2019년 7월 24일의 떠남 속에 만난 닭머르 해안길의 기억은 강렬하게 남게 되었다.
성산 한달살이 시작점에 함께 보낸 남편은 마무리 시점에 한번 더 제주로 와서 올레길 몇 군데를 걷고 같이 짐을 정리해서 육지로 가려고 했는데 직장일정으로 바빠서 불투명해졌다.
일단 캐리어 한 개 정도의 짐만 남기고 나머지는 우체국 택배로 미리 보냈다.
그래야 배를 타고 건너가는 나의 짐들을 1주일 뒤에 육지에서 만날 것이다.
다행히 성산 한 달 살이 집 가까이에 우체국이 도보 가능이고 택배 박스 포함 택배비도 만원 미만이어서 제주에서 택배 이용은 그 이후로도 꿀팁으로 활용하였다.
성산일출봉 바로 앞의 우체국에서 택배를 보내고 운무가 낀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스벅에서 여유를 즐겼다.
덥고 습하고 곤란한 날씨였지만 제주의 시간은 아쉬웠다.
간단한 샌드위치를 준비해서 점찍어둔 좌표인 닭머르 해안길의 코스로 향했다.
7월 무더위 속에 골목골목 올레 표시를 따라가며 걷는 길은 내 마음속 잡념들과 대적하는 처연함이 아니고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무념무상의 느낌을 안고 도착한 닭머르 해안길의 정자를 만난 건 벅찬 감동이었다.
정자 위에 앉아서 좌우 좌표들을 살피며 두 다리 쭉 뻗고 시간을 보냈다.
파도가 몰리는 지점이라 닭머르 정자는 꽤 높은 위치에도 불구하고 파도의 물 튀김으로 화들짝 놀라며 묘한 힐링을 주었다.
그날의 정자 위 휴식과 상념은 오랫동안 큰 위안으로 남으며 그곳은 나의 힐링 스팟으로 자리 잡았다.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서 보는 망망대해 바다와 파도들 그리고 무심히 지나가는 비행기가 주는 묘한 조화와 생동감은 오랫동안 각인된 기억으로 남겨졌다.
무더운 날 좌표를 찾느라 땀을 흘리며 고즈넉한 제주 돌담집들을 걷다가 방향이 맞나 갸웃하는 순간 만나는 올레 표시의 파란색 붉은색 리본의 발견은 땀방울을 식혀주는 청량한 기분마저 느꼈던 기억도 남았다.
무더위 속 작은 동네길 아이들의 물놀이와 다이빙놀이의 웃음소리도 기억되었다.
여름철 뚜벅이로 올레길은 아니라는 자책을 하며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에 만났던 아련한 오솔길 같은 곳의 우뚝 선 정자는 내 기억 속 행복 회로의 큰 방점을 남긴 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도 제주 여행의 코스에는 동선이 살짝 벗어나도 '닭머르 해안길'의 정자는 자주 가게 되었다.
차로 쓱 가서 주차하고 정자에서 머무는 정취는 그 순간이 좋아서라기보다는 2019년 7월 24일의 절절한 느낌을 소환할 수 있는 의식과도 같은 동선이 되었다.
역시 추억은 늘 나만의 형상으로 남겨두는 게 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