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 박상영 전작 읽기- 10월 ]

by 리단쓰

박상영 작가가 말하는 휴식은 일상에서 잠시 비껴선 자리에서 만나는 여행의 시간을 우선으로 꼽아서 말해주고 있었다.

일상이 버겁거나 잠시 쉼표로 남기고자 떠나는 여러 가지 탈출의 시간을 20대부터 시작해서 30대 중반의 시간까지 에피소드로 엮어나가는 이야기꾼의 면모가 유쾌한 느낌으로 남게 되었다.


어느 무엇보다 박상영 작가의 느낌에 푹 빠져든 이유는 제법 나의 여행이력과 겹치는 동선이라 생생하게 읽혔다.


뉴욕이나 프랑스 벨기에는 닿지 않는 간접적인 느낌이라 궁금해져서 푹 빠져 읽었다. 무엇보다 책의 구성에 많은 비중으로 포진된 제주 이야기는 몰입감이 최고였다.


가파도의 느낌과 추억이 내 개인적으로 일렁이는 기억들과 맞닿아서 자꾸 박상영 작가 옆 숙소에서 머물며 스치듯 어느 편의점에서 만난 듯 생생해서 독서가 즐거웠다.


제주 한달살이와 가을살이등 추억을 박상영 작가는 제법 찐하게 되돌아보게 만들어줘서 고마웠다.

가파도의 청보리 가득한 사진이 있는 카페에서 스치듯 바라본 등대느낌의 건물이 바로 그 상주작가 레지던스라니 생생함 최고였다.


벌레들에 대한 솔직 담백한 인간미가 계속 웃음 짓게 만들었는데 나 역시 성산 한달살이 집이 주택이라 지네와의 대결 에피소드가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에프킬라 한통을 다 쓰고 지네를 잡았지만 나 역시 약기운에 미슥거린 기억이 떠올랐다.


제주의 갯강구 이야기는 리얼함에 그 두려움과 불편함이 너무 생생하게 전달돼서 오히려 웃음이 나온 포인트였다.

함덕 바닷가에서 밤바다의 정취에 빠져 캔맥주를 마신 후 마지막 모금에 무언가 걸려서 보니 바로 갯강구 시체였다.

그걸 본 것도 징그럽지만 그걸 푹 절인 맥주를 홀짝이며 낭만을 느꼈던 아이러니가 떠올라서 미소 짓게 되었다.


여수 여행의 단어들이 낯익은 체험과 맞물리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여수 포차에서 두 딸과 폼 잡고 마신 여수밤바다 소주맛이 입안에 느껴졌다. 그리고 숙소에서 잠든 자식을 먹이겠다고 새벽운동 삼아 바닷길을 한참 걸어가 한 박스 포장해 온 바다김밥 맛도 되살아났고 그 매운맛 김밥도 완전 감각 소환의 맛이어서 흐뭇한 미소를 절로 짓기도 했다.


어떤 의미이든 이번 독서는 기억의 회로를 자근자근 그리고 나의 선입견이 가끔 장막을 드리운 채 박상영 작가가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는 소회도 남겨두어야겠다. 이전에 읽고 본 '대도시의 사랑법'이 자꾸 겹치는 느낌도 있었다. 편안한 테라스 카페에서 다리를 꼬아가며 가끔 손바닥도 비비고 그런 수다를 나눈 느낌이었다.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송지현은 자신의 부모님에게 일침을 날리기 위해, 나를 장기 말로 이용한 거였다.

p64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글을 써서 돈을 벌 수만 있으면 되는 삶. 그것이 스무 살의 내가 간절히 꿈꾸던 삶이었다. p95


지네의 붉은 다리를 보며 아름다움을 떠올리고, 한쪽손과 다리를 내어주고도 순순히 풀밭에 방생해 주고야 마는 마음. 나는 아름다움에 경도된 예술가들의 감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졌고,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p138


가끔은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느낌이었으나, 내 책을 알리기 위해, 단 한 사람에게라도 책을 가닿게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버텼다. p 192


"기왕에 섬까지 왔으니까 추억도 만들 겸, 바닷가 근처에서 텐트 치고 잘 거예요." p 214


이금희 선생님과 나는 노란 우산을 쓰고 공단 주변을 걸으며 '노동자'로서 일하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p 249


외적인 젊음과 내적인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듯,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p 288


그러나 역설적으로 여행을 하는 중에 나는 가장 열렬히 일상에 대해 생각한다.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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