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수상 여성작가 작품 읽기
책의 제목도 길고 작가의 이름도 긴 책의 독서였다.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라는 독특한 형식의 르포식 책 내용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독서였다.
201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저자는 카테고리가 명확한 다섯 권의 책들 속에서 전쟁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목소리를 낸 역량 있는 여성작가였다.
저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1948년생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전쟁에 대한 글을 써 내려가는 책을 쓰게 된 연유가 왠지 나이와 상관이 있었을까 하는 독자로서의 궁금증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기에 시대적 지리적 좌표가 연관성이 있을까 생각해 본 것이었다. 그리고 유럽 동부의 지리학적 지명도 한번 살펴보게 되었다.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였다. 벨라루스는 지리학적으로 폴란드와 러시아의 중간지대에 위치해 있는 곳이고 폴란드 러시아 독일의 지배를 받기도 한 곳이었다.
목소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이해하니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구현해 낸 수백 명의 참전자를 인터뷰해서 수년간 심혈을 기울인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책에 다가서기가 수월해졌다. 레닌시대부터 소련해체 시점까지 살아온 사람들의 증언을 소중히 여겨온 저력이 녹아들어 있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알레시 아다모비치라는 작가의 영향을 받으며 작품관을 구축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작가적 논평을 빼는 기법으로 오로지 증언에 입각한 인터뷰 내용의 전달에 주력을 한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펴냈으니 독자로서 리얼함을 만났지만 산만함과 다소 냉랭한 정서로 버겁기도 하였다.
1983년에 집필을 마치고 1985년에 출간 후 엄청난 판매부수에도 불구하고 1992년 비판적 내용을 문제 삼아 재판이 열릴 정도였다니 이 책이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고 영웅적 이야기 뒤안길의 아픔과 치부를 드러냈다는 게 가장 큰 이유가 되었을 것 같았다.
전 세계적인 독자들 가운데 반항이 엄청났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지점은 전쟁의 역사가 많은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정서는 확연한 거리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처럼 부침이 많은 역사 속 전쟁의 의미는 아프고 절절하지만 책내용 곳곳의 증언들은 편하게 수용되지는 못했던 독서였다. 우리 역사 속 소설들과 일맥상통하는 내용들이라 놀랍기도 하였다. 남부군이나 태백산맥, 지리산 같은 소설을 읽으며 가슴 절절했던 빨치산의 의미가 이 책에도 묘사되기에 동질성에 당황스럽기도 하였고 사람을 죽이고 생명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도 트라우마처럼 줄줄이 엮어져서 떠올리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 한겨레 초청 강연회도 다녀 갔는데 대담의 내용들이 공감을 이끄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러시아어는 모든 명사가 여성과 남성 중성으로 나뉘어 쓰이는데 전쟁은 남성 명사라는데 이 책은 여성의 전쟁을 적어나가고 있지만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니 의미가 확연하게 다가왔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에 대한 고찰을 해낸 저자의 노력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가미카제'라는 자살공격대의 묘사는 전쟁의 참상을 느끼게 해주는 용어라서 안타까웠고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인 위안부라는 맥락으로 '페페제'라는 야전 침대를 상징하는 전쟁터 와이프라는 용어를 접하며 마음이 아팠다. 페페제도 아련하지만 강제 동원된 위안부의 참상은 처절한 역사임에 분명했다.
전쟁터 후유증으로 피에 대한 알레르기와 빨간색 증후군도 전쟁의 비극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대의를 위해 정찰병으로 딸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아빠의 처절한 부정도 가슴 에이는 장면이었고 그런 남편을 죽는 순간에 용서하고 떠나는 모정은 뻐근하게 아팠다.
전쟁은 이념의 문제라는 것을 많이 들으며 청춘을 보낸 세대로서 가슴 박히게 하는 대목들도 많았다. 작은 삶과 커다란 이념이라는 부분에서 멈칫 회로가 복잡해지는 80년대 나의 청춘의 시간들도 만났다. 이상하게 두 가지 의미가 동일선상인 듯 이질적인 내용이 아닐까 서성이는 나약한 세대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쟁은 처참하고 많은 이는 죽었고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도 너덜거리는 아픔을 싸매고 있어야 하는 진실의 목소리를 만난 독서였다.
나 없는 동안 이 꽃에 물 좀 주세요. 금방 돌아올게요.
하지만 내가 돌아온 건 4년 후였지...... p125
우리는 두 달 내내 화물 열차를 타고 갔어. 2천 명의 소녀들이 기차 안을 가득 채웠지. 시베리아 열차를. 그런데 전선에 거의 도착할 즈음 우리가 무엇을 보았는지 알아?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 절대 못 잊을 거야.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어느 기차역이었는데 , 그 플랫폼을 따라 해병들이 두 팔로 펄쩍펄쩍 뛰고 있었어. 다리도 지팡이도 없이. 팔로 걷고 있더라니까...... 그런 해병들이 플랫폼 한가득이었지...... p212
내가 누운 자리에 계속 피가 흘렀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살아 있다는 걸 알고는 나를 의료위생대대로 데려갔죠. p292
나는 페페제였어. 그 말을 풀어보면 야전용 아내라는 말이지. 전장의 아내. 두 번째 아내. 내연의 아내. p410
생명이 이념보다 소중하지 않느냐면서. 당연히 나는 동의하지 않았지. p468
그건 민중이 쟁취한 승리였어! 하지만 스탈린은 여전히 민중을 믿지 않았어. p498
그때가 1942년이니까 우리 군이 가장 힘들고 처참할 때였어. 300여 명이었던 우리 병사들이 저녁 무렵에 보니까 10여 명만 남았던 적도 있었어. p544
가장 참혹했던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은 여자들을, 심지어 10대 소녀들까지 전쟁의 한가운데로 내몰았다. 백만 명 이상의 소련 여성들이 2차 대전에 참전해 싸웠고, 또 그만큼의 여성들이 빨치산으로, 지하공작원으로 저항활동을 했다. p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