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몽이가 그립다

by 리단쓰

헤어짐은 사람이든 반려동물이든 참 무거운 마음이다.

오늘 지인의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로 건너갔다는 속상한 소식을 듣고 나니 싸하고 저릿한 무게가 전해진다.


막내가 고등학생일 때니 벌써 9년이 되어가는 세월이 흘렀다. 우리 집 귀요미 반려견 몽이가 떠나간 기억이 아직도 저릿 아픈 자욱이 남아있다.


어릴 적은 늘 개를 키웠던 기억이 있지만 반려견이라는 인식보다는 그냥 마당 한편에서 개를 키운다는 생각이 있고 늘 밥은 우리랑 같은 메뉴로 먹인 기억이 있다.


세상 처음 집안에 들여서 키운 반려견 말티즈 암컷인 몽이는 지인이 어려운 임신으로 더 이상 케어가 힘들어서 멀리 못 보낸다 하여 울 집에서 키운 것이다. 막내딸이 초등학교 3학년 봄에 와서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떠난 몽이는 늘 미안한 마음이 크다.


체질 자체가 약했고 정서상 우울한 성향이 있고 겁도 많은 몽이는 호사스러운 대접은 못 받고 지낸듯해서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3살 때 와서 우리랑 겨우 8년을 함께했으니 몽이는 11살 정도에 떠난 것이다. 말티즈는 8살부터 고령에 속하고 자궁축농증이 취약한 증세라는데 몽이도 적출도 힘든 증세로 떠난 것이었다. 한 달 정도 움직이기 싫어하고 힘들어하던 겨울이 시작되는 11월에 떠났다.


막내는 기숙사에서 바쁜 주간은 집에 오지 않는데 그날은 다행히도 집에 왔고 몽이는 거실에서 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저 눈길만 주며 힘들어했다.


주말 내내 꼼짝도 안 하고 사료를 거부해서 마음의 준비를 했고 물도 간신히 수저로 떠먹이며 안타까웠다. 혹시 몰라서 집에 있던 광목천을 수건사이즈로 챙겨두고 그저 곁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남편은 퇴근시간이 11시였고 드디어 현관문 번호키 소리가 들리자 몽이가 비칠 비칠 일어나서 다행이라 여겼다. 그런데 큰딸이 울면서 몽이가 마지막 인사하는 거라고 해서 놀랐다. 강쥐들이 마지막 떠날 때 꼬리를 엄청 세차게 흔들어주고 떠난다는 걸 어디선가 보았다며 대성통곡을 했고 몽이는 눈도 못 뜨고 비칠거리면서도 우리 4명에게 정신없이 꼬리를 흔들어 주었다. 나는 마지막 쓰담을 해주고 5분 뒤 숨을 한번 가쁘게 내뱉더니 눈을 감았다. 우리 가족 모두 처음 겪는 일에 놀라고 슬퍼서 한참 울었고 나는 혹시나 싶어서 반려견 장례식장에 여기저기 늦은 밤 전화를 걸었고 예약이 다 찼다는데 간신히 틈새 시간으로 다음날 아침 8시에 화장터 예약을 잡았다.


가능한 시원한 곳에 두라는 말에 무명천에 싸둔 몽이를 이동캐리어에 넣어 베란다에 두었다. 한참 지난 뒤 아무리 생각해도 몽이가 잠시 기절한듯싶어서 다시 나가서 캐리어를 살폈는데 진짜 딱딱한 나무토막처럼 누워있었다.


다음날 7시 즈음 남편차로 이동하려고 나갔는데 11월의 새벽 공기가 차가운 건지 시동이 안 걸려서 한참 애쓰다가 어쩔 수 없이 내차로 가면서 다시 슬퍼졌다. 생각해 보니 몽이는 주로 내차를 타고 언니들 마중도 가고 동네 마실도 다니고 마트도 다녔으니 마지막 떠나면서도 추억 깃든 엄마차로 가고 싶었나 싶어서 엉엉 울었다.


생전 처음 겪는 반려견 장례식장은 낯설지만 이쁘게 보내주는 의식에 다행스러운 마음이었다. 화장을 하고 하얀 도자기에 담겨준 몽이를 받아 드니 세상에나 너무 작은 단지의 따끈한 온도에 다시 대성통곡을 하였다.


우리 몽이는 추운 날 떠나서 어디에 묻혀주지 못한 채 거실 책장에 사진과 두고 오며 가며 한 번씩 어루만지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다음 해 봄 가족여행 때 몽이 유골함을 싣고 떠나면서 시부모님 모신 공원묘지 성묘를 하고 남편이 큰절을 올리며 몽이를 살펴달라고 말하는데 다시 우린 또 울고 말았다.


" 어머님 아버님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몽이지만 저희가 너무 소중하게 여기는 몽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몽이를 답답한 유골함에서 꺼내 자그마한 나무밑에 수목장을 하고 나니 왠지 안심이 되었다. 요즘도 천안 공원묘지 성묘길에 갈 땐 시부모님 꽃과 이쁜 미니 하트 화환을 함께 준비해서 몽이를 만난다.


고맙고 미안한 우리 몽이가 오늘 새삼 그리운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그 아이에 비친 내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