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목놓아 불러본다

by 리단쓰

부모님을 모두 여의면 고아라고 한다.

서른 이전에 조실부모하면 고아라고 지칭한다지만 나이 육십이 넘어도 고아는 고아다.


오랫동안 치매로 일상을 잘 꾸리시던 엄마가 잦은 기침으로 6월부터 병원을 다니고 입퇴원을 반복하더니 추석연휴가 시작되던 10월 초에 입원을 하시고 한 달을 고군분투 병원신세를 지더니 딱 한 달 만인 11월 3일에 세상을 등지셨다.


십여 년 전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엄마마저 떠나니 진짜 고아가 된 지금이 현실이 되었다.


2025년 11월 3일 오전 9시 57분의 햇살이 따스했던 엄마의 임종을 기억하게 된다.


어린 날 시장 가는 엄마를 따라가고 싶어서 치맛자락을 잡으며 보채는 아이처럼 '엄마 엄마 엄마.....'를 수도 없이 불러 본 11월 4일의 입관식과 5일의 발인식을 결코 잊지 못한다. 육십이 넘어도 고아는 애달프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손님을 맞이하고 애도하며 엄마의 영정 사진만이 죽음을 표시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속 엄마는 그냥 평소처럼 커다란 존재감으로 있어주었다. 시립 승화원의 화장터에서도 그저 멍한 채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 엄마와의 경계를 실감하게 되었다.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육신을 내려놓고 한 줌의 재로 온기를 남긴 채 작은 나무상자에 계셨다. 육신의 잠든 엄마도 하얀 유선지의 한 줌재가 된 엄마도 나에게는 엄마였다.


엄마를 모시는 공원묘지에 마지막으로 땅 속에 잠드시는 순간에 결국 삶과 죽음의 경계는 깊은 슬픔과 그리움을 예고하며 절절한 외침을 쏟아내게 하였다.


엄마 엄마 우리 엄마.....


보채듯 칭얼대다 숨넘어가게 통곡을 하며 한 줌재가 된 엄마를 자연의 흙과 섞이게 하며 육십이 넘은 시간에 냉정한 헤어짐이 종용되었다. 이제는 고아가 되었다.


아버지 고향에 있는 남원의 선산으로 엄마를 모시지 않고 경기도 연천의 한적한 공원묘지로 엄마의 장지를 결정하길 잘했다는 생각은 장지를 가는 길목마다 엄마와의 드라이브 추억과 맛집 추억이 가득해서 추억이 방울방울이었다. 엄마가 그저 드라이브만 해도 좋아하던 백학 저수지와 자연스러운 야산들의 정취와 소소한 맛집들이 장지로 가는 길에 함께 따라왔다.


엄마의 육신을 고요한 그곳에 두고 이제부터는 엄마와의 많은 시간들만 싣고 돌아왔다.


후회는 남기지 않고 그리움만 안으며 지금을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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