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짝 짝짝~~~ 휘리리릭~~~
'그래, 초등학교 마지막 추억거리로 이 정도면 좋아...
나도 이젠 멋진 중학생이 되어야지...'
태훈이네 학교에서는 해마다 겨울방학이 되기 전 송년
의밤'이라는 행사를 열어,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팀을
이뤄 각자 장기자랑을 하며 조촐한 잔치를 해왔다.
1, 2학년때는 엄마들이 주도가 되어 친구들과 태권도
시범도 하고, 단체로 합창도 하긴 했어도 이번처럼 태
훈이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 무대에 오른 것은 처
음이다.
무엇보다 6학년이 되어서 더욱 우정이 돈독해진 친구
들과 무대에 서본 게 큰 자랑거리였다.
"네에, 6학년 대나무반 친구들의 멋진 봉산탈춤 공연을
보셨는데요 정말 제일 큰 언니 오빠답게 수준 있는 공연
을 보여주신 것 같네요."
"정말 준비를 많이 한 모습이 참 좋았던 것 같죠? 멋진
화면까지 보여주셔서 더 신이 났던 시간이었습니다. 수
고하셨습니다."
송년의 밤 사회를 보고 있는 어린이 회장과 부회장의
주고받는 소리를 뒤로하고 태훈이와 친구들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맞은편 대기실로 몰려갔다.
"야, 태훈아, 나 무대에서 떠는 것 봤냐? 막상 올라가보
니까 앞이 안 보이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신없었다."
"탈춤 출 때 쪼그렸다 일어섰다 하는 동작에서 다리에
쥐가 나서 혼났잖.."
유난히 앞머리가 젖은 세진이가 수선스럽게 떠들며 대
기실로 들어갔다.
"너희들 연습 때 까불면서 대충 할 때 알아봤지. 오히려
상아가 훨씬 멋지게 추더라."
잔소리 많은 유진이가 종알거리며 친구들의 탈을 정리
하고 있었다. 상은이 동생 상아는 5학년이지만 어려운
춤동작을 하면서도 열심히 연습을 하더니 아닌 게 아니
라 무대 위에서 침착하게 동작하나 빠트림 없이 해내는
걸 태훈이도 힐끔힐끔 보았다.
"얘들아~~ 수고했고 잘했어. 행사 끝나면 맛있는
저녁 먹자."
태훈이는 친구들, 부모님들과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
오는 순간까지 무언가 가슴이 콩콩 뛰면서 조용히 혼
자있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 작은 사진첩을 펼쳐 들었다. 2달 전쯤인가, 안동에서 찍은 사진을 보자 다시 가슴이 뛰면서 역시 오늘 탈춤공연은 잘했다는 생각이 한번 더 들었다. 더구나 힙합댄스로 초등학교 마지막 추억을 확 실하게 남기자는 세진이, 영준이, 상은이, 유진이를 설 득해서 봉산탈춤을 대충이니마 흉내를 낼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날 안동에서의 감동 때문이었다.
10월 연휴에 아빠는 태훈이와 단 둘이서 초등학교 졸 업기념으로 부자간에 여행을 가보자고 하셨다. 태훈이 는 아빠와 둘이서 가게 되면 아무래도 조용하게 다녀올 수 있겠다는 생각에 따라 나셨다.
아빠는 안동에서 '탈춤축제'를 한다며 그곳으로 가셨 다. 언젠가 안동 하회마을이라는 곳에 가본 적은 있었 기에 그리 낯설지 않았고 탈춤을 직접 본 적도 없었기 에 호기심이 생겼다.
"하회마을은 말 그대로 낙동강이 빙그르르 감싸며 돌 고있는 마을이라서 이름이 지어졌지."
"아, 그때 부용대라는 높은 언덕 같은 데서 내려다본 기 억이 나요."
"오, 태훈이가 그걸 다 기억하냐? 몇 년 전에 갔었는데 말이다."
"그때 하회마을을 순우리말로 뭐라고 했더라? 설명해 주던 아저씨가 열심히 가르쳐주셨는데 그건 기억이 안 나요."
"아! 물도리마을! 물줄기가 마을을 S자로 휘돌아 나간 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
아빠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셨고 그러는 중에 태훈이 도 3학년 때 와 본 기억이 새삼 더 떠오르기도 하였다. 마을에 이르자 정말 신기하게도 그때는 대충 보았던 마을이 정겹게 느껴졌다. 멀리 부용대라고 기억되는 곳이 눈에 띄었고 그 밑으로 강물이 조용하게 흐르고 사람들이 북적대는 것이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부용대 밑 공연장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어떤 사람은 의자에 어떤 사람은 멍석을 깔고 바닥에 앉아 서 공연을 보려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사자탈을 쓰고 공연을 하는 북청사자놀이도 가까이에 서보니 2 사람이 짝이 되어 각기 자기만의 동작을 해 가며 협동하여 멋진 춤을 만든다는 생각에 신기한 마음이 생겼다.
늙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만남을 꾸민 탈춤은 입부분이 뱅 뚫려서 말소리가 제일 잘 들렸던 하회별신굿 탈놀이, 신나는 북소리 장구소리, 꽹꽈리 소리에 맞추어 탈춤 축제는 정말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맨 마지막에 보게 된 봉산탈춤은 태훈이에게 왠지 모를 힘이 솟게 하는 공연이었던 것이다.
6학년 들어 부쩍 말이 없다고 불만이 많으신 엄마의 짜 증도 이해되었고, 자기도 모르게 무언가 답답한 것이 가슴에 얹어있던 기분도 싸악 없어져 버리는 그런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여러 명이 서로 마주 보며 힘차게 뻗는 손동작과 발동작에 태훈은 묘한 매력과 감동을 받게 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아빠께서 사주신 '헛제삿밥'이라는 저녁 또한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말 그대로 제사 지낼 때 준비하는 음식이 반찬으로 나오는 것인데 제사를 지내지는 않고 밥상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하여 헛제삿밥이라고 부른다니 정말 이런 게 우리나라의 옛날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방마다 특색 있는 음식과 말투 전설 같은 게 모여서 우리나라를 이어간다는 생각도 얼핏 들기도 하였다. 더구나 헛제삿밥 식당을 운영하시며, 하회 탈춤을 오랫동안 공연하신다는 주인아저씨는 전통적인 공예품도 직접 만드시고 머리 도 옛날 조상들처럼 길게 기르시어
상투라는 걸 매고 계셨다.
하회탈춤 공연 때 관심 있게 보았던 태훈이가 아저씨를 알아보자 기특하다며 주인아저씨는 특별 메뉴로 문어를 데쳐서 가져오셨다. "안동에 와서 문어를 안 먹고 가면 손님 대접받은 게 아니지.
"안동에 문어가 많나요?"
"아니, 그냥 예전부터 손님이 오면 문어를 사다가 대접하는 게 도리라고 배워왔지. 그냥 전통이라고 할까?"
태훈이는 무엇보다 오징어 낙지를 좋아했던 터라 더 부드럽고 큰 문어의 맛은 좋았다.
무엇보다 모르는 사람한테까지 손님대접이라며 문어를 준비해 주신 주인아저씨가 고맙기도 하였다.
아무 생각 없이 엄마 아빠를 따라다녔던 그동안의 여 행과는 달리 이번 여행은 초등학교 마지막 추억 만들기라는 생각 속에 와서인지 모든 게 다 새롭고
신기하고 마음에 남겨지는 것이었다.
어스름한 저녁이 되어 축제의 2부를 보러 다시 부용대 밑 공연장으로 갔더니 다음 축제 소개가 한창이었다.
"자, 이번에는 저희 안동에서만 보실 수 있는 멋진 시간 이 되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저희 전통적인 불꽃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선유 줄불놀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건데요. 밤하늘에 흩어지는 불꽃을 감상하는 운치 있는
놀이로, 옛사람들이 즐기던 불꽃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태훈이는 순간 옛날에도 불꽃놀이가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어떻게 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아빠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열심히 태훈 이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시며 흥분하셨다.
"태훈아. 하회마을의 줄불놀이는 마을 주민들이 여름 철부터 만든 것인데 이채롭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단다. 뽕나무와 소나무 껍질을 태워 만든 숯가루를 한지 주머 니에 채우고 그것을 강가절벽(부용대) 위에 줄을 매고 매달 불을 붙인다는구나."
"숯가루로 어떻게 불꽃놀이를 하죠?"
높이 올라가면서 탈 수 있을까요?"
태훈이는 정말 불꽃놀이가 될는지 궁금해서 점점 더 강 가까이로 가서 목을 높이 쳐들었다.
숯가루를 이용해서인지 정말 태훈이와 아빠의 얼굴은 숯검덩이 될 정도로 재가 내려앉는 바람에 서로 얼굴을 보며 신나게 웃기도 하였다.
"병나무와 소나무 껍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구나. 불씨주머니에 든 숯가루가 천천히 타오르면서 불꽃이 꽃가루 흐르듯이 허공에서 낙동강 물 위로 떨어진대. 이 그림 같은 광경을 느릿느릿한 배를 띄우고 감상하는
것이지."
그래서 이름도 선유 줄불놀이라니 이름 또한 잘 지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낙화야!" 하면서 일제히 함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가만히 보니 부용대 높은 절벽에서 커다란 불덩이가 내려오고 그 불이 강에 떨어지는 순간 사람들은 입을 모아 "낙화야! "하는 것이었다.
하회마을은 생김새 자체가 바다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 는 모습을 뜻하기 때문에 배를 타지 않아도 마을 전체가 배를 타는 느낌 이 들기 때문에 선유라는 말이 들어간다는 걸 아빠한테 듣게 되었다. 공연을 보고 난 후 빠져나오는 하회 마을의 입구에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바로 머리 위에 어찌나 많은 별들이 박혀있는지 태훈이는 가슴이 뜨끔한 묘한 기분을 느껴보았다.
더구나 별과 별 사이의 잔잔한 작은 점들이 황홀한 기 분까지 만들어 주었다.
"아~~ 저게 바로 은하수라는 거다. 태훈아! 너 은하수 처음 보는 거지?"
고개만 끄덕이며 태훈이는 하늘가 촘촘한 별들과 그 사이의 안개 같은 은하수에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여행을 다녀온 후 태훈은 혼자 있는 시간이면 오랜 시간 묵묵하게 소중한 걸 지켜온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었고. 안동에서 본 탈춤의 동작과 줄에 매달린 채 불꽃이 되던 그 광경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
'그래, 친구들에게 한 명이 되더라도 소중한 우리의 전 통이 있다는 걸 보여주자'
태훈이는 그때부터 친구들에게 안동에서 찍어온 비디 오를 보면서 설명해 주고 함께 춤동작을 익히고 바로 오늘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아빠께서 선유줄불놀이'화면을 무대 전면 대형 스크린에 띄워주셔서 정말 친구들과 함께 안동의 부용대에서 탈춤공연을 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신나게 탈춤을 추게 되었던 것이다.
사회자의 선유줄불놀이 원고는 물론 아빠께서 조금 도 와주셔서 쉽게 쉽게 설명을 해주니 관객석에서도 누군가 태훈이처럼 전통이라는 것 우리 것이라는 걸 가슴에 품게 되었으리라!"
"얘들아~~ 우리 겨울방학 동안 우리 악기 한 가지씩 배 워서 중학교 때는 사물놀이 공연 한번 어때?
항상 자신만만하게 분위기 띄우는 영준의 목소리가 들 리는 듯해서 태훈이는 불끈 주먹을 쥐며 혼자 중얼거렸다. "좋지!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