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며 후회보다는 따스함이 남는 건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아주 오래전 끄적이던 이런저런 글창고에서 눈에 띄는 17살인가 그 언저리의 추억 한 자락이 다가왔다. 제목도 아련한 '애련'이라는 시 한 구절을 읽으며 빙그레 미소가 장전되었고 번쩍 뒷골이 뜨끈해지는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맞지 맞아 나의 감정의 소용돌이 - 이성에 대한 감정- 전성기가 바로 그즈음이었다. 학교생활도 온통 새로운 시각에 눈을 뜨고 열띤 성장의 시작으로 또래보다 늦은 초경이 시작되기도 하였다. 굳이 사람 간의 소통에 관심이 생긴다면 같은 반 친구들이나 학교 선생님들의 생각이나 가족들과의 소통에서 고민도 하고 성찰에 관심이 많아지던 시절이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고등학교 1학년 어느 날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밀린 설거지를 마당가에서 하던 시간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79년도 한옥구조의 집에는 주방이 아니고 부엌이었고 그곳에는 따로 수도시설이 없어서 큰 광주리에 모아둔 그릇들을 마당가에서 설거지를 하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걸릴 것 같은 분량이기에 마루에 있는 티브이를 틀어두고 신나게 일을 하다가 들리는 가수가 마음을 울렸다. 이미 하이틴 스타로 많은 영화를 찍었고 따로 영화관을 가서 보지 않아도 티브이에서 이미 여러 번 보던 영화의 주인공이던 그는 바로 전영록이었다.
그날 설거지를 하며 수돗물을 틀고 이 생각 저 생각이 스치는 중에 들리는 전영록의 노래와 춤사위에 마음을 뺏겨서 나도 모르게 수도는 틀어두고 고무장갑에는 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홀리듯 봉당 계단을 올라서 마루 끝에 서서 멍 때리며 심장이 쿨렁하는 느낌이 분명 기억에 남는다. 결국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뭐라 잔소리를 하며 수습이 되었던 것이 내 추억의 시작이 된 것이었다. 그때부터 전영록은 영록이 오빠가 되었다. 그 당시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한 영록이 오빠에게 나는 묵히고 막힌 감정을 담아서 소위 말하는 팬레터를 적은 기억이 난다. 엄청나게 내성적이고 감정 표현을 안 하던 내가 어지간히 폭발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버거웠는지 그 당시 음악프로 디제이를 하던 영록이 오빠의 프로그램에 보낸 건지 어느 주소인지 ㅎ 감성 가득 주접스러운 팬레터를 보낸 기억이 선명해진다.
협박도 아니고 사기도 아닌 그러나 그것에 가까운 유치 찬란한 팬레터를 보낸 기억이 나고 웃음밖에 안 남는 사연이지만 식상한 주제로 나의 절친 시한부생명과 그 아이가 떠난 후 혼자 바닷가에서 적은 내용이라며 꼭 영록이 오빠가 노래를 만들어 불러주면 좋겠다는 얼토당토않은 편지를 보내두고 혼자 두근두근 기다림의 행복한 시간을 느낀 것이었다. 지난날 17살의 나에게 다가가서 꽉 안아주며 참 잘했다고 그렇게라도 울퉁거리는 감정의 뜨거움을 날리우느라 애썼다고 해주고픈 60대 지금의 시간이 잘 영글어가니 이 또한 감사한 마음이 든다. 2019년 겨울에 가족여행 중 청초호부근에서 만난 전영록의 손바닥 프린팅 앞에서
두 딸이 웃으며 엄마 영록이 오빠랑 하이파이브 하라며 굳이 기념샷도 남겼다. 이젠 아니거든~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오늘 오전에 문득 떠오른 생각을 커피 타임하며 남편에게 수다 떨면서 그때 보낸 내 시가 있다며 킥킥 웃고 아무 생각 없이 제미나이에게 물었다. 내가 적은 시의 제목은 '애련'이었고 이 내용과 비슷한 전영록의 노래가 있는지 물었다. 세상에 1979년도 즈음 전영록의 노래 중에 ' 하얀 모래밭'이라는 노래가 있단다.
< 애련 >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노래 제목만 다른 이런 일이 심쿵해져서 남편에게 그때 노래를 만들었네 영록이 오빠가 - 그 오빠가 지금 칠순일까? - 그러면서 노래를 듣자고 검색에 들어갔다. 남편이 같이 다양한 각도로 검색하며 잠시 추억놀이를 했고 하나하나 검색의 포위망이 좁혀지며 밝혀진 진실은 죄송하다며 자기가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었다고 제미나이의 정중한 사과로 마무리되었다. 사기당했는데 잠시 행복했다. 한여름밤의 꿈도 아니고 한겨울날 장난으로 마무리된 에피소드 한 조각을 남겨둔다.
오후에 혼자서 분위기 있게 전영록 노래를 듣다가 아~~ 아닌데 이럼서 김동률로 넘어가고 김필로 넘기고 정승환까지 건너가며 음악을 듣고 뿌연 날씨의 정서에 흠뻑 빠져들었다. 맞다 그때도 대학 들어가서 이문세 이선희 전인권 노래에 푹 빠졌던 나였다. 그래도 영록이 오빠와 행복했던 17살의 나에게 '그때 그러길 잘했다'라고 다독여주며 그래서 나는 나로서 잘 살아온 게 분명 맞는 것이기에 그 시간을 소중하게 기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