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몽상

박완서 전작 읽기 ㅡ 2월

by 리단쓰

박완서 작가의 시대적인 서사가 들어가는 글을 만나면 내용들의 전개가 스르륵 열리는 느낌은 있지만 살짝 얕은 개울가를 건너는 느낌이 들게 된다.

'오만과 몽상'은 2권으로 구성된 소설인데 읽어나가는 난이도는 어렵지 않게 슥슥 진행되었다.


1990년대 초반에 출간된 작품으로 주인공 현과 남상의 청소년 시절부터 성인이 되는 삶의 궤적을 시간별 사건별로 풀어나가는 작품이다. 현은 부유한 기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청년이지만 계급사회적 시각에는 둔감한 채로 가난한 남상과 우정을 키워나간다. 갑작스러운 남상의 절교로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을 고민하는 인물로, 남상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으며 성장해 나간다.


남상은 가난한 도배장의 아들로 태어난 청년으로 집안의 가난과 자신의 태생적 배경으로 인해 자기 삶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으나 좌충우돌 문제들이 힘겹게 다가오는 세태를 맞이한다. 현과 절친이었지만, 자신의 정체성과 출신 문제로 인해 갈등을 겪으며 심정의 변화를 맞는다.


현과 남상의 삶에 양쪽 모두 관여되는 영자라는 인물도 관심이 집중된다. 현실적 감각도 있는 영자는 이상이나 몽상보다 현실을 먼저 바라보며 판단하고 강한 생존력으로 가난과 고아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자기 삶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하게 표현된다. 또한 감수성이 풍부해서 주변 인물들의 심리와 감정을 잘 이해하며 공감 능력이 뛰어나며 희생적인 성향으로 그려진다.


오만과 몽상 작품 전반에는 박완서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몰입을 하게 되었다. 주인공들의 생각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었고 안타까움도 절절하게 남겨졌다. 각 주인공들의 삶과 서사의 연결이 삐그덕 유치한 부분도 느껴지는데 시대적 배경과 박완서 작가의 문체가 이제는 익숙해진 듯 잘 수긍되는 독서였다.


작품 속에 전반적으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나 자신의 꿈과 현실, 오만과 몽상을 돌아보게 되었다. 주인공들마다 가슴팍에 처절한 피흘림도 있지만 특히 여자주인공 영자의 삶은 토닥여주고픈 안쓰러움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순수한 마음의 맹목적인 사랑과 은근 저력 있는 삶의 줏대를 터득한 영자의 시간에 잠시 머뭇거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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