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가운데 ㅡ 루이제 린저

by 리단쓰

책을 한 권 만난다는 의미는 그저 책 한권일 수도 있지만 이면의 여러 시간을 만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이번 독서에서 특히 그런 느낌은 강하게 다가온다.

루이제 린저의 소설 '삶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나의 시간의 흐름은 지난한 이력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 책은 나의 젊은 시절의 의미와 또다시 만난 지금의 시간이 겹치며 채색되기 때문이다.


여고시절부터 대학시절의 삶이 함께 녹아드는 독서가 바로 루이제 린저의 소설이기에 다르게 보이는 독후감에 집중하게 된다. 소설로만 볼 것인지 작가의 삶을 함께 투영하며 살필지가 크게 와닿는 것은 소소하게만 자리하지 않은 시대적 자욱을 안고 있는 소설이 바로 '삶의 한가운데' 이기 때문인데 사실 나에게 익숙한 제목은 '생의 한가운데'로 번역된 작품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번역을 담당했던 전혜린 작가의 흔적도 빼놓을 수 없는 기억의 흔적으로 한몫을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루이제 린저 (1911~2002, 독일 작가)가 1950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편지와 기록으로 구성된 소설이라는 것과 주인공인 니나 부슈만을 통한 루이제 린저의 자전적 이입이 되었다는 평가에 힘입어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한 획을 그으며 독자들을 불러 모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소설은 한 여성의 삶을 그녀를 사랑하지만 이루지 못한 남자 주인공 슈타인이 남긴 편지, 기록, 증언을 통해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그 안에서 화자인 니나 언니의 서술로 만나게 된다. 주인공 니나 부슈만은 자유롭고 강렬한 성격의 여성이고 사랑과 사상을 따라 기존의 질서에 쉽게 머물지 않는 삶을 선택하고 그런 그녀의 주변에서 사랑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20살 연상의 남자로 슈타인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설명되는 구성이다. 이 소설이 발표되던 독일의 시대적 상황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허무주의에 빠져있던 유럽 젊은이들의 정서에 니나의 삶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풍조였다. 판매부수 역시 100만 부 이상이나 팔렸다니 루이제 린저의 명성은 피어난 것이었다. 니나는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지만 그 관계는 평범한 연애라기보다 영혼과 사상의 교류에 가깝고 사회적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삶을 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흔적과 질문을 남기게 된다. 소설의 주제를 생각해 본다면 삶의 중심을 찾는 인간을 탐구해 나가는 관찰적 심리 묘사가 부치지 않은 일기를 통해서 전달되는 방식의 소설이다.


'삶의 한가운데 '는 한 여자의 삶을 따라가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기록이었다. 니나 부슈만은 안정된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중심을 향해 끝없이 걸어간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사랑도 있고 이념도 있고 생활도 있고 상처도 있지만 끝내 미지의 누군가를 기다리다 다시 자신의 시간 속으로 떠나는 마지막 열린 결말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토록 쓸쓸함을 느끼는 설정 속에서 나는 불안함보다 오히려 그런 삶의 방향과 선택에 묘한 안심을 얻기도 하였다.


루이제 린저의 자전적 요소가 포함되었으리라는 추측이 되는 이유는 소설 속의 결혼과 아버지가 다른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나치시대의 사상범 이야기 등 시대적 배경 속에 살아낸 작가의 모습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엿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로서 내 개인적인 시간은 여고시절 문학소녀를 꿈꾸던 주변 친구들과 더불어 삶의 모호함에 버거워하는 심리를 대변하듯 알려진 전혜린 작가가 독일 유학시절 번역한 책이라는 것과 루이제 린저라는 여류소설가의 당찬 삶들이 담겨있다는 사실로 충분히 관심의 영역에 놓이기도 하였다.


소설을 소설로만 바라볼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소설 속의 주인공 니나의 삶은 루이제 린저의 삶과 닮아있다기보다는 루이제 린저가 닮고 싶었던 모습이라는 사실에 주목을 하고 정리하고 싶어진다.


그때 그 시절 나의 의식에 영향을 주고 감탄했던 자욱은 그저 몽롱한 환상처럼 흐릿해지고 이번 독서를 하면서 느낀 점은 역사 속 인간의 선택과 진실에 관한 고찰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이었다.


1990년대 말 스페인 철학자이며 수도회 신부 호세 산체스 데 무리요 신부는 루이제 린저의 탄생 100년을 맞아 2011년 린저의 일생을 가감 없이 밝혀 줄 루이제 린 저 전기인 <루이제 린저: 모순의 삶>을 출판했다. 이때 전기는 루이제 린저의 첫째 아들 크리스토프 린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나올 수 있었다. 크리스토프도 어머니의 '과거'를 밝히고 싶었던 것이다. 루이제 린저는 아들에게까지 거짓말을 해왔던 역사가 있기에 아들도 어머니를 둘러싼 진실을 알고 싶어 했다.


일단 루이제 린저의 90살 살아온 역사의 증거들은 '삶의 한가운데'를 쓰고 발표한 시점에 비해서 많이 왜곡되었던 사실이 밝혀지고 비난도 받았으며 그런 의미에서 나의 독서의 잔재는 젊음에서 늙음으로 넘어가는 소회 때문에 변화되는 게 아니라 왜곡에서 진실을 보게 되는 시각의 교정을 겪기도 하였다. 특히 역사적 사실 중 나치즘이 존재하던 시절에 어디에 좌표를 두고 살아갔는지는 중요한 척도가 되기도 하기에 루이제 린저의 좌표는 중요한 일이기도 하였다. 시간이 증명하는 역사적 증빙 속에 새롭게 정립되고 수정되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기에 다행이기도 한 것 아닐까?


소설로만 생각해 본다면 정리할 가치들이 남기는 하는 독서였다. 기존의 가치관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은 당찬 여인의 삶과 사랑의 수동적인 자세가 아닌 능동적인 자세와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 본연의 가치를 알게 된 작품이었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주변과의 조율을 통한 자신만의 좌표를 얻어 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기도 하였다.


니나의 삶은 안정된 선이 아니라 큰 진동을 그리는 궤적처럼 보인다. 그 진동은 수많은 시행착오로 이루어져 있지만, 바로 그 흔들림 속에서 인간은 결국 자신의 중심을 찾아 균형을 잡는다. 어쩌면 그 진동 자체가 삶의 본체일지도 모른다. 나는 외부의 사건보다 인간의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작품을 좋아한다. 삶은 수많은 진동을 겪지만 결국 그 진동 속에서 자기중심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에 '삶의 한가운데' 속 사건들과 사람들의 모습과 심리적 해체를 의미 있게 정리해 두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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