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두아' 곁을 서성이다

by 리단쓰

요즘은 숏츠가 쓱 나타나서 자꾸 조바심을 종용하곤 한다. 읽어야 될 책과 정리해야 될 글감도 있어서 차일피일 미루다 여기저기 멋진 포스로 화려하게 나타나는 레이디 두아의 전작을 보기로 했다. 대략적인 단어들로 명품 가식 정체성의 혼란 진짜와 가짜라는 화두들이 엉겨서 일단 선입견은 후드득 떨쳐내고 정주행을 시작했다.

극의 전개가 산만한 듯 시간의 주행도 얼기설기 엮이며 전개되는 방식이라고 여기고 한 회차를 몰두해서 보고 궁금해져서 바로 다음 회차 배너를 터치 후 보고 나니 어라 결말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게 무슨 일일까 싶어서 내가 시리즈가 아니고 2회짜리 작품인걸 잘못 알고 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남편이 이미 레이디 두아를 시청하고 있었고 6화까지 보고 멈춤을 해둔 넷플에서 난 바로 열리는 장면부터 아무 생각 없이 시청을 한 것이었다. 결론은 나의 시청 정체성도 오락가락 뒤죽박죽이 된 레이디 두아의 시청소감이 되었다. 7화 8화를 보고 다시 1화부터 정주행을 하며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시청을 마쳤다.


이미 결말 부분을 보고 난 뒤 사건들의 개요를 보자니 오히려 허망하거나 허탈한 느낌은 없이 개연성마저 느끼는 감상이 되었다. 사라 킴의 말대로 사기꾼도 사기를 당한 사람도 없고 진짜도 없고 등등의 명제가 모두 설득되었다. 악인도 없었고 다만 나의 느낌은 폐인의 흔적들만 남겨졌다. 일단 명품의 기본도 없고 관심도 없는 데다 지식도 없으니 감흥은 더욱 없는 나에게 화면 속 설정들과 그토록 절절하게 갈구하는 욕망의 모습이 크게 공감이 되지 않았다. 다만 배우 신혜선의 연기가 사건이나 동작을 보여주기보다 세밀한 내면을 표정으로 그것도 클로즈업되는 얼굴 근육들의 연기를 해야 되니 고심했을 거라는 생각은 해봤다. 이준혁의 반듯한 외모와 탐구하려는 냉철한 표정도 멋졌다.


계속되는 고군분투로 목가희부터 김은재 그리고 마침내 김미정이라는 이름들의 변모를 거치면서 여러 명의 정체성을 뒤집어쓰고 숨고 조작하는 치열함에 비해서 후반에 등장하는 짝퉁 탄생의 장인인 김미정과 사라킴의 존재가 시사하는 바도 와닿았다. 가짜로 정체성을 뒤집어쓰고도 충분히 가짜인 삶의 맛을 누리는 모습이라니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누리고 공격하는 모습에 신선한 충격도 남았다.



'레이디 두아' 뜻을 살펴보니 레이디 두아는 주인공 사라 킴이 운영하는 하이엔드 브랜드 부두아(Boudoir)'와 연결되어, '여성의 사적인 공간(부두아)'과 '가짜 정체성 (사라 킴의 여러 이름)'을 대비시키는 상징적 의미로 해석된다는 설명이 와닿았다. 부두아 뜻은 프랑스어 Bouder(토라지다, 삐치다)에서 유래한 Boudoir(여성의 사적인 방)으로, 과거 귀족 여성들이 남편과 다투거나 혼자 있고 싶을 때 들어갔던 여성만의 내실(침실 옆 작은 방)을 뜻한다는 글귀가 너무 이해가 되었다. 진짜 숨고 싶을 때가 있으니 그럴 때의 효용성으로 보듬어주는 부두아!


우리들의 삶이 흔들리는 정체성의 혼란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이런 근간은 아마도 결핍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경제적 결핍이라기보다 존재의 결핍에서 오는 갈증이 호도되는 느낌이 남았다. 이미 현실의 자아와 이상적 자아가 분리된 채 흐느적거리는 안타까움을 남기는 여러 이름들 속 주인공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주인공이 가짜 정체성을 만들면서 느끼는 건 두려움보다 쾌감을 추구하고 진짜와 가짜의 혼재가 묘한 줄타기를 하게 된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죄책감은 거의 없으니 멈춤이 없고 도리어 더 나아가기 위해서 주변을 자꾸 통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순간 본래 자아보다 가짜 자아가 더 '진짜'처럼 느껴지면서 자꾸 과거의 나를 부정하고 잊어가는 것이 아닐까? 이 단계가 가장 무서운 지점으로 정체성 붕괴 직전의 모습으로 버티며 살아가는 모습에 숨죽이고 지켜보게 된다.


박무경 형사 역할의 이준혁은 단순한 살인사건을 담당하는 시각에서 만나게 되는 사라 킴의 분열적인 정체성 속에서 점점 그녀의 결핍을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수사에 혼돈을 겪게 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도 역시 현실 타협으로 자연스럽게 기운다.


이 드라마는 단순히 범죄자와 형사의 구도가 아니라,

거짓을 택한 사람과 그 거짓을 이해해 버린 사람의 심리 싸움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근간을 자아 정체성의 확립으로 생각하는 나에게 던지는 화두도 살피게 되었다. 혹시 내가 사라킴의 입장에서 서게 된다면 들키는 게 무서운 것일까 아니면 들켰을 때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봐 무서운 것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살인이 벌어지는 장면에서 잔인하게 피해자의 얼굴을 못 알아보게 훼손시키는 것은 자아정체성 붕괴의 최고조를 느끼게 하였다. 사라 킴은 그렇게 사라지고 욕망의 화두인 가짜 명품 부두아의 존재는 남기는 설정이 충격이었다. 악인의 자리에서 내가 심판받는 것보다 내 삶을 망가뜨리는 폐인으로 치닫는 것이 더 두려운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악인은 확연하게 드러나는 욕망이나 복수로 가득하다면 왠지 사라 킴은 그냥 지금의 나로는 견디지 못하는 공허감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그려지는 모습도 공격적이지 않고 벌어지는 일들을 도피하는 모습이 더 부각되는 것이 아닐까? 알맹이가 없으니 점점 살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연기로 순간순간을 견디며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스로 빠져나오려 하지 않고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는 눈빛만 있어 관객 입장에선 답답한 심정도 들었다.


기존의 여러 사건들이나 상황과 맞물리는 주제도 엿보이기는 하지만 배우들의 소화력이나 주제의식이 식상하지만 뭉근하게 건드리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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