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원작 읽기
이번 달 영화원작 읽기 모임의 텍스트는 박민규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 참여하였다. 영화는 '파반느'로 넷플에서 공개되었다.
소설의 모티브는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1899년 작곡된 피아노 곡이다. 그 곡을 만든 라벨의 작곡 모티브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이었다.
이 작품은 17세기 스페인 궁정을 그린 그림인데,
중앙에는 어린 공주(마르가리타 공주)가 있고 주변에는 시녀들(메니나스), 난쟁이, 개 그리고 왼쪽에는 벨라스케스 자신(화가)이 그림을 그리고 있어 뒤쪽 거울에는 왕과 왕비가 비쳐있는 구도로 어느 시선이 진실인지 모호함을 남긴다. 결국 박민규의 소설이 완성되는 지점은 연결고리로 그림과 음악과 서사가 일직선상에서 남는 독서였다. 소설 속 배경인 80년대의 시대는 부의 부흥이 일어나는 시기로 소비의 최고점인 백화점의 모습과 지하 주차장이라는 다른 시선을 배치해 둔 소설이라는 점이 왠지 그림의 영향이 더 많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었다.
2009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단순히 로맨스 소설을 넘어, 우리 사회의 외모 지상주의와 물질 만능주의를 섬세하게 짚어내면서 많은 독자들에게 생각할 것을 던져주었다.
소설의 문체는 글의 순서가 섞이는 듯 묘사가 뚝뚝 끊어지는듯한 생경한 작법으로 산만한 느낌이 들지만 집중시키는 묘한 마력으로 독서를 하게 되었다.
주인공은 그와 그녀 그리고 요한이라는 묘사로 이끌어지면서 청춘들의 서사를 보여준다. 그녀는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로 못생김의 불편과 억울함을 대변하는 모습인데 오히려 가장 투명하고 본질적인 인간성을 지닌 인물로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남자 주인공 그는 처음에는 관찰자이지만 점점 감정에 깊이 빠져들고 끝내 완전히 자유로운 시선을 갖지 못하는 소용돌이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설정이었다. 그야말로 추녀와 미남 커플의 사회적 선입견과 불편함을 관찰하는 독자가 되었다. 소설의 배경이 1985년도의 청춘 스케치로 시작되기에 몰입되는 부분도 있었다.
영화는 원작 소설에서 진액을 잘 뽑아내고 배열도 잘하고 각색도 잘한 편이고 특히 영상미가 만족스러웠다. 그는 ㅡ 영화는 경록이ㅡ부모님의 선험적 경험 속에서 적절한 모델로 자리하지 못해서인지 엄마를 숙주처럼 기생하던 아빠의 배신으로 결손가정이 된 결함이 영향을 미친것인지 그녀를 대하는 것에 엄마에 대한 동일시인지 연민인지 갸웃거리게 하는 행보들이 보였다.
남녀 사랑의 풋풋함과 달달함과 절절함을 잘 버무려서 표현한 작가의 역량에 푹 빠져서 보게 되었고 마무리 장면의 애절함과 멋진 풍광들이 마음에 남았다.
독서모임 후 평점을 정할 때 원작 소설은 4.8을 주었는데 사실 박민규 작가의 표절시비로 물의를 빚고 책 속 내용 역시 여성비하등의 의식도 보이지만 무언가 동시대의 글쓰기 작법에 대한 향수가 후한 점수를 주게 된 건지 그의 필력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영화는 4.3을 남겼다. 헐렁한 구성이나 개연성의 부족등이 아쉬웠지만 각기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흡착이 마음을 주게 되었다.
이번 소설에서 자꾸 더 알아보고 싶은 글의 기법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속 '라이터스 컷'이라는 부분이었다. 일상에 가져오면 라이터스 컷은 과거를 바꾸는 기능이 아니라 현재의 선택을 다르게 보게 만드는 시선이 담겨 있어서 색다른 맛을 느꼈다. 작품 뒷부분의 '라이터스 컷 (Writer's Cut)'은 단순한 보너스가 아니라 작품 전체를 다시 보게 만드는 장치로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영화에서 라이터스 컷은 원래 공개된 버전이 아니라
작가/감독이 생각했던 다른 편집, 다른 결말을 펼쳤다는 설명들에 공감과 호기심이 남았다.
사랑은 다양한 색채일수록 마음이 담기고 절절해도 아름답게 기억된다. 그리고 이번 독서와 영화는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시선을 생각하게 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