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의 열매
한강소설 완독모임에 12월부터 참여하게 되었으니 방향키를 잘 잡아보며 독서에 집중하며 읽어냈다.
한강 작가의 수많은 작품들은 모두 같은 색채인 듯 각각의 색감으로 채색되는 팔색조의 경이로움을 주는 듯하다.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감이 아니어도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충분히 무겁다.
12월의 도서는 '내 여자의 열매'라는 단편소설을 엮은 작품집으로 초판이 2000년도에 선보인 작품집이다.
친절하게 책 초입에 7가닥의 작가의 말이 참으로 고마운 지침이 되어준다.
8편의 단편들은 각각의 메시지로 독자를 압박하기도 하고 무방비로 열리게도 하는 한강작가 특유의 언어적 유희로 휘돌아 치는. 느낌으로 남았다.
작가의 시선은 늘 약자의 편에 있는듯하고 뒤안길의 정서에 익숙한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80년대 대학시절의 정서는 늘 구질구질하고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알고 싶지 않은 쿰쿰한 어둠의 바닥이 주류였는데 70년생인 한강작가는 역시 그쪽 낌새로 질척이는 정서를 표출하는 작가라 자꾸 마음이 간다.
8편의 단편을 읽고 맨 뒤편의 황도경 평론가의 글을 읽어보며 내 느낌의 끝과 대조해 보는 것으로 독서를 마쳤다.
독자의 독창적인 느낌으로 내 느낌도 소중하기에 평론가의 잘 정리된 분석들을 읽으며 느낌의 저 멀리 지평선이 맞닿은 느낌으로 만족하였다.
한강작가의 단편 속 인물들을 만나며 모두 어디선가 스쳤을 아픈 얼굴들의 사연으로 마음이 아려왔다.
소설집에는 8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날 그는 ,
'결국 영원한 건 없는 거야, 그렇지?...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살기가 훨씬 쉬워질지도 몰라'
아기부처,
"당신 몸, 그 여자가 알아?"
"당신같이 이중적이지 않아. 내 모든 걸 다 좋아할 거야."
해 질 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너무 아팠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이 순간 두려운 것이 없다. 까끌까끌한 바람이 아이의 빨갛게 젖은 얼굴을 훑어 내린다. 꽃핀 아래 흩어진 머리털이 석양에 물들며 헝클어진다.'
붉은 꽃 속에서,
'불빛은 제가 불빛인 줄을 알았을까. 붉은 꽃 속에 제가 밝혀져 있었던 것을 알았을까.'
내 여자의 열매,
"내가 요즘 왜 이럴까. 자꾸만 밖에 나가고 싶고 밖에만 나가면... 햇빛만 보면 옷을 벗고 싶어 져. 마치 몸이 옷 벗기를 원하는 것 같아."
아홉 개의 이야기, 시 같은 아주 짧디 짧은 소설들의 나열에 신선한 에너지를 누려보았다. 아포리즘 형식이 역시 잘 어울리는 작가의 저력이 돋보인 부분이었다.그중 어깨뼈는 작가의 흰 소설의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외로운 흰 뼈들이 달그랑, 먼 풍경 소리를 낸 순간'
흰 꽃,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아무것도 아닌 이들, 그리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들의 죽음마다 머리에 얹혀있던 흰나비 같은 리본 핀...'
철길이 흐르는 강,
'비어있는 외툿자락 속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작고 꼬물꼬물 한 것들이 안간힘을 다하여 기어 나왔다. 모가지가 부러진 박새들이었다.'
모두의 사연으로 가슴 한편을 저미게도 하였고 내 기억 속 경험들의 스펙트럼만큼 퍼져서 내 안 어딘가의 사유에 좋은 자양분으로 남겨둔 독서였다.